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G의 숲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레인 Jan 16. 2024

무심한 신을 원망했었다.

태양과 소녀

2024년 1월 13일, 17시 40분

정확히 예정된 시간


지지 말라고

사라지지 말라고

그렇게 기도하고 외쳐도

태양은 서서히 바다 아래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고_



가녀린 붉음만 남았다.


해변가에도

산 위에

집안에서도

일터에서도


보이거나 보이지 않았을 뿐

태양은 무심히 뜨고 지기를 반복했다.



소녀는 울먹였다.

기도를 들어주지 않은 신을 원망했다.


시험볼 때

독감에 걸렸을 때도

심지어 화장실 변기가 막혔을 때도


소녀기도했다.


잘 보게 해달라고

낫게 해달라고

뚫리게 해달라고


돈을  벌게 해달라고

애인이 생기게 해달라고

복이 굴러오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했다.



신의 잘못이 아니다.


뜻대로 맘대로

감사했다 원망했다 했지만


불안을 떨쳐내지 못한 아이는 시험을 망쳤고

초콜릿의 유혹을 참지 못한 아이는 이가 썩었다.

행위의 결과가 돌아온 것뿐이다.


상과 벌은 인간이 만든 결과이지

신이 주신 게 아니다.



신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았다.


나중 말고 지금 달라는 소원

해가 아닌 달을 원한다는 바람

이런 상황과 저런 조건에 관한 기도와 관계없이


제시간에 뜨고 지는 태양은

인간의 필요와 욕망과는 무관하게

빛과 온기로 온 자연을 먹여 살린다.



무한한 사랑

무한한 지혜


구할 것은 신의 의지이지

'작은 나'의 소원이 아니다.


상황과 조건은 원하는 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고통을 피할 수도 없다.


시련처럼 보이는 아픔 속에서

작은 자아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밀어내어 지속시키거나

마주하고 흘려보내거나


/

인간이라서 생긴 걱정과 두려움

인간이라서 만든 화와 실수


진실은 아프지만,


받아들일수록 가벼워진다.

가까워질수록 자유롭다.



그날 해변에서 소녀는

저절로 떠오르는

감사기도를 드렸다.


성숙해진 소녀는

기왕이면 빛이 잘 보이는 곳에

더 자주 마음을 두기로 했다.


산 위에

집안에서도

일터에서도


가려져 있을 때도 언제나


빛은 늘 함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용기내어, 당신 안의 빛과 함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