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평택에서 일을 하다가 도저히, 더 이상 못 하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최근에 스트레스 받는 일들이 많아서인가... 유난히 감정적인 피로감과 무력감이 들어 도저히 일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암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느낌에 온몸이 축 쳐졌다. 그냥 참고 넘겼어야 했지만, 무기력감이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다. 일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 없게만 느껴지고, 도저히 무기력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2시간 반 들여 평택까지 내려가면 뭐하나... 두 시간도 일 못하고 바로 조퇴를 했다. 셔틀을 타지 않고 서울로 귀가하려니 되려 더 오랜 시간이 걸려 3시간 반 후에야 집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 이런 무기력감과 감정적 피로감은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에는 이런 때에 집에 가서 누워있으면 나중에 내적인 분노로 변환되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 술을 마시고 넘겨봤자, 남는 것도 없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런 무력감과 자괴감이 들면 노래방에 자주 간다.
린킨파크 음악을 최근에 다시 아주 많이 듣게 된 것은 내 소설의 주인공이 그 음악을 좋아한다고 설정해서다. 언젠가 퇴근 셔틀 도착지에서 집근처 노래방까지 걸어가면서 그들의 음악을 들었다가, 그들의 음악을 노래방에서 불렀는데 얼마나 속이 풀리던지, 요즘은 그들의 노래를 많이 부른다.
"It makes me think of how you act to me
You do favors and then rapidly you just turn around
and start asking me about things you want back from me
I'm sick of the tension, sick of the hunge, sick of you acting like I owe you this
Find another place to feed your greed While I find a place to rest"
"The sacrifice of hiding in a lie
The sacrifice is never knowing why I never walked away, why I played myself this way
Now I see your testing me
pushes me away
I've tried like you to do everything you wanted to
This is the last time I'll take the blame for the sake of being with you"
"I kept everything inside
And even though I tried, it all fell apart
What it meant to me will eventually be a memory of a time when
I tried so hard and got so far
But in the end, it doesn't even matter
I had to fall to lose it all
But in the end, it doesn't even matter"
"I'm tired of being what you want me to be
Feeling so faithless, lost under the surface
I don't know what you're expecting of me
Put under the pressure of walking in your shoes
Every step that I take is another mistake to you
I've become so numb, I can't feel you there, become so tired, so much more aware
I'm becoming this, all I want to do is be more like me and be less like you"
내가 초등학교 때 애국가보다도 Linkin Park의 노래 한곡 한곡을 더 많이 들어봤을 거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호주 생활을 할 때, 형이 사온 음악 Linkin Park CD 앨범. 그 음악이 왠지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Mp3에 넣은 채 매일 들었다. 거의 한국 대중가요는 듣지 않았고, 그 음악들만 들었다.
지금 와서 노래방에서 부르며 이 곡들의 가사에 집중하다 보면, 하나의 뚜렷한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다. 갈등에 대한 1차원적인 시각. 상대의 욕망은 집요하고 못 된 것이며, 나의 욕망은 정당하고 얼마 이루어지지 못했다. 상대의 감정적 반응은 당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며, 나의 감정적 반응은 당연한 것이고 인간적인 것이다. 갈등에 대한 이런 1차원적인 시각들에 감정 이입하면서 내가 욕하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내가 버림 받았다고 느끼게 한 자들, 나를 자기네들 부속품 정도로 취급한 인간들!! 그런 감정 이입을 하고 이런 비난을 하고 있으면 속이 시원해진다.
린킨 파크 다음은 피아다. 아마 난 린킨파크의 첫번째 내한공연을 관람한 최연소 관객 탑5 중에 한 명이었을 거다. 그때 난 12살이었으니까... 2003년 린킨파크의 첫 내한공연의 오프닝 무대를 맡았던 밴드는 피아였다. 그게 내가 피아를 알게 된 첫 계기였다. 피아는 린킨파크의 음악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듯했다. 그러니 린킨파크의 악 쓰는 노래가 끝나고 나면 피아의 악 쓰는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변해버린 가치
탐욕을 찾아 버려야 했던 그 모든 것
순수를 찾아 거리에 지쳐 헤매야 했던
넌 또 다른 나
여기 변해버린
이미 잊혀진
네가 원한
또 다른 나"
"때늦은 밤이면 또다시 스며드는 목마름과
내 머릿속 짓누르는 메아리로 뒤척이겠지
모두가 날 차갑게 내던진 건 상관치 않아
그보다 처량한 건 잃어버린 너의 순수함"
"네가 갖춘 네가 만들어낸 이 거품나라는
살아있는 유령들과 혈충들의 땅
너 과연 살아 숨 쉬는 걸까
어쩌면 너는 이미 그걸 알 수 없을지도 몰라
어차피 널 가진 그 유령은
너보다 더 너 같으니까
유치한 위선에 겁없는 거짓에
너를 삼켜버린 더 이상은 네가 아닌 너
언젠가는 너의 모든 걸 후회하겠지
너를 가둬버린 넌 더 이상 네가 아닌데
언젠가 넌 깨닫겠지 되돌릴 수 없다는 걸"
"하나만 기억해 난
기어서라도 널 물고 늘어져
치욕적인 그날, 터질것 같던 그날같이
잊지않고 돌려주겠어
네 기억에 새겨주겠어 기억해"
"하지만 그는 또다시 내게로 와 그냥 그렇게 이해해라
사는건 그런거다 하지만
뭘 내게 원했던지, 그게 뭘 하라는 건지
결코 타협할 수 없어
비참해진 날 봐
기억해 난 널
그리고 네가 원한 전부를
기억해 난"
피아라는 가수를 지금 와서 보면 '순수'라는 단어에 굉장히 집중하는 가수라는 걸 알 수 있다. 나의 생각과 욕망, 그리고 감정은 모두 순수한 것이다. 그리고 상대의 생각과 욕망, 그리고 감정은 모두 타락한 것이다. 정확히 내가 한국의 진보들이 내세우는 의제에 공감하면서 그들의 해결책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이유들인데... 정확히 그런 구도로 그려진 이 노래들을 부르고 있으면 속이 시원해진다. 이 노래들에 감정 이입하고, 한 없이 미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른다.
