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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 현재학 Mar 31. 2024

촛불정국 이후 불의한 사회에 대한 대중적 상상력의 변화

2010년대의 내부자들과 2020년대의 댓글부대

영화의 현재학은 영화의 내용을 통하여 현재를 탐구하고자 하는 콘텐츠로 영화 내용 전반을 담아내고 있으며,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읽지 않기를 권장드립니다.


영화 댓글부대의 시작은 2016년 촛불정국에 대한 상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어처구니없는 상상이긴 하다. 중학생이었던 한 학생이 1992년 하이텔 유료화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최초의 촛불집회를 기획하였다. 그로부터 24년 후 당시 중학생이었던 중년의 남성은 도를 넘은 정권과 재벌들의 유착관계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촛불집회를 열고자 했고, 그의 동생이 인터넷 홍보를 도우며 사람들이 모여 촛불을 들게 되었다. 그리고 만전의 여론전담 팀장은 댓글부대 팀 알렙의 리더 찡뻤킹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가 중학생 하나 때문에 곤경에 처한 후로는 여론전담팀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한다(이 장면은 나중에 허구로 드러나긴 하지만, 영화 자체가 허구의 스토리이다).


이는 정말로 사실과는 다르지만, 따지고 보면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거짓말이긴 하다. 바로 2017년의 탄핵 정국이 미완의 민주화였던 87년 체제에 대한 시민들의 투쟁이라는 어떤 이들의 주장에 따른다면, 그것은 통용될 수 있는 주장이기는 하다. 재벌들이 정관계 로비를 하며, 언론사를 돈으로 움직이면서 유지되던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그것이 2017년의 시민들의 승리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집요하게 주장되는 서사에 의한다면 그것은 통용될 수 있는 창작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지는 또 다른 문제이기는 하다. 왜냐하면 촛불정국은 백남기와 한상균으로 대표되는 민중운동 진영의 민중총궐기에 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들이 가세하여, 주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던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87년 체제에 대한 상상력을 그대로 옮겨놓은 영화가 하나 있었다. 바로 2015년 11월에 나와서(개봉 직후 평론가들의 평점은 저조하였음에도), 2016년 촛불 정국 도중에 진행된 청룡영화제에서, 시기에 딱 맞아떨어졌던 관계로 최우수작품상까지 거머쥘 수 있었던 영화 '내부자들'이다. 여기서 내부자들은 재벌, 고위검찰, 언론사 내의 실력자, 청와대 고위관료, 여당의 유력한 정치인 등 작중 미래자동차의 회장 오현수의 성접대 파티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권위주의 정부 시기에 한껏 권세를 누리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탄압하던 주체들이었으며, 형식적 민주화를 이룬 후에도 대중들을 속이며 자신의 이해관계에 맞도록 모든 일들을 처리한다. 이 파티 장면에서는 한때 어떤 고위 관료가 농담으로 따라한 사실이 확인되어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만든 "어차피 대중들은 다 개, 돼지입니다."라는 말이 한 언론인의 입에서 발화된다.


87년 체제에 대한 상상이 그대로 담긴 이 영화에서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바로 이들 모두에게 복수를 남기고자 계획하는 조폭 안상구이다. 이 영화의 세계에서는 조폭 안상구의 행동 양식과 사회지도층으로 불릴만한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 유력대권후보 장필우, 오현수의 수행비서 조 상무, 서울지방검찰청 특수부장 최충식, 청와대 민정수석 오명환의 행동 양식은 매우 유사하다. 조폭, 재벌, 검찰, 관료 모두 자신의 조직을 대할 때와 자신의 조직 바깥에 있는 사람을 대할 때는 태도가 사뭇 다르다. 조직의 바깥사람들을 대할 때는 한없이 위압적으로 행동한다. 이 세계에서 그나마 가장 정의롭게 행동하는 검사 우장훈마저도 자신을 수행하는 수사계장을 대할 때는 위압적으로 행동한다. 제보를 하러 온 미래자동차 재무팀장 문일석을 대할 때도 위압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압적인 태도는 자신의 조직원이나 다른 내부자들을 대할 때는 발휘되지 않는다. 그들은 끼리끼리 서로 다정한 말투, 혹은 상냥한 말투로 말한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 자신의 아랫사람은 챙겨줘야 할 존재이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힘으로 밀어붙여야 할 때는 또 힘으로 밀어붙인다.


