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애매한 공간은 위험하다

분노, 그 이후

by 심준경

한동안 비활성화했던 페이스북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다시 닫았다. 이번엔, 완전히 지웠다. 닫기까지의 사건은 사소했다. 그러나 사소한 글 하나가 내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 분노가 가능했던 건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의 특성 때문이다. 페이스북은 길게 쓰면 공적인 글처럼 보이고, 짧게 쓰면 사적인 말처럼 보이는 공간이다. 그래서 공적인 논의에 사적인 감정들이 쉽게 투영된다.

내가 분노한 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공화국은 시민을 사형시킬 권한을 가져선 안 된다. 그러나 내란죄의 경우는 국가와 구성원 간의 온전한 관계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내란은 국가라는 체제 자체를 공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란죄를 범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는 국가와 국가 바깥으로 나간 누군가와의 전쟁 상황에 가깝다. 그러므로 그의 사형 집행에 대한 반대를 일반적인 사형 반대론으로 곧장 연결짓긴 어렵다.

나의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견해였다. 이런 말을 하면 내가 보수 극단의 리버테리안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국가라는 체제를 ‘필요악’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다만 내가 보수적 리버테리안과 다른 점은, 시장경제 체제 역시 필요악이라 본다는 데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보겠다. 선사 시대의 수렵채집인이 이 시대에 떨어졌을 때 금방 적응할 수 있는 것을 ‘생활세계’, 그렇지 못한 것을 ‘체계’라고 한다면, 나는 체계에 속하는 모든 것을 대체로 필요악이라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고안해낸, 협의된 필요악 말이다.

공화국 체제 역시 그렇다. 우리가 욕망을 조율하기 위해 합의한 체제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선이기 때문은 아니다. 이 체제를 무너뜨리려 한 자는 오늘날에는 악인일 수 있지만, 다음 시대에는 영웅일 수도 있다. 물론 내 판단은 윤석열 전 대통령은 그 어떤 시대에도 악인일 거라는 것이지만.

법적 체계 안에서만 이야기해보자. 내란죄는 공화국의 구성원인 시민만이 저지를 수 있다. 그 시민은 공화국 체제가 정당하지 않다고 믿었기에,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 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자신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데 자신에게 권한이 있어서 국헌문란을 시도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내란죄의 경우, 지금의 공화국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내란죄를 저지른 자가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역량이 있었는지는 법적 판단의 테두리 바깥에 있다는 것.


또한 공화국 체제 안에서 사고하는 사람들은, 체제 바깥을 향한 그 꿈이 더 나은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고의 조건 자체가 현 체제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공화국 체제를 공격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죽여도 된다는 논리는, 나에겐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시민은 공화정 체제를 공격해도 여전히 시민이고, 현행 공화정 체제는 우리가 합의한 것일 뿐 절대선이 아니다. 따라서 사형 집행을 해야 한다는 이유는 어떠한 타당성을 갖기 어렵다.

나는 이렇게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대를 보자마자 떠올린 건, “저 자가 또 ‘민주당의 적’에 대해 기이한 예외론을 늘어놓고 있군”이라는 생각이었다. 상대는 얼룩소의 천관율 에디터였다.

그가 속해 있던 플랫폼인 ‘얼룩소’에 대해서는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얼룩소는 처음으로 내 글에 돈을 준 곳이었다. 처음 글을 썼던 건, 이준석 의원의 ‘경마장 역’ 발언에 분노했을 때였다. 그렇게 올린 글이 반응을 얻었고, 플랫폼에서 원고료를 지급받았다. 하지만, 그 다음 내 비판의 화살이 민주당 쪽으로 더 강하게 향하자, 원고료는 더 이상 지급되지 않았다. 더 이상 내 글은 메인에 뜨지 못했다. 물론 플랫폼 입장에선 단지 글이 덜 읽혔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깊은 유감을 주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공적이면서 사적이기도 한 페이스북이라는 공간에서 공적인 논의를, 내가 보기엔 서툴게 하고 있는 상대를 마주치자, 내가 쌓아온 사적인 유감이 갑작스레 폭발해버렸다. 감정은 한동안 수그러들지 않았다. 한동안 그 분노의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다. 왜 이렇게 화가 났는가? 무엇이 나를 흔들었는가?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하나의 깨달음에 도달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애매한 공간은 정말 위험하구나.


p.s. 윤석열 전 대통령이라고 꼬박꼬박 글에서 써넣은 것도 공적인 것은 나름의 공적인 형식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적으로 그를 부를 때 전 대통령까지 부르진 않지… 그러나 그는 한 때 우리나라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대통령으로 당선된 자이며, 지우고 싶더라도 그건 현실임을 어쩔 수 없다. (전두환 씨는 민주적 정당성 따윈 없었으니 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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