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G의 숲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레인 Aug 02. 2022

사랑할 수 있을까?

영혼의 숲 #4

월요일 아침


부장은 출근하자마자 꼬투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  또 시작이군'


순간 짜증이 밀려왔지만

G. 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저러면 안 된다는 것도 내 고정관념


'음...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저러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래도 괜찮다.'


몸서리치게 싫은 저 모습은 억눌린 나의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거지, 그래서 그걸 본 나는 화가 나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밉상 역할을 맡은 부장이 한편으론 측은해지기도 했다.


그 후로 몇 번 이 과정을 반복했다. 사소한 잔소리를 할 때마다 돌아서서 이를 갈거나 소심한 대꾸를 하는 대신,


'저래도 된다. 괜찮다'


그러고 나서 G. 가 시킨 대로

'용서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중얼거렸다.

G. 는 그 용서와 사랑이 결국 나에게 하는 거라고 했다.


부장의 모습은 곧 나의 내면을 반영하니

'괜찮다'와 '용서'는 결국 나에게 보내는 사랑.


고정관념이 줄어들수록

고정관념을 보여주는 상황도 줄어든다.


쉽지 않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괴롭다.


그래도 했다.


그렇게 2주째,

신기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출근하자마자 부장의 눈치부터 살피던 버릇이 줄었다. 뭐라 하면 발끈하고 분노했는데 점차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나는 부장이 아침에 와이프랑 싸우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어도,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오래 기다려서 짜증을 내는 대도


'다 내 잘못인 것 마냥',

'나한테 뭐라고 하는 것인 마냥'

촉을 세우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 판단한 후 나를 못살게 하는 그 못마땅한 얼굴을 몹시 미워했었다.


상황이 점차 호전되고 있다.


하루도 더 버티기 힘들었는데

일단 당장 퇴사는 안 해도 될 것 같다.


'괜찮다' 기법을 더 활용해봐야겠다.




5/28(토) 10:30 AM



드디어 G. 와 만나는 날


바닥을 치던 지난번과 달리

오늘 기분은 살랑살랑하다.


비가 온 후라 그런지 물소리도 시원하고, 더욱 선명해진 초록빛에 마음도 씻기는 것 같다.


자연이 이렇게 좋은 걸 왜 진작에 몰랐을까?



물가에 핀 주황색 꽃을 한참 바라보았다.


자연은 이렇게 편안한데

사람과 어울려 사는 건 참 피곤하다.

맞춰줄 것도 많고 챙겨야 할 것도 많고...


경쟁할 것도 없고, 질투할 것도 없이

때 되면 꽃 피우고 그렇게 살면 좋겠다.



못할 것도 없지.


G. 다.

G. 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상을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니

그런 인생만 눈에 보일뿐

모두가 그렇게 사는 건 아냐.


인생은 어울려 사는 행복,

나눔, 기적으로 가득하다고

믿는 이들도 많지.


순간 반발심이 올라왔다.


설마, 너도

긍정적으로 살라는 말을 하려는 거야?

세상을 아름답게 보라고?


실패를 기회로 만들고,

윈-윈 전략을 구사하고

부지런하고, 결단력도 있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란 말을 할 생각이라면...

미리 말해둘게.


난 포기했어.

따라가 보려고 죽어라 해도 역시 난 안되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진절머리가 나.


안 되는 사람한테 희망을 주입해서 끝도 없이 '나은 나'를 강요하는 세상. 아무렇지도 않게 '너도 있다'는 말들도 사기꾼 같아.


그냥 언제부턴가 그렇더라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부감이 들어. 너도나도 똑같은 자기계발서를 읽고, 미라클 모닝하고, 부자 마인드를 배우고, 뭔가를 열심히 준비하면서 자기를 보여주려고 안달 난 모습도 다 보기 싫어. 그렇게 죽어라 노력해봤자 될 놈들만 된다고.


흥분한 나와 달리

G. 목소리는 침착했다.


'보기 싫은 모습은

내면에 억눌린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기억하지?


거부하는 그 모습이

내면의 또 다른 너란 걸 받아들여.


저항할수록

눈앞에 거슬릴 거야.


기분 나쁜 말이지만

부인할 수 없다.


대놓고 돈 벌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 그리고 그런 만큼 많이 버는 것, 사실 그렇게 하고 싶은데 못해서 싫은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명예욕, 인정욕 나 역시 만만치 않으면서 나는 못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며 점잖은 척, 고고한 척하고 있는 거 아닌가?


포기했다고 했지만 정말로 포기한 건 아니다. 사실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 살고 싶다.


그러고 보니 이게 딱 책에서 본 가난한 마인드다. 그럼, 뭐야? 또 책에서 본 것처럼 부자들을 이해하고 돈을 사랑해야 하는 건가?


마음을 읽은 G. 가 대답했다.


달라진 부장과의 관계를 떠올려봐. 불편하던 관계가 어떻게 개선될 수 있었는지.


부장에게 했던 것처럼 하라는 거야? 보기 싫은 모습이라도. 그럴 수도 있다...

저런 모습도 괜찮다...라고?


응 괜찮지.


돈에 대한 관념까지 갈 필요도 없어.

지금 너를 불편하게 하는 것부터 살펴보는 거야.

저런 모습이 별로라는 것도

너의 신념에 의해 만들어진 고정관념이야.


