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G의 숲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레인 Aug 08. 2022

그냥 잘 살고 싶을 뿐이라고

영혼의 숲 #5

영혼의 숲

5번째 이야기



6/4(토) 10:10 AM


6월의 첫 번째 토요일은 비가 내렸다.


우산을 들고 숲으로 향했다.


이런 날씨에 산책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는 내가 신기하다.


내 맘대로 하고 싶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정작 성인이 된 후에는 모든 선택이 힘들게 느껴졌다. 사소한 결정에도 시간이 걸렸다. 댓글이든 추가 정보든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는 몸을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G. 를 만나는 일만큼은 다르다. 생각이 필요 없다.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아도 그를 만나야 한다는 걸 안다.


바지가 좀  했지만 비가 내리는 숲은 청명해서 더 좋았다. 또닥또닥 빗방울 소리가 시원하게 가슴을 두드린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군.

그래, 이런 게 행복이지.


오늘은 정말 중요한 이야기를 해볼까?


'행복하구나' 하던 찰나에 들려온 G. 의 목소리였다.


난번에 네 했던 말 있지.

 

인생이 허무하고 재미없다고.

 

열심히  벌고

좋은 사람 만나고

하지만 그것도 잘 해내지 못할  같아서

불안하고 답답하다고

 

거기서 시작해보자.


기분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긍정적인 해석이 나왔다.


그래, 내 인생도 아직 가능성이 있을지 몰라. 


원망과 기대를 섞어 자동으로 나오는 질문을 G에게 던졌다.


열심히 기를 써도 거기서 거기였어. 평범하게 살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는 사회... 대부분 그렇게 사니까 인생도 그저 그런가 보다 했지. 하지만 아직 나에겐 꿈틀거리는 뭔가가 있어. G. 나도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이라...

클로닌, 성공이 뭔데?

네가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거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소위 말해 성공한 사람들.

돈이 많고, 명예를 얻었어도

영혼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허무함을 느끼는 건 똑같아.


돈이나 명예는 좋은 도구이거나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일 뿐

본래의 네가 원하는 것과는 다르지.


뭐야, 잔뜩 부풀었는데 도닦는 이야기잖아. 기껏 '돈이나 명예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하려는 거야?


오랜만에 솟아난 희망이 그대로 땅으로 꺼져버리는 듯했다.


그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더라. '성공을 해보니 별거 없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었어. 부잣집 아들이 마약을 했다거나 잘 나가는 연예인이 자살을 했다는 걸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해.


하지만 나는 허무하고 별거 없어도 좋으니 그 성공이란 걸 한번 해보고 싶어. 내면의 허전함은 채워지지 않을지라도 현실에서라도 한번쯤 마음 푹 놓고 지낼 만큼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솔직히 가진 자가 돈과 행복이 별개라고 한다면 그건 뭐, 인정! 하지만 못 가진 자가 그렇게 말한다면 찌질한 변명이자 정신승리로밖에 안 보여.


내 속을 다 아는 G. 에게는 돌려 말할 필요가 없다.

 

영혼이 원하는 일? 그게 밥 먹여주나? 어차피 현실을 살아야 한다고.


나는 그냥 잘 살고 싶을 뿐이야. 예전에나 좋아하는 일을 찾았지. 이제 그런 건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 나에게 필요한 건 말이지. 가슴 뛰는 일이라느니, 소명이라느니 그런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니야. '부자 되는 방법', '끌어당김의 법칙이 잘 되게 하는 법' 같은 실질적인 이야기가 필요해.


가만히 듣고 있던 G. 가 말했다.


그냥 잘 살고 싶을 뿐이라는 생각의 근거는 무엇일까?


왜 너는 그저 생존하는 것만으로 버겁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클로닌, 사람들은 일상의 95%를 잠재의식에 의해 살아가고 있어.


사회에서 주입받아온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인식적 고정관념이 우리를 그렇게 믿도록 만들었을 뿐. 부와 명예가 행복을 주리란 것은 잠재의식에 프로그래밍된 착각이야. 현재를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수작.


본래의 너는 생존 그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야. 영혼이 원하는 일은 잠재력을 발휘하게 만들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그 일을 한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채워지게 될 거야. 지금 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말하고 있는 거야.


잠재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어린 시절부터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신념들을 점검해 봐.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이지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부모님의 무의식에도 똑같은 잠재의식이 숨겨져 있거든. 외부의 목소리, 사회 시스템 속에 길들여진 신념들을 모두 의심해봐야 해.


높은 연봉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 상쾌한 빗소리가 행복인지,

잘 생각해봐.


사람들의 인정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그런 것과 관계없이

뭔가를 창조하던 순간이 행복이었는지...


지금 여기의 행복을 놓치면서, 맹목적인 목표를 쫓고 있으니 늘 불안하고 답답한 거야.


