망설이다 공개하는 글
다수가 인정하는
탈 없이 제대로인 상태가 정상의 정의라면
비정상은 문제가 아니다.
도덕적이지 않거나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모두가 그런다고 나도 그러란 법이 어디 있는가?
돌아보면 위대한 변화는
틀을 깨는 자유로운 상상과
정통 이론에서 어긋난
비정상에서 탄생하지 않았던가?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한다 해도
그들이 무엇을 알까?
언제부턴가 오래된 현자들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서서히 나의 주변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혼자가 아니다. 각자의 여정이 다를 뿐 모두 집으로 향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모두가 이미 깨달아있다.
나만 깨달았다는 착각이야말로 더욱 심각한 분리다.
동시성과 네빌 고다드에 대한 2009년의 기록.
그땐 몰랐다.
그저 '작은 나'의 자기계발 도구로서 여겼던 내용들이
무려 10년을 더하고도 5년을 더한 기간 동안
'큰 나'를 향한 마음공부와 영성의 길로 이어질 줄은.
내맡김과 내려놓음 이완과 수용에 관해
막연하게 끌리며 계속해서 묻고 찾았던 건
'작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큰 나'의 계획이었다.
돌아보니 모든 것이 그랬다.
그의 손길이 아닌 것이 없었다.
그의 뜻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 내려놓을 수밖에
이제는
'작은 나'의 계획이 아니라
'큰 나'의 뜻을 묻는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갖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이룰 수 있는지 묻지 않고
어찌하면 더 많이 수용할 수 있는지
어찌하면 더 잘 헌신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이미 갖고 있고 이미 이루었음을 알기에_
바랄 것은 그것뿐이다.
빛은 나에게로 와서
나를 통해 퍼져나간다.
'작은 나'의 역할은
투명해지고 순수해져 걸림 없이
진실하고 독특한 모양을 입혀
그 빛이 통과해 가도록 하는 것이다.
언어에는 한계가 있다.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도
'나'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고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작은 나'와 '큰 나'는 하나다.
어떤 때의 나는
작은 나로서 큰 나에 의지하여 위로와 안정을 얻고
어떤 때의 나는
큰 나로서 선포하며 한계 없는 힘을 갖는다.
<Who am I>라는 곡을 소개하고 싶다.
블로그 이웃분의 소개로 이 곡을 알았고
처음 얼마 간은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작은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모자라서
종교적이거나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커다란 저항감에 시달리지만,
좋은 건 나눠야 한다는 진리를 믿기에!
이웃분들과,
더 정확히는 당신 안의 신성_ 빛과 함께
이 곡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