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할 수 없는 화자 내러티브를 완성하기 위하여!

by 심준경

소설의 초창기에는 대부분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쓰였으나, 이제는 3인칭으로 쓰여도 대부분 관찰자의 시점으로 쓰인다. 더군다나 난 소설에서는 1인칭 시점을 선호하는 편인데, 왜냐하면 이미 영화라는 스토리 기법이 존재하기 때문!! 영화는 누군가의 속도 들여다 볼 수 없다. 그저 누군가의 속이나 감정 따위와는 상관 없이 그저 계속 외부자의 시점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영화다. 그러나 소설은 누군가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니까, 현대에 소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그 특징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1인칭을 선호하는 편!

그런데 1인칭이든, 3인칭 관찰자든, 누구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느냐, 그리고 누구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세상을 설명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문학에서는 보통 일반적으로 화자에게 요구되는 자세가 '신뢰할 수 있는 화자'다. 독자가 그의 말이나 시선을 믿고 따라가도 된다고 판단되는 이야기 속 화자이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독자가 느끼기에 이야기 속 사건, 인물, 감정에 대해 사실적이고 공정하게 전달하도록 말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소설이 요구하는 화자다.

그런데, 작가의 의도에 따라서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소설은 그런 화자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한참 내 안의 나 자신에 대한 상처가 아물어야 할 때 구상하기 시작한 소설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난 그저 이 화자가 자기기만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애를 쓰다가, 끝끝내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그려내고 싶은 것 같다. 그런데 이걸 주인공의 시점에서 쓰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되어야만 하는 거다. 물론, 다른 이의 시점에서 보면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왜인지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이 이야기에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 네러티브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여러 가지 부차적인 전략들이 동원해보는 중이다. 첫번째는 주인공 W의 여자친구 H를 정서적 앵커로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서적 앵커란 "독자가 감정적으로 붙잡고 따라갈 수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 한 마디로 쉽게 말하자면, 나의 주인공 W가 속마음이나 남 몰래 하는 행동들까지도 알고 나면, 눈에 들어간 흙먼지를 뺴준다고 달려와도 꼴도 보기 싫은 꼴볼견인 사람이다(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문학 시장에 팔리는 책들을 읽으려고 시도할 만한 독자들의 주류 기준일테다.) 그러니 (문학 시장 주 고객층 입장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H를 만들어서 독자들에게 스토리에 계속 눈이 가게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단 뜻이다.

그러니 인성 개차반 W와, 진짜 조금만 성장하면 인격적 매력이 넘칠 H가 사귀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스스로 이런 말을 중얼거리게 되는 거다. H야.... 왜 그런 남자를 만나... 네가 너무 아까워... W가 지적인 척하려고 교만 떨면서 얼마나 속은 교양 없는지!! 이미 넌 알기도 알잖니... 누구에게나 말 못할 아픔이 있는 거란다. 그건 W에게만 있는 건 아니니, 그런 거에 연민 품고 사람과 애인으로 만나고 그러지 마렴... ㅠㅠ

두 번째는 영화 시나리오를 중간중간에 쓰는 거다. 사람이 처음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대부분 유치찬란한 신파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난 첫 소설을 처음 합평 모임에 내놨을 때 이미 등단하신 작가 분이 여러 번 써본 솜씨인 것 같다고 말씀했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해봄.... 괜히... 사실 지금 브런치매거진으로 올라간 '생존의 발명'에서 스토리 라인은 많이 안 변했다.) 그리고 그 유치찬란한 신파를 W가 쓰게 만드는 거다. 그것도 H마저도 안 보여줄만큼 비밀스럽게...

그리고 그 유치찬란한 신파로 치장된 힘을 빌려, 내 나름의 아픔을 써넣어간다... 휴... 아... 난 어렸을 적부터 미세근육 조절이 일반적인 사람들보단 안 되었고, ADHD로 주의 집중을 요하는 일을 잘 못했다. 그래서 스포츠에 대한 관심, 순발력이 필요한 무언가에 대한 관심을 스스로 전부 포기해버렸다. 몸을 어디에 부딪히거나, 뭐, 어떤 동작을 체계적으로 주의있게 하질 못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른 채 그렇게 살았고, 어렸을 적에는 그러한 관계로 부모님과 선생님들께 지적도 많이 받았고, 학급에서는 우스운 애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장면을 오늘 아침에 넣었는데...

하필이면... 사실 내가 알바로 하는 일은 그래도 일정 정도의 주의가 필요로 한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을 조금씩 부주의하게 친다거나, 내가 물건을 놓쳤는데 고객사의 입장에서는 비싼 물건이기에 인상이 찌푸려진다거나... 하필이면 오늘 그런 일들 떄문에 뭐라 한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였다... 아니, 사실 매일 들었지만 오늘은 쫌 심하게 짜증을 내긴 하더라... 그래서 뭐... 괜히 그 소설과 연계되는 것 같고 그러더라... 아... 난 그런 것들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그냥 포기하면서 살아왔는데, 그게 정말로 요구되고 있구나... 하며, 괜히 마음 속에 절망 같은 게 더 심해지는 느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내러티브를 완성하는 일에는 내 안의 고통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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