이러한 행동 양상은 작중 조폭 안상구가 하는 행동 양상 그대로이다. 이러한 행동 양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내부자는 작중에서 딱 한 사람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벌 그룹의 회장인 오현수다. 즉, 내부자들의 세계는 재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체제이며, 재벌이 정치 지도자를 후원하고 정치판을 기획하는 것은 논설주간인 이강희를 통해서이다. 이강희는 이를 위하여 정치깡패 안상구를 동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야당의 정치인은 이에 대해 무력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국가의 번영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생존이 더 앞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검사 우장훈은 이전에 사제 관계로 만났던 야당의 의원에게 실망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내부자들을 모두 감옥으로 보낼 수 있는 계획은 조폭 안상구의 머릿속에서나 나올 수 있다. 우장훈과 안상구는 감옥에서 평생을 보내야 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라도 내부자들 모두를 감옥에 보내는 데에 진심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촛불정국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이 체제를 타파하기 위해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갔던 사건이다. 그렇기에 영화 댓글부대의 시작처럼 한 중년의 남성이 인터넷에 촛불을 들고나가게 했고, 그 동생이 그것을 홍보하는 포스터를 올려 촛불정국이 시작되었다는 거짓말이 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다. 그렇지만, 영화 댓글부대는 그 이후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 아닌 것 같다는 하나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 관점에서 영화 댓글부대의 인물들을 분석하고자 한다.


영화 댓글부대에는 검찰도, 고위관료도, 조폭도, 그리고 요란법석한 파티도 등장하지 않는다. 재벌 회장은 영화 전반에서 등장하지 않지만, 만전의 직원은 모두 그에게 유리하도록 현실을 조작해주고 있다. 재벌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언론을 컨트롤하는 데 필요한 도구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딱 여론전담 팀장, 그리고 마땅히 취업할 곳이 없던 이영준, 그리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제보자를 비롯한 150여 명의 여론전담팀뿐이다. 검찰은 화면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재벌 기업 회장들을 위하여 사실적시 명예훼손 죄 민원을 처리해 주는 공무원일 뿐이다. 그리고 사실이 조금이라도 들통날 경우, 있던 사실을 없던 것으로 조작해 버리고, 언론사 기자 개인을 향해 명예훼손 소송을 넣을 때 그것을 행정처리해 주는 법원이 있다. 그리고 조작된 현실에 반응하여 촛불을 드는 마음으로 정의 구현을 위해 악플을 다는 시민들이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죄를 없애기 위해 투쟁하는 이은채의 아버지는 외롭고 고독하게 1인 시위를 이어갔으며, 팩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이은채의 아버지를 막기 위해 이은채가 악플 테러를 받게 하는 공작이 진행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은채를 향한 혐오의 동력이다. 이은채는 정의를 구현한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 때로는 안하무인이 되기도 하는 영화에 등장하는 20대 활동가의 전형 같은 인물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하여 악플을 달아 이은채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사회에서 낙오되었다는 좌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좌절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내부자들에서 등장하던 야당 의원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에만 급급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던 대중적 무의식이 변화했다는 데에서 오는 것이다. 그들은 무책임한 인물에서 위선적인 인물로 변화하였다. 그를 잘 보여주는 것은 허구이지만 그럴 싸한, 즉 사회의 진실을 담고 있는 영화사 대표와 팀 알렙의 관계이다. 영화사 대표는 자신이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아무도 내 영화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팀 알렙의 리더 찡뻤킹을 만나는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다. 여론조작을 통하여 자신의 영화를 흥행시켜 주면 4000만 원을 주겠다고 제안까지 한다. 찡뻤킹은 그 제안을 철석같이 믿는다. 그 사람은 어딘가 바보 같고, 왠지 불쌍해서 남을 등쳐먹진 못할 인간 같다고. 그래서 팀 알렙은 여론 조작을 통하여 대형 제작사가 만든 영화 하나를 영화 산업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만든 영화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지만, 진실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대형제작사의 영화 성적을 저조하게 만들어버리자, 어딘가 불쌍했던 영화사 대표가 만든 영화는 주목받기 시작했다. 휴먼스토리를 담은 따뜻한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라는 인터뷰까지 한다. 그래서 팀 알렙은 기세등등하게 영화사 대표를 찾아간다. 그러자 영화사 대표는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을 녹음한 후, 나가지 않으면 너희들을 모두 감옥에 가게 하겠다고 기세등등하게 윽박지른다.


