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여태껏 여러 글을 써왔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내 의견이나 생각이 돋보이게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견이나 생각이라고 보이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글을 써서 사람과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어제는 오랫동안 전화를 했으면 하는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원망스럽고 화가 난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전화를 하자, 사실 내가 잘한 게 없으며,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최근에 많이 힘들기 했다. 그러나 그 힘듦은 그저 내가 한심한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 주제에 먹고 살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구독하는 브런치스토리에 글이 올라왔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종교적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니지만, 불교에 관한 이야기와 기독교에 대한 이야기는 좋아한다. 두 종교는 큰 깨달음을 주는 가르침들이라고 생각한다. 불교는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기독교는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기도를 하고 싶다면, 나에게 편한 상징적 공간인 절을 찾지만, 두 가르침 모두 중요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구독한 브런치스토리에 올라온 글은 역사적 예수에 관한 글이었다. 당시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어야 하는 시기라서 유대 사회 내부에서는 스스로를 메시아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과 역사적 예수가 달랐던 이유는 조건 없이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직접 몸소 보여주었다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소중한 신의 뜻대로 만들어진 인간이 서로 싸우고 갈등하는 것은 소중한 신의 자녀들을 다치게 하는 것이니 신의 뜻에 반하는 행위라고 생각하여서라고 그 글은 말하고 있었다.
난 왜 그 사람의 마음을 실컷 아프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였을까. 내가 어떠한 이유로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을까? 그냥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했었다. 나쁜 마음이었다. 내가 고통을 감내해기 싫어서였다.
그 글의 작가 분은 그저 건조하게 역사적 예수의 배경과 그 사상을 짧고 간결하게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것만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생각한 바가 중심적인 내 글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좋은 글을 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좋은 글을 써주는 이들은 큰 댓가 없이 그 일을 하는 것 같다. 그런 이들의 글 쓰는 노고에 대해서 고마움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