갈등은 여러 가지 차원으로 살펴볼 수 있다. 갈등을 바라보는 차원을 편의에 따라서 나누어보자. 1차원은 감정적 반응이다. 바로 나의 감정은 인간적인 반응이며, 상대의 분노 같은 감정적 차원은 자기가 알아서 컨트롤해야 할 것을 거칠게 분출한 것이다. 나의 욕구와 욕망은 지당한 것이고 정당한 것이며, 상대의 욕구와 욕망은 탐욕이며 이기적인 속성이다. 나와 상대가 다른 생각을 한 것은 상대가 나를 이용하고 버린 것이다. 나의 이상은 꼭 실현되어야 하는 유토피아이며 나의 욕망은 개입되어 있지 않다. 반면에, 상대의 이상은 상대의 탐욕에 의한 것이다. 한국의 진보는 그와 같은 시야로 항상 사안들을 바라봐왔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소아병적 의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1차원적인 시야로 갈등을 바라보며 분노하고 상대를 제어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의롭기만 한 사람들...
2차원적으로 갈등을 본다면 나의 욕망은 이런 것이고, 상대의 욕망은 이런 것이다. 나의 욕망은 이런 맥락에서 나오게 되었고, 상대의 욕망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와 같은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3차원적으로 갈등을 본다면 아마, 나의 입장과 상대의 입장을 제 3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4차원적으로 갈등을 본다면 제 3자적인 시각 또한 제 3자의 생각이나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까지를 고려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많은 갈등을 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시야를 넓히려면 갈등을 4차원으로 보면서도 사안을 동태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 것 같다. 이 갈등에서 A는 이 갈등에서 (가)와 같은 일들을 벌였고, B는 (나)와 같은 일들을 벌였다. A는 여기서 (다)를 원해서 일을 벌였고, B는 (다)를 하면 (라)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라)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은 B가 자신의 것이 빼앗긴다는 생각에 과장하여 생각한 것이며, A가 (다)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다수의 사람들이 부당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A가 (다)를 얻기 위해 (가)와 같은 행동들을 한 것이 용인된다면 궁극적으로 향후에 다수의 사람들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사태까지 갈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A가 (가)를 반성하면서도 (다)를 얻을 수 있는 (마)와 같은 해결책을 통해서 이 사태가 다수의 눈에도 괜찮게 여겨질 것이다.
내가 이렇게 복잡하게 갈등의 국면을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감정 밑바닥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깨달은 일도 많이 있었다. 갈등을 2차원적, 3차원적, 4차원적으로 바라봐야 하고, 그것을 동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여기지만, 막상 남들과 갈등을 맞이하는 국면에서는 내 마음 속의 감정은 1차원에 한정되어 있기만 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때가 있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보일까. 객관적으로 이 갈등은 어떻게 보일까 등을 복잡하게 생각하다가도 그런 1차원적인 감정이 쌓이고 폭발하면, 그저 끝도 없이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심지어 내가 하지 않을 일들까지도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지난 봄에 그렇게 행동하다가 결국 내가 한 때는 인생에서 같은 것을 바라는 동지라고 생각했던 몇몇 사람들을 차단하는 일까지도 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터뜨려진 분노 이후에는 후회만 남았다.
이제는 분노가 차오르기 전에 내 마음이 가라앉고 답답하다는 느낌이 들면 노래방에 간다. 그리고 갈등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하기보단 노래방에선 악을 써서 감정부터 풀어준다. 악을 쓰는 노래를 부르다가 그래도 마지막 곡은 피아의 'My bed'를 부른다. 절망 속에서도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느낌이 나서 그 곡을 마지막으로 악을 쓰고 나면 모든 게 후련해진다.
"막다른 길에 멈춰 울며 떨었던
어둡고 혼자임을 느낀 그때
어디에도 따스함은 없었어
겁에 질려 모든 게 두려웠고
모든 게 떠나버릴 것 같아 난 차마 난
손을 내밀 수도 없었어
난 누굴까
나 어디로 갈까
어디서 멈춰서 있나
나의 바다여
다시 꿈을 꾸는 나에게
불 같은 축복을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택했던
조금도 망설임 없던 무모했던 때
내 곁엔 그 누구도 그 누구도 없었어
소리쳐도 지독한 비웃음만 울릴 뿐
나 내게 물어 왜일까 난 어딜까
초라한 뒷모습만 남아
난 누굴까
나 어디로 갈까
어디서 멈춰서 있나
나의 바다여
다시 꿈을 꾸는 나에게
불 같은 축복을
다시 부딪혀 버려진다 해도 나에게
못다한 다짐을
나 어디로 갈까
나 어디로 갈까
나 어디로 갈까
돌이킬 수 없는 길을 택했던 조금도 망설임 없던 무모했던 때
내 곁엔 그 누구도
그 누구도 없었어
나의 바다여
다시 꿈을 꾸는 나에게
불 같은 축복을
다시 부딪혀 버려진다 해도 나에게
못다한 다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