이야기를 듣자니 취업했을 때, 첫 월급을 받았을 때, 제안서를 잘 썼다고 칭찬받았을 때가 떠올랐다. 뛸 듯이 기뻤지만 좋은 날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 나는 퇴사를 하고 싶고, 월급은 당연해졌으며, 제안서 쓰는 일이 지긋지긋하다. 물론 이직에 성공하고, 연봉이 오르고, 상사의 인정을 받으면 다시 또 기쁘겠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처음 여기 숲에서 모든 것을 잊고 G. 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밤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PPT작업에 빠져 있었을 때, 사랑했던 여자 친구와 맛있는 밥을 먹을 때의 행복은 차원이 달랐던 것 같다. 그것은 결과에 대한 기대나 아무런 바람이 없는 그 순간의 행복이었고 그 자체로 만족을 주었다. 잔잔하면서도 안정적이다. 추억할 때마다 기분을 좋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다시 돌아오면, 여전히 내가 바라는 건 그럴듯한 성공이지 소소한 행복은 아닌 것 같다.


행복은 지금이란 거, 만족하고 감사하란 거, 사실 별로 와닿지 않아. 뻔하고 식상해서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 같다고. 설사 행복과 성공이 무관하다고 해도 솔직히 나는 성공이란 걸 해보고 싶어.


G. 는 이해한다는 듯 목소리를 이어갔다.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행복하고 싶어서'라고 하지. 많은 사람들이 돈, 성공, 명예와 같은 것들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어.


'성공하면 행복할 거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행복할 거야.'


어떤 조건을 달성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반드시 점검해봐야 할 신념이야. 인류의 뇌는 행복은 미래에 있다는 잠재의식을 오래전부터 심어왔지.


세상이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움직이기를 원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쉽게 불행해져. 모두가 내가 하는 것을 좋아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지.


너 스스로, 지금 이대로도 괜찮음을 알아야 해.


행복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에 둔다면 행복은 단순해지지. 나의 행복에 외부 조건을 달지 말라는 이야기야.


글을 쓰되 글을 쓰는 지금을 행복해하고, 노래를 부르되 노래를 부르는 지금을 행복해하면 돼. 출근을 하고, 제안서를 쓰면서... 이게 내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될까? 하기 싫다. 내 재능에 맞지 않는다. 결과가 어떨까? 를 생각하지 말고 그저 그 행위에 집중해보라고. 그렇다면 분명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야.


하긴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 스스로 괜찮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잠시 열린 생각의 틈을 놓치지 않고 G. 가 말을 이어갔다.


물론 쉽지 않아. 변화는 그렇게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니지.

 

잠재의식에 심긴 고정관념은 아주 단단해서 여전히 너는 끈질기게 부와 명예를 요구할 거야.


변화의 전에는 필연적으로 정체성의 변화를 요구하는 시기를 맞게 되어있어. 주변이 무너져내리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게 될 수도 있고, 이제껏 쌓아온 가치관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지. 네가 가장 지쳐있었을 때, 나와 만난 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야.


클로닌, 그럴 때일수록 네가 할 일은

받아들이고 비워내야 거야.


어려운 상황은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주거든.


자기 자신을 초월한다는 것.

이게 핵심이야.


작은 네가 아닌

더 큰 네가 원하는 것





잘 들어 클로닌,

지금 이 순간 모든 지혜가 존재하고 있어.

과거에 대한 집착,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나'라는 정체성도 잊은 채로,

만약 네가 그 순간에 오롯이 존재할 수 있다면

너는 그 지혜와 연결될 수 있어.


뭐야? 접신이라도 한다는 거야?


농담처럼 던진 말에

G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비슷해.


그 순간에 너는 본래의 너로서 존재하는 거지.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때야.


본래의 나라니

영혼이라니

너무 어려워.

여전히 나에게는 뜬 구름 같은 소리로 들린다고.


그래 알아.

현실을 살다 보면 영혼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들을 틈도 없지.

 

그래서 비워내는 작업이 필요한 거야. 모든 고정관념을 벗어던진 순수한 너와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하고.

 

기도, 명상, 알아차림 뭐라도 좋아.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훈련을 하면 영혼의 소리를 듣는 힘을 기를 수 있어.

 

그것은 서서히...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확실히

이루어지지.

 

영혼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이걸 알아둬.

 

신을 믿는다면 신이라고 해도 좋고

그렇지 않다면 우주라고 해도 좋아.

참나라고 했을 때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어쨌든 클로닌,

 

하나의 육체로서 정체성을 가진 나.

네가 생각하는 너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있어.


중요한 건 큰 존재(신, 우주, 참나)와 작은 나는

생각보다 아주 더 긴밀한 관계라는 거야.

너의 세상을 함께 만드는

공동 창조자라고 볼 수 있지.

 

공동 창조에서 작은 나의 힘을 뺄수록

신(우주, 참나)의 힘을 더 많이 쓸 수 있어.

 

위대한 업적이나 천재적인 발명품은 그렇게 탄생되지.

