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알게 된지도 벌써 11년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찌 그리도 긴 시간을 지내온 것일까 싶다. 왜냐면 나는 싫증 내는 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게 힘든 성격이다. 그런데도 참 사람에 대한 싫증은 그리 느끼지 않으니 다행인 듯싶다. 아마 지금의 남편에게도 싫증을 느꼈다면 남자 친구를 여럿 바꿨거나 꽃다운 청춘이 다 갈 동안 혼자였을거다. 단언컨대 내 인생에 더 좋은 사람은 없었을 거라 확신한다. 왜냐면 사주팔자를 봐도 남자가 없는 사주랬기 때문에... 하하...
어찌 됐건 간에 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정말 행복하다. 자기를 토끼라 칭하는 귀여운 자식도 있고, 든든한 내 편도 있고, 그리고 매일이 불안의 연속이었던 내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항상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 당시에는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인한 불안감이라 여겼는데, 지금 생각엔 나의 기질적인 영향도 꽤 컸던 듯하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불안이 수반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지금은 불안의 감정 때문에 일에서 실수가 적은 편이다. 하지만 이 불안감이 쉬어가는 타임 없이 지속되면 사람을 미치게 한다. 초조하고 스트레스받고 짜증 나고. 이 3박자에 맞춰 열심히 감정에 충실하다 보면 싸우고 상처 받고, 또 화해해야 한단 생각에 답답하고. 부정적 순환이 반복된다. 그래서 이런 불안의 감정에 계속 사로잡혀 있지 않도록 시시때때로 끄집어 내주는 남편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남편은 참으로 성격이 둥글둥글하다. 어쩜 저렇게 둥글한 성격으로 이 모진 세상을 살고 있는지 신기할 때도 있다. 11년을 남편의 둥글한 성격 덕분에 박 터지게 싸워본 적도 없다. 그 흔한 밀당도 없었다.
한 번은 교제한 지 한 달도 안 된 어느 겨울날. 이 사람이 연락이 안되는 거다. 연애하는 티를 팍팍 내고 싶었던 나는 퐁당퐁당 주고받던 문자가 남편의 차례에서 멈춘 지 5분, 10분, 30분이 흘러갈 즈음 인내심이 차츰차츰 바닥나며 화가 솟구쳐 머리 끝까지 올랐다 내렸다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1시간은 아니잖아. 나에 대한 애정이 없는 거야.'
'1시간이 넘었는데도 너무한 거 아니야. 이쯤이면 헤어지자는 거지? 그래~ 시원하게 성질 내고 확 걷어차버리겠다.. 어차피 스타일도 달라서 오래 만나야 3개월이었는데 조금 빨리 헤어지지 뭐.'
오만가지 생각에 마음이 타 들어갈 때 즈음 '띵동' 문자가 왔다.
"가족들이랑 목욕탕 갔다 와서 이제 봤어^^"
'이 인간을 죽일까 살릴까..'
목욕 갔다 왔다는데 화도 못 내겠고 마음은 부글부글 대고..
하지만 나는 너른 마음으로 용서라는 걸 해보았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때 알았다. 혼자 생각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북 치고 장구치고 하지 말고 한 번만 참으면 연인 간의 싸울 일이 크게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적어도 우리 커플에게는.
그 이후부터는 목욕탕 사건의 허무함을 떠올리며 맘이 상해도 한 번 참고 그 시간을 흘려보낸다. 그래도 정 풀리지 않으면 지나서 서운했단 이야기를 한다. 화가 났을 당시에 했더라면 큰 싸움이 되었을 텐데 한 템포 쉬어가면 그냥 웃고 지나갈 수 있다.
뾰족뾰족 모난 돌은 구르다 보면 남을 찌르기도 하고 모난 부분이 떨어져 나가며 내 살을 아프게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남편이 있다는 건 나라는 모난 돌이 여기저기 구를 때 나도, 타인도 아프지 않도록 모난 부분을 둥글둥글 반들반들 갈아주어 조금은 덜 아프게, 조금은 순조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놔주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그 의미로 지금도 옆에서 쿨쿨 자고 있는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