이를 내부자들과 억지로 연결시켜 보자면, 겁 많은 우리 편인줄 알았던 야당 의원은 우리 편이 아니라 그냥 위선적인 윗놈일뿐이었다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누군가는 따뜻한 휴먼스토리가 누군가를 향한 댓글공작을 통하여 주목을 받았다는 설정을 통해 드루킹 사건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20대 남성이 예상치 못했던 갑질과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사건으로 인해서 따뜻한 휴먼스토리에 신물 나고 등 돌리게 했다는 설정은 20대 청년들의 불만을 유시민 씨의 주도로 부당한 것으로 만들어버려 그들에게 등 돌리게 만든 조국 사태를 떠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을 억지로 만들어 본 것은 내부자들에 대입하여 현 체제에 대한 팀 알렙, 즉 20대들의 불신과 분노는 어디에서 왔는가를 생각해보고자 한 것이다. 즉, 영화 속에서는 50대에 선의를 이야기하는 중장년들을 향한 20대 남성들이 분노와 불신을 느끼게 된 계기이지만, 내부자들과의 연결점을 찾자면 이 체제에서 누구도 우리 편이 아님을, 기성세대 그 누구도 정당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체제는 모든 집단이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기에 무엇이 그들에게 왜 중요한지 알 수 없다. 각 인구 집단은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이용한다. 20대 여성 커뮤니티, 30대 남성 커뮤니티는 서로 소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거슬리면 자극적인 어휘를 통하여 아니꼽게 만들기만 하면 찍어 누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은채의 사례처럼 20대 여성 커뮤니티의 언어로 살살 꼬드기며 어깨를 올라가 활발하게 활동하게만 하면, 20대 남성 커뮤니티를 통하여 역겨운 대상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이은채는 자살한다.


이은채의 죽음에 대하여 만전의 여론전담 팀장은 너무 좋아하고, 이은채를 죽도록 만든 팀 알렙의 그 누구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찡뻤킹은 팹택을 향해 "내가 그만하라 그랬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찡뻤킹이 팹택의 계획을 실행하기를 주저했던 이유는 이은채가 다칠까 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은채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인스타그램 활동을 그만둘까 봐 그랬던 것이었지 누군가를 도를 넘게 아프게 할까 봐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다.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했던 팹택은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냐"라고 말하면서도, 만전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내심 기뻐한다.


셋의 팀에서 이루어진 둘의 싸움에 찻탓캇, 즉, 이영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빠져있는 것을 보면, 이 둘의 싸움은 내부제보자와 이영준의 싸움의 구도를 찡뻤킹과 팹택의 싸움의 구도로 바꿔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영준이 셋이 만나게 되었다고 말한 만화가 카페와 제보자가 이영준을 만났다고 말한 만화가 카페가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보자가 이영준과 틀어지게 된 이유를 말하는 순간, 찡뻤킹이 팹택에 대해 했을 법한 말들을 하려고 한다. 즉, 제보자 또한 만전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며, 이 체제에서는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책임을 떠넘길 대상이 누구인지 집요하게 찾으며, 조금이라도 책임의 대상이다 싶으면 기레기, 쓰레기 등의 이름을 붙여 공격한다. 그리고 재벌은 이러한 흐름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그렇게 불의한 사회에 대한 상상력은 변화하였다. 재벌과 내부자들의 사회에서 재벌과 분노한 책임회피자들의 사회로. 우리는 과연 언제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말할 때 떳떳해질 수 있을 것인가? 부디 내가 살아있을 때에는 그러한 일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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