자신을 초월한 몰입.

나보다 더 큰 힘에 의한 작품.


그때쯤 되면 사람들은 그런 고백을 해.

영혼을 바쳤다.

신이 하셨다.

혹은 운이 좋았다.라고




힘을 뺀다는 건

작은 나의 의지로 통제하려 하지 않는 거야.


작은 나의 힘을 뺄수록 더 많은 일들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걸 알게 되지.


많은 고통은 굉장히 자기중심적이야.

질투, 죄책감, 혐오, 갈망...  과 같은 것들은

'나'라는 개인에 집중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거야.


영혼이 원하는 일을 하라는 건, 작은 네가 아닌 더 큰 존재가 원하는 일을 하라는 거야. 영혼은 개인을 넘어선 전체로서의 나를 바라보는 힘을 갖고 있거든.


정말로 원하는 일은 찾는 게 아니라 찾아지는 거라고 했던 말 기억하지?


준비가 된다면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영혼을 따라 살려고 해 봐. 영혼은 수용하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지.


보기만 하면 화가 났던 부장님을 이해했던 것처럼,

너 자신을 조건 없이 수용하려고 했던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연습을 하는 거야.


G. 의 목소리가 멈춘 후에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후

G. 가 다시 입을 열었다.


클로닌, 성공을 포기하란 뜻이 아니야.

어떤 경험이든 원해도 괜찮아.


원하되, 집착하지 말란 거야.


무언가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내면을 관찰해보면 그 속에는 '결핍'이 숨어있어.


그것이 없이는 부족하다고 믿기 때문에

가져야만 한다는 집착이 생겨나지.

끊임없이 요구하는 건 '작은 나'의 특징이야.


영혼의 본질은 풍요고 사랑이기 때문에, 집착하지 않아.

그것 없이도 이미 완벽함을 알고 있거든.


생각해 봐,

내면이 결핍으로 가득한데 풍요를 끌어올 수 있을까?


아무리 의지를 갖고 통제하려고 해도

삶은 '작은 나'의 계획대로 삶이 흘러가진 않는다고.





모든 것이 그렇듯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해.


욕망이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작은 나'의 욕망을 이야기했을 때야.

 

욕망이 영혼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것은 자기의 발현,

꽃 피우고 싶은 욕망.

 

욕망이 '작은 나'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흘려보내야 할 것,

 

집착은 '작은 나'의 증거야.

참나는 자연스럽지.

 

항상 불안하고 답답했던 이유가

잠재의식에 프로그래밍된 두려움

때문이었단 걸 기억해.

 

한계인 척하는데 너무 익숙해졌을 뿐

사실 우리 모두 참나의 힘을 갖고 있다고.

 

G. 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무언지 모르겠지만

발산하지 못해 답답하다고 했지.

바로 그거야.

 

'너의 실상'

발산해야 것은 본래의 너 자신이라고.


그동안 너는 그게 사회적 성공이라고

오해를 했지.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거나

타인의 인정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야.


본래의 너는 생각보다 더 강한 존재라는 것.

창조의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힘을 다하여 너 자신의 실상을 구현해내는 것'

모든 이의 삶의 목적은 이 부분에서 같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가슴이 벅차다. 무언가를 느꼈는데 표현은 할 수 없는 기분. 그런 나를 향해 G. 는 다짐을 받듯 마무리를 지었다.

 

공허함을 느낄 때면

삶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묻지 말고

삶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에

귀를 기울여봐.

 

삶은 언제나 너에게 말하고 있었어.

그동안 네가 귀를 열고 있지 않았지.

 

너 자신이 너무 중요해서.

네가 좋아한다고 믿는 것

하고 싶은 것.

숭배하는 것들이 너무 강해서

들리지 않았던 거야.




빗소리와 함께 한참을 더 걸었다.


허무하지 않기 위해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벼랑 끝으로 내모는 회사에서는

죽기 전까지 버틸 이유를 찾으려 애썼고,

우울해서 죽고 싶었던 어떤 날은

살기 위해 살아야 할 이유를 찾기도 했다.


G의 말을 듣고 보니 의미는 공허함을 달래기 위한 수단이 아닌 것 같다.


그보다 의미는 살아가면서, 경험하면서, 시련을 겪으면서 이미 존재하는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 아닐까? 지금 이 일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걸까. 이 고통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하는 질문을 통해서 말이다.


'스스로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G. 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본래의 나는 내 생각 이상의 힘을 갖고 있다는 말,

나의 실상을 구현하라는 말이 가슴을 두드린다.


20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할 때 샘솟던 열정과는 다른 고요한 울림이다.


나는 점점 더 편안해지고 있다.



영혼의 숲 #2. 정말로 원하는 일은 찾는 게 아니라...

죽어라 하는 나에서 그냥 하는 나로, 애씀 없이 자기실현법(요약)

공허함을 채워 줄 나의 가치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