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도 보기 싫은 주인공을 참아내는 법

by 심준경

나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이질적인 주인공을 써내려가는 일은 고통스럽다. 이전에 아예 없었던 일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때가 소설이란 걸 써본 초기의 일이기에, 솔직히 인물에 대한 탐구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았다. 그때는 대충 상처 받은 20대 후반의 남성은 대충 이런 느낌의 말을 하겠지? 그건 마치 신문에서 한두 문장 인용하는 지나가던 행인 인터뷰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그건 내 내면이 그리 불편할 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묵히고 묵혀온 주제를, 내 나름대로 시간을 들여 갈고닦은 기량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람으로 그려내는데... 젠장... 이번 주인공 W의 그... 망할... 방어적 경계심리가 상대에 대한 통제 욕구로 드러나는 부분, 상대를 무조건 내리깔고 무시하고 싶어 하는 속마음... 무엇보다도 어떤 면에서 심각한 자기모순을 갖고도 그걸 발견할 때마다 대충 뭉개고 가고 싶어하고, 부끄러움을 느낄 줄을 모르는 그 내면....

주인공의 심각한 자기 모순이라면 예를 들면 이런 거다. W는 고등학교를 자퇴했었던 인류학과 대학원생이다. 그래서 학교 밖 청소년을 연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무의식 중에 상상하는 학교 밖 청소년이란, 공교육 제도가 거추장스러워서 혼자서 수능 공부하는, 대입 전략으로써 자퇴를 택한 청소년이다. 그런데 그가가 사실 고등학교를 상처 받아서 떠났다는 사실을 무의식 중에 숨긴다. 그런데 심각하게 신파적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에휴... 이런... 미성숙한 놈!! 하면, 사실은 내 모습이 상당히 많이 반영되어 있다.

난 학교 밖 청소년을 연구하겠다고 하면서 무의식 중에 대입 전략으로 자퇴를 한 학생들을 상당히 많이 고려했다! 그렇게 말하고 자퇴한 다른 친구도 있고... 그런데 대학원을 졸업하는데에 고전하던 어느 한 시절, 나의 과거를 상당히 많이 성찰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마침 대입을 위해 자퇴했다는 다른 친구에게 연락이 왔었다. 친구는 직장을 잡았으나, 몸에 큰 병이 들어 관두었고 치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실은 그 때, 그렇게 말하고 자퇴했으나, 사실은 친하게 지내면서도 일상적으로 무시받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고... 그런데.. 이러고 있는 W를 보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인데, 심지어 내가 W의 행동 하나하나를 직접 써줘야 한다. 그런 떄면 진짜 싫다...


그런가 하면 주인공에게 내가 없는 방면으로 참 치사하고 꼴도 보기 싫은 부분이 있다. W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랜덤 채팅을 켜고, 18살 여자인 척하며, 그걸 무기로 변태 남성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며 굴욕을 주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내가 너무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자책하고 그만하기 보다는, 어차피 상대는 미성년자한테 허튼 짓하려고 했던 놈이라고 정당화한다. 망할 자기정당화...

그런데, P를 만나는 장면이 있다. P는 여러 모로 W의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직간접적으로 떠올리게 만들 고등학교를 자퇴한 학생이다. 연구참여자 모집이 힘들어 스트레스를 받아서 랜덤채팅에 접속한 순간, W가 18살 여자인 척하면서 만나게 된 남자 학교 밖 청소년이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자신이 연구참여자로 모집할 수 있을까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23살 여자라고 한다(나중에는 W가 H에게 자신인 척하고 한두 번 만나달라고 쓸 예정이다... 그 장면을 써야 할 생각을 하니 벌써 스트레스가....) 그러면서 W는 자신이 18살이라고 말한 이유를 자신이 골려줘도 될 사람인지 아닌지 테스트하는 거라고 말하는 거다. 18살이라고 말할 때 건드리려고 들면, 나쁜 놈이니까 골려먹어도 되는 거라고. 순진무구한 P는 "아... 그런데 남자들은 그런 성적 판타지도 있긴 한 것 같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W는 속으로 이러는 거다. "ㅋㅋㅋㅋㅋ 알지, 이놈아, 나도 남자인데 알지! 같은 20대 초반 일본 포르노 배우인데도 교복 입혀놓고 벗는 장면 보면 괜히 더 꼴릿한 거!"


이 장면을 쓰고는 속으로 내가 얼마나 더 흉악한 인간을 써나가야 하는 건가 절망감이 들었다. 그렇게 한동안은 이 소설 따위는 때려치우고 싶더라.. 아... 한국 남성들의 그 놈의 교복성애... 솔직히 난 교복에 대한 성적 판타지 같은 건 없다. 차라리 다른 판타지는 있더라도... 그런데, 이 장면을 쓰는 순간,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W의 자기정당화와 자기기만에 치를 떨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타자가 나가고 나니 한동안 타이핑을 쓰기가 어렵더라... 아... 독자도 책을 덮으면 어떡하지... 몰라!! 이 장면은 기능적인 대화 장면이고, 서사 전개에 중심이 될 장면은 아니니까, 나중에 지우면 그만이긴 한데!! 문제는 그냥 W가 진짜 꼴도 보기 싫어졌다는 거!

