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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Sep 14. 2023

평온한 움직임

들어가는 글

prologue

안 멀쩡한 날 보는 책


"멀쩡한 넘이여~"


어린 손주에게 할아버지는 멀쩡하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답지 않게

눈치껏 마음을 숨기고

무엇이 자기에게 유리한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예쁘다 하는지

살아가는 법을 좀 안다는 뜻이었죠.


/


어른이 되어 멀쩡해진 우리는

종종 홀로 안 멀쩡한 나를 만납니다.


타인을 배려하며

피해 안 가게, 착하게

참는 게 편했던 사람일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해야 해, 하지 말아야 해

규정이 많았던 사람일수록.


기대에 맞춰 성실하게 살아온

착한 모범생들은

불현듯 튀어나온

안 멀쩡한 자신이 당황스럽습니다.


/


직면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주하기 두렵습니다.


그대로 있으면 드러날 것 같아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가면을 쓴 게 익숙해져 이제는_

이게 가면인지 진짜 나인지 구분조차 안되고


분위기를 맞추는 게 습관이 되어 이제는_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기분인지

알지도 못하겠고 표현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구름의 평온한 움직임


극복이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을 창조한다는 말도 석연치 않았어요.


그렇게 의지를 다져봤자

내 맘대로 되는 게 인생이냐고.


저절로 일어나는 생각과 덮치는 감정을

흘려보내면 다행이지 어떻게 억지로 바꾸냐고요.





감정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알고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우면서

처음에는 몰라서 무참히 당해온 사실이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닥치면 여지없이 조절이 힘들었고

다시 또 망가지고 맥없이 무너져 내리기를 반복했어요.


현실의 마주함 없이

이상으로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이전에

지금의 나를 온전히 살아내야 합니다.


원하는 바를 향해 직진한다는 건

주어진 일을 맞닥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은 난 원하지 않아... 라든가

하려는데 너무 큰 장애물이 있잖아... 라든가

먹고살려면 이게 최선이야... 라든가


회피나 도망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을 때

원하는 삶으로의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불안해도 괜찮아요.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별거 아닌 일로 화가 날 수도 있어요.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극복하고 창조할 수 있습니다.


결핍을 포장해서

그 위에 뭔가 올리려 할 때는

놓자마자 푹푹 가라앉더니,


비워내어 단단해지자

저절로 하나씩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 차오르자 타인이 보이고

나에게만 맞춰졌던 눈이 세상을 향했습니다.


뒤틀린 방향을 삶에게 맞추니

고요한 목소리가 잘 들리고

행동은 가볍게 흘러갔습니다.


어렵더라도 해볼 가치가 있는 일.

진실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일





멀쩡한 날 말고

안 멀쩡한 날 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끄덕끄덕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다시 또 질질 끌려가는 게 감정에 관한 문제라서요.


그렇게 잘 살 것 같다가도

한번 또 무너지면 한 발자국 움직이기 힘든 게

또 한 편의 우리 모습이니까요.


마음이야 바꿔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긍정적이 되면 되잖아!


누군가에겐 당연했겠지만,

흉내 내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텐션이 높은 사람,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열정가들을 좋아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닌 걸요.


무드미터에서 평온함

쾌적함이 그렇게 높은 편도 아니고

활력도 낮은 편이지만

느린 제게 어울리는

가장 편안한 자리입니다.


아마도 지금 제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는

수용과 극복의 그 어디쯤.


그 이야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아집니다.


어느샌가 서서히

편안함이 스며들어 있었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흐르듯 드디어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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