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자리
자아를 탐구하는 이 시간이
나는 너무나 좋았어.
그것은 어느 순간
꿈을 이루고 싶어서라거나
고통을 없애고 싶어서라기보다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되었지.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부가 나라는 사실은
마지막으로 내가 없다는 사실은
커다란 평온을 주었어.
오전 내내 산책을 하고
수시로 창을 통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산 위의 새와
모양을 바꾸는 구름을 바라봤어.
그리고도 나는 다시 돌아왔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화를 내고.
현실에 매여 전전긍긍하기도 했어.
한창 부풀어,
에고를 다 없애버린 듯 굴다가도
결국 나는 다시 돌아왔어.
그러다가 문득 알게 되었지.
이곳이
여기 현실이
삶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고
깨달음의 자리라는 것을.
하나라는 사실은
내가 없다는 사실은
여전히 나에게 깊은 평화를 줘.
그러나 나는 여기에 있어.
아내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딸로, 언니로, 지레인으로, 김경진으로
사람들과 가족들과
살을 부비며
여기에 있어.
나를 조금만 아는 사람들은
사실은 돈을 좋아하면서 아닌 척한다고 하지.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고도 해.
차가운 충고가 아니라 진심어린 조언이야.
나를 조금 더 아는 사람들은
자신을 더 사랑해보라고 해.
무엇이 부족해서 용기를 내지 못하냐고 해.
아빠를 닮아, 할머니를 닮아
자꾸만 숨는다고 해.
아니.
그래야만 했고,
그랬어야 했어.
그 누구도 나를 나만큼 알지 못해.
설명하기도 힘들고 설명할 수도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이지.
다시 새벽.
창밖을 바라보며
가장 깊은 평화를 느껴.
사진을 아무리 잘 찍으려해도
저 아름다운 붉음이 표현되지 않지만
그 붉음을 지금 보고 있으니
그것으로 됐어.
온 세상이 나로 되었다가도
항상 나는 다시 나로 돌아왔어.
작은 나는 늘 함께였어.
영혼 없이
째즈 음악을 듣고
커피를 마시며
독서나 명상이나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지만
삶의 의미는 그보다는
하기 싫은 살림을 해나가며
육아에 지쳐가며
신랑과 다투어가며
책임감을 갖고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얻어낼 수 있었어.
세상은 나에게 과제를 주었어.
그리고 그 과제를 풀어가며
진정한 나를 찾고
삶의 의미를 찾는 기쁨을 얻을 기회 또한 주었지.
끝없이 갈구했지만 더딘 성공과
그 길을 걸었던 지난한 기록은
나와 비슷하게 오래 걸리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지도 모른다는
또 다른 희망
이제 즐길 수 있어.
나에게 주어진
시련의 의미와
이 순간의 기쁨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으니까.
각자의 과제는 달라.
삶의 의미도 마찬가지.
하지만 네가 겪고 있는 과정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에게
조그만 힌트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네가 과제를 푸는 보람이고
삶의 의미이지 않을까?
가만히 들어보면
다시 삶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