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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레인 Oct 22. 2023

천직이다 소명이다 촌스럽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딘가에 살고 있는 과거의 나에게

* 클로닌은 비밀일기장의 이름입니다.


클로닌,


평생토록

함께 하고픈 일이 있다는 건

행운이야.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60세가 넘으면 그만 둘 일로

매일을 불평불만으로 살고 있다면,


그건 꾸역꾸역 보낸 오늘뿐만 아니라

남은 40년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관련된 문제지.


천직이니 소명이니

뜬구름이다, 촌스럽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나와 맞는 일을 만들어 가는 건

이상이 아니라 차라리 현실에 가까워.



알아.

하지만 막연하지.


정해진 직업

확실한 길은

없어.


예측불가의 삶,

적성을 찾는 일은 평생의 과제라는 것.

그걸 먼저 인정하는 게 좋아.


"이게 네 일이다."


어느 날 명확하게

신의 음성을 듣는 날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

그것보다는 조용하게 말씀하시지.

속삭이듯 삶으로 스며들어,


문득.. 

아 이 일을 내가 잘해보고 싶다.

내가 이 일을 잘해볼 수 있겠다.

이 주제를 더 연구해 보고 싶다.

어느 날 그렇게 말이야.


여기에 포인트가 있지.


 일을, 

이 주제를, 

그러고 보니 내가 이 분야를...


연못에서 뿅 하고 나타난 산신령이 건네는

생전 처음 보는 금도끼와 은도끼 중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 내 손에 있는 낡고 보잘것없는 쇠도끼가,


오늘도 나무를 베고, 

다시 돌아와 도끼를 갈고, 

다음 날 다시 나무를 베던

나의 행동과 어우러져, 

은도끼, 금도끼를 탄생시키는 과정이라는 거지.  


돌쇠는 즐거운 마음으로 나무를 베었어. 나무를 많이 하면 할수록 부모님을 편하게 모실 수 있기 때문이었지.


먹쇠는 나무하러 갈 생각은 하지도 않고 방에서 배를 잡고 떼굴떼굴 구르고 있었어. 흥! 돌쇠에게만 금도끼 은도끼가 생기라는 법이 있나? 나도 그 연못으로 가서 금도끼 은도끼를 받아 와야지.



다른 사람의 결과만 보고

행위 없이 뚝딱!

내게도 금도끼와 은도끼가 생길 거라 믿는 건 착각이야.



주말에 아이들과

디폼블록 놀이를 했어.


짜자 잔! 

와, 완성이다!!

이름: 미라이돈(세다고 함)




하지만 완성의 기쁨은 잠시야.

관심사는 다음 것으로 옮겨지지.


그보다 즐거움은

천천히 완성품과 닮아가는 과정에 있었어. 




초반에는 대체 이게 무슨 모양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그저 완성품이 저거라니까

설명서만 보고 하나씩 만지작거리는 거지.

눈앞의 블록들을 하나하나 맞춰가다 보니

어느샌가 완성된 미라이돈.


그렇게 될 거 같지 않았던 모양들이 만나

비전과 닮아가고,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다시 또 블록 하나로 돌아와 

조각조각을 맞추어가는 거야.


중간쯤 지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생겨. 배고픈 것도 잊고 집중하게 되고, 내가 이걸 꼭 완성해야겠다는 각오도 서는 거지. 그 과정이 거의 전부야.



수년간 이 책의 원고 작업을 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학자로서 내가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내면소통'이라는 개념과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점차 확고해졌다. 그러다 보니 사명감 혹은 책임감 비슷한 것마저 생겨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공부하게 되었고 원고 분량은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김주환, <내면소통> 서문 중에서 




당시 내 일은 따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연구소 안에서 기계를 만지거나 책을 들여다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파인세라믹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그러면서 파인세라믹이라는 소재가 대단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중략)...


그리고 마침내 어느 순간부터는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마음이 벅찼다. 내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으리라는 긍지와 그 일을 누구보다 잘할 수 있고 잘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일었다. 그랬다. 천직이란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중에서



답답한 마음을 이해해.


이키가이 분석을 하고

성격과 강점을 분석하고

직업적성 테스트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몰라.


결과를 받고

그래, 나는 이거야. 

이게 잘 맞는데. 

그럴 줄 알았어. 

했더라도,


그다음이 핵심이야.


첫눈에 반했을지도 모르지.

가슴 뛰는 확신을 가졌는지도 몰라.


하지만, 천직은

반짝하는 연예 같은 감정이라기보단

오랜 시간 만지작거리며 서서히 내 것이 되어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모습에 가까워.


물론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들면 좋겠지만,

못나고 지루하고 따분하더라도

심지어 안 맞는 것 같아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마음을 내어 시간을 보내고

정성을 쏟아 상대를 관찰하다 보면

알게 되고 이해하면서 사랑이 깊어지지.


주환 교수님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예시를 들었지만 우리 주위에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어.


거창하게 '천직' '사명'이란 표현까지 쓰지 않더라도...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게 되는 과정은

어제까지 아니었다가 오늘부터 천직! 이 아니라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이라는 거지.


그래서 다시

'지금 이 순간'이야.

여기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야.

그 일에 좀 더 정성을 들이고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는 길이야.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최선으로 마무리.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마음을 다해.

그렇게.


클로닌, 

시간이 흐를수록

네 일은 더 견고해지겠지.

세상과 너의 연결고리인 일은

나의 존재를 느끼게 함과 동시에

너를 표현하는 삶, 그 자체야.

오래된 친구처럼

시간이 갈수록 은은한 빛이 나고

언제라도 돌아가면 반기는 안식처.

너의 일이 그런 모습이길.

그렇게 만들어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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