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답을 못 찾은 소설

by 심준경

한동안 소설에 손을 대지 못했다. 사는 게 바빴다. 시간이 없었다. 먹고 사는 게 참 힘들더라.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조금 솔직해지겠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서 소설을 쓰는 거다. 내가 먹고 사는 일에 쓰는 시간은 그리 많지도 않다.


실상은 쓰고 싶은 마음이 그리 크게 들지 않는 소설이다. 썩 유쾌한 내용의 소설이 아니다. 밝은 분위기가 아닌 소설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힘든 일들에 관련된 내용이다. 그래서 손을 대기가 싫더라.


간만에 소설 초고에 손을 대었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 이 초고도 예외는 아니다. 건질 문장이 그리 많지 않았다. 왜 이리 많은 문장을 말줄임표로 끝냈는가, 이 소설 주인공 우현이 말줄임표로 혼잣말을 마칠 성격의 캐릭터도 아니지 않은가. 하연이란 캐릭터의 매력이 왜 이렇게 느껴지고 있지 않은가. 좀 더 캐릭터 설정에 부합하게 장면을 다시 설계하자.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소설의 초고를 다시 손보았다. 그러나 도저히 진도가 나아가지 않는다. 난 왜 이 소설에 계속 매여 있는가. 또, 그러면서도 왜 이 소설은 진도가 나아가지 않을까. 그 이유는 이 소설 자체가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소설을 처음 떠올릴 때 생각했던 것은 잊혀진 트라우마에 대한 슬픔이다. 이 소설 캐릭터의 트라우마는 내가 가졌던 트라우마들과 동일하다. 트라우마는 동일하지만,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 트라우마를 풀어가는 사람. 나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을 하고, 나라면 쓰지 않았을 말을 쓰는 인물, 그래서 파멸을 맞아가는 인물이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트라우마는 다음과 같다. 미세한 근육을 잘 쓰지 못하기에 글씨 때문에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꾸짖음을 들어야만 했던 일. 그러한 연유로 운동 신경이 좋지 못했기에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던 일. 그것이 ADHD와 같은 개인적인 특성과도 맞물렸기에 여기저기 부딪히며 돌아다녔던 일. 그것 때문에 괴롭힘의 대상도 되고, 비웃음의 대상, 꾸짖음의 대상이 되었던 일.


그리고 그로 인해서 내 성장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던 일. 고등학교를 자퇴까지 할 정도로 청소년기가 많이 우울해졌던 개인적인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고등학교를 다닐 때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이름 알려진 대학에 진학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자 나의 성장기가 실패의 서사에서 성공의 서사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나의 주변 인물들에게 내 인생을 괴롭혔던 모든 일들이 인생의 심대한 장애가 아니라, 성공 서사의 일시적인 고난 정도로 뒤바뀐 느낌이었다. 나는 대학교 재학 시절부터 이러한 트라우마로 계속 심리 상담을 받아야 했고, 대학원 재학 시절 논문 발표가 어려울 정도의 증세가 있었다. 그러나 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부족한 게 뭐길래, 논문 진행을 어려워하는지 묻고는 했다.


그런 서러움이 있어서였을까. 대학원 논문을 써가던 시기, 나와 같은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 나와 같은 트라우마로 홀로 괴로워하며 파멸에 치닫는 서사를 혼자 생각하곤 했다. 장편 소설 ‘컬쳐 오브 테러’의 핵심 갈등들이 상정된 것은 그런 과정에서였다.


그러다가 작년에 혼자 소설을 써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이제 그런 트라우마와 상관 없이 살아간다. 어떠한 놀림도, 괴롭힘도, 꾸짖음도 받지 않도록 내가 완벽한 인간이여야 한다는 어떠한 강박과도 거리가 멀게 살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 나를 괴롭혔던 일들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모든 걸 타이핑하는 시대에 내 악필은 어떠한 힐난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운동 신경이 좋지 못해 구기 종목처럼 사람들과 같이 하는 스포츠를 안 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운동을 아예 못한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녀야 이상한 애 취급을 당하지 않는 청소년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이와 같은 신체적 특성은 유전될 가능성도 희박하다기에 설령 아이를 낳더라도 같은 고민을 내가 해줄 이유까지도 없다.


애초에 난 과잉행동이 없이 주의력 결핍만 있는 조용한 ADHD였기에, 사회생활에 큰 무리가 없다. 여전히 내가 관심이 없는 일에 집중을 잘 배분하지 못하고, 관심 있는 것에만 과몰입하는 경향은 있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채택했기에,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작년에는 잠시 면세점에서 카트를 모는 알바를 해서 문제가 생겼지만, 그런 일은 피하면 그만이다.


이제는 나의 고민과 큰 관련이 없는 성장기 트라우마에 대해 이야기를 잡다 보니 내 관심도도 줄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것이 아닐까.


이제는 이 서사를 파멸의 서사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난 그 트라우마때문에 더 이상 괴로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파멸을 향해 달려가던 사람이, 파멸하고 끝을 맞이하는 소설이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 파멸로 인해 성장하는 소설로 그려져야 한다.


그런데 성장의 서사를 쓰려면, 무엇이 날 그 트라우마로부터 괜찮게 해주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아직 그 답을 못 찾았다. 그런 고민을 하며 글쓰기 과제 우선순위에서 이 소설을 뒤로 물리기로 했다. 다른 단편 소설들을 완성하고서 이 소설을 다시 고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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