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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Apr 10. 2024

그대는 왜 악이 있는지 물으셨죠.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되겠다.

그대는 왜 악이 있는지 물으셨죠.


전 악은 인간이 저지른 것이지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했어요.


그대는 다시 물었어요.

그렇다 해도 왜 악을 두셨냐고요

왜 선택할 여지를 두셨냐고요.

그냥 평화롭게 살도록 놔두셔도 되는데...

착한 사람이 잘 살도록 해주셔도 되는데...


전 악이 있기에 선이 있다고_

세상에 오렌지 주스만 있다면

오렌지 주스의 맛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사과 주스를 통해

오렌지 주스의 맛이 드러나는 것처럼...

사랑을 알게 하려고

두려움을 알게 하신 것 같다고 했어요.


인간은 악하죠.

이런저런 이유로 모두가 완벽할 수 없어요.

하지만 신은 선해요. 온전히 선해요.

적어도 내가 아는 신은 그래요.


그렇다 해도 당신은 이상하다 했어요.

왜 악이 잘되냐고 했죠.

선량한 이들이 왜 그렇게 억울하게 사냐고,

신을 이해할 수 없다 했어요.


세상에는

선이라고 믿는 악도 있고

악이라고 믿는 선도 있어요.

그 믿음이 무서운 거죠.


슬프게도

세상이 불공평한 건 건 사실이지만

그들은 자신이 악인줄 모를 거예요.

잘못인 줄 모를 테죠.


신은 무지를 벌하시지 않아요.

길 잃은 양이 돌아오길 바라시죠.

신은 모두를, 누구나.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용서하고 사랑해요.



어쨌든 그날 밤 우리는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먼지 같은 우리가

좁디좁은 구멍으로 보면서

세상을 향한 그 큰 뜻을 어찌 알겠어요?

헤아릴 수 없어요.

무엇을 알겠어요?



그러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거부감이 흐려진 나를 느꼈어요.


언뜻 세상은

그대로 온전하다는 걸 보았어요.


무엇을 알겠어요?

헤아릴 수 없어요.


<어느 날의 일기>

나는 왜 이토록 불안정한가. 왜 이토록 사랑이 부족한가. 왜 여전히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인가. 그러나 신은 말하신다. 그러더라도 다시 돌아옴으로 족하다는 것,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돌아온다는 것.

그래 나는 나를 더 자유롭게 놔줘도 되겠다. 좀 더 오래 참아도 되겠다. 나뿐 아니라 모두가 인간으로서 그렇게 살아간다는 걸...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봐도 괜찮겠다. 깨달음을 얻은 이도, 성자라 불리는 이들도 대부분 그런 과정을 겪고 살아왔음을 이해해도 되겠다. 즉각적으로 모른다 해도 결국에 알아차림으로써 족하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더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걸... 그래, 우리는 우리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져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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