누구나 자신의 세상에서

자신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어.


한때는 너도 자기파괴적인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던 때가 있었고, 누군가는 그런 너를 안타깝게 바라봤겠지. 하지만 그때의 너는 그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 인생의 다른 측면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거든. 한참을 경험하고 나서야 알았던 거야. 그 방향은 네가 찾던 길이 아니었다는 걸.


지금 너는 자기계발에 열심인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느끼지만, 너와는 정반대의 사람도 있을 거야. 그 사람들은 노력은 안 하면서 세상만 원망하는 듯한 부류의 사람을 보면 화가 나겠지.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경험해. 겪어야 할 일은 겪어야 하는 거고. 그러니 다른 사람 인생을 두고, 더구나 한 측면밖에 보지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판단하고 평가하지 마. 각자의 인생은 다 이유가 있고, 괜찮은 거야.


바깥세상이 싫거든

돌아와서 너의 내면을 봐.


상황을 원망하고

사람들을 혐오하고 있는 너 말이야.


누군가를 미워하면

미워하는 사람이 더 괴로운 법이지.


그랬다. 한편으론 죄책감 같은 것이 있었다. 겉으론 착한 , 순한 얼굴을 하고 사회에 불만, 사람들에 불만, 증오심 가득한 내가 가증스러웠다. 봉사하고 기부하는 천사 같은 사람들을 보면 신기했다. 봉사는 고사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괜히 시비 걸고 싶은 내가 무언가 삐뚤어진 못난 놈으로 느껴졌다.


G. 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괜찮아.

그것도 괜찮은 거야.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힘들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너를 수용해봐.

사랑하기는커녕 미워하는 너를 받아들이는 거야.


처음 듣는 이야기에 눈을 뻐끔거리는 나에게

G. 가 속삭였다.


중요한 포인트니 기억해.


세상을 원망하는 나도 괜찮아.

타인을 혐오하는 나도 괜찮아.


그렇게. 끝까지 받아들이면

어느 순간 부정하는 감정도 흘러가지.


그것이 비워내는 방법이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야.


사랑은 어떤 모습이든

마지막까지 수용하는 거야.


그래도 괜찮다고 하라고?

이런 나라도 괜찮다고?

끝까지 괜찮다고?


응.


G. 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처음엔 어색할 거야. 자책이 익숙한 너에게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거니까.


불편하다고 도망가지 마.

TV로, 음악으로, 핸드폰으로 정신을 돌리지 말라고.

대충 '그래, 나를 사랑하자.' 하고 얼버무리지도 마.

너의 감정을 온전히 느껴야 해. 


G. 의 말을 들으니 생라면을 우걱거리며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는 내가 떠올랐다. 틈날 때마다 습관처럼 생라면과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랬다. 그렇게 나는 부정적인 감정과 보기 싫은 모습을 회피해왔다.


자기계발이 나쁜 게 아냐.

내면에 결핍이 가득한 상태에서 하니까 안 되는 거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지배한다는 말 기억하지?

마음이 가난한 상태에서는 아무리 애써도 가난한 현실만 나타났던 거지.


지금 너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도,

좋은 생각만 하는 것도 아니야.

실행력을 길러 뭐라도 하나 더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그런 것들은 부정적 감정을 비워내고

가난한 마음을 돌본 후에 해야 할 일이야.


사실 그것들은

비워낸 후에 저절로 채워지는 것들이지.



비워내면 진정한 목적을 볼 힘이 생겨.



더 이상 이전처럼 억지로

자기계발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거야.

행동을 하려고 의지를 끌어올릴 필요가 없어.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이지.


허무하고 답답한 이유는

잘 나가지 못해서

삶이 찌질해서가 아니야.


본래의 너로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도 허무한 거야.


네 영혼은 이미 알고 있어.

잘못된 목표를 쫓고 있다는 걸.


여기부터는 다음번에 이야기하자.

비워내는 것 하나만 기억하기도 벅찰 테니까.


비워낸 후에

다시 목표를 정해.


지난 2주간 부장과의 관계에서 해봤던 것처럼

앞으로는 계속 너 자신과의 관계에서

비워내고 사랑해주기를 연습해보는 거야.


부정적 감정마저 마주하고 자신을 풀어줄 때

너의 가슴은 많은 응어리를 흘려보내고

비워질 수 있어.





목소리가 사라지고

나만 남았다.


흔해빠진

나를 사랑하란 말이

이렇게 따끔거릴 줄이야.


나를 사랑하니까

더 잘하길 바라고


잘되길 바라니까

채찍질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부장은 저리가라다.

나야말로 나 자신을 들들 볶았다.


G. 의 말대로 나는 나 자신을 정말로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줄 수 있을까?


그러고 나면 새로운 꿈도 생겨날 수 있을까?


괴롭힘 당했던 나 자신을 토닥였다.

처음 느껴보는 나에 대한 연민이었다.



[함께 보기]


영혼의 숲 #1.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영혼의 숲 #2. 정말로 원하는 일은 찾는 게 아니라...

영혼의 숲 #3. 퇴사하고 싶은 날


'열심히 나는 나'에서 '죽어라 하는 나'로_애씀 없이 자기실현법(요약)











매거진의 이전글 정말로 원하는 일은 찾는 게 아니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