이럴 떈 하나의 방법이 있다. 후에, W가 자기 기만과 자기 정당화를 모두 직시하는 장면을 어떻게 구성할지를 계속 상상하면 글을 쓰는 거다. 소설 쓰기란 그런 헝태일 때가 많은 것 같다. 내가 도달하고 싶은 종반부의 한 장면을 향해 서사의 세계를 계속 구성해나가는 형태...


물론 퇴고가 아니라 초고를 쓰는 방식이 그렇다는 거다. 이번에는 주인공이 혐오스럽기에 그 장면에 주인공이 어떤 자기성찰과 통한을 느낄지를 많이 생각하는 거다. 주인공 W가 H와 헤어지게 되리란 걸 깨닫게 되는 순간, 주인공은 잘 듣지도 않는 Linkin Park의 What I've Done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거다. 이 소설에서는 Linkin Park의 Hybrid Theory와 Meteora 앨범이 W의 감정을 표현하는 장치로 많이 쓰이는데, Linkin Park의 이후 앨범을 배신이라고 부르는 W가 그 음악을 듣고 운다.


In this farewell, There's no blood, There's no alibi

이 작별 속엔, 피도 없고, 변명도 없다

Cause I've drawn regret, From the truth, Of a thousand lies

나는 수천 개의 거짓 속에서, 진실을 마주하고, 그 진실이 불러온 후회를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So let mercy come, And wash away, What I've Done

그러니 자비여 오라. 그리고 내가 저질러온 모든 것을 씻어다오
I'll face myself, To cross out what I've become

나는 내 자신과 마주하리라, 내가 되어버린 모습을 지워내기 위해


휴.... 통쾌!! 이제는 What I've done만 들으면 속이 후련해지고 통쾌해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W는 H와 완전히 결별하고, H에게 전화를 거나 자신이 차단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서는 2017년 체스터 베닝턴의 유고 이후, 마이크 시노다가 부른 노래를 들으며 통곡한다.

린킨파크의 음악적 성장을 위해 선택한 길을 배신한 거라고 명명하고, 그 배신을 주도한 마이크 시노다가 체스터 베닝턴을, 체스터의 본 모습에서 멀어지게 해서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사실상 죽인 거라고 정의 내리던 그가... 마이크 시노다의 체스터에 대한 추모 음악 Looking for the answer를 들으며 운다. 실제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서 흐느끼듯이 울것이며, 반복재생하는 음악에서 마이크의 가사 한 마디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찌를 것이다.


There's an emptiness tonight, A hole that wasn't there before

오늘 밤은 허전하다, 예전엔 없던 구멍이 마음에 뚫린 듯

And I keep reaching for the light, But I can't find it anymore

나는 계속 빛을 향해 손을 뻗지만,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

There's an emptiness tonight, A heavy hand that pulls me down

오늘 밤은 공허하다, 누군가가 날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손

They say it's gonna be alright, But can't begin to tell me how

사람들은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지만, 그 방법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And I ask myself out loud.

그래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Have I been lost all along? Was there something I could say? Or something I should not have done?

처음부터 길을 잃고 있었던 걸까? 내가 했어야 했던 말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 있었던 걸까?

Was I lost all along? Was I looking for an answer when There never really was one?

나는 줄곧 길을 잃고 있었던 걸까?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답을 계속해서 찾아 헤맨 건 아닐까?

Was I looking for an answer when There never really was one?

정작 답은 처음부터 없었는데, 그 답을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 노래를 들으며 통곡하고 무너질 W를 생각하면, 이 서사의 세계가 결과적으로는 바로 잡힐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 다행이다. 생각이 든다. 이건 단순한 통쾌감 이상의 감정이다.


통쾌감이라는 감정은 내가 현실을 바로 잡을 수는 없을 거라는 데에서 기인한다고도 생각이 든다. 바로 잡을 수 없는 현실에서는 나의 관점에서의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놈을 악한 놈을 벌해줄 수 있을 때에는 통쾌감이 든다.

그런데 현실이 바로 잡힐 수 있을 때에는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괜찮은 놈과 못난 놈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은 대부분의 명제에 대해서는 "당연하지!"를 외치는 존재다. 내가 지금 묘사하는 장면의 W를 붙잡아와서 묻는다. "애야, 인생이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러면 십중팔구 인생에 정답이 어딨어?라고 외칠 거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담론적 차원에서는 진리를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인생의 깨달음과 통찰은 많은 부분 감정으로 느끼고 통곡해서 깨닫기 전까지는 진리를 내가 마주한 현실에 적용하지 못한다. 그런 깨달음을 느끼고 스스로 각인시키기 위하여 예술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인 인간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런 못난 놈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주인공이 무너질 순간을 생각하며 이 못난 주인공을 참아내고, 버텨내며 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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