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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 Ko Jun 07. 2021

쉽지 않은 시골살이

제주에서 일 년 살기


제주에서 일 년 살기를 시작 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던 날, 집에서 지네가 나왔다.

장마 때나 보려나 했는데, 이렇게 일찍 만나게 될 줄이야. 살면서 내가 본 지네 중에 제법 큰 친구였다.

어디서 온 건지 소리 소문 없이 등장한 지네.

빨간 다리가 더 나를 무섭게 했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 누구를 부를 수도 없었다.

벌레만 나오면 자던 아빠를 깨워 잡았었는데, 제주살이에서는 벌레는커녕 지네 조차 내가 잡아야 했다.

뭔가 마음의 진정이 필요했던 나는 일단 오지도 못할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빠, 어떡해... 하하하하하(웃는 것도 아닌 우는 것도 아닌 소리)”

-“왜 무슨 일이야?”

“지네가 나왔어... 어떡해 너무 커. 나 지금 의자 위에 올라가서 꼼짝도 못 하고 있어. 아직 멈춰있긴 한데 이거 어떻게 잡지. 흐어엉. 나 잠 못 잘 것 같아...”


-“하이고 일단 정신을 차리고, 이젠 너 혼자 감당해 내야 돼. 아빠가 잡아줄 수 없잖아. 일단 신발을 신어서 밟아. 아니면 내리치는 게 좋을 것 같아. 한 번에 못 잡으면 큰일 난다. 엄청 빨라서 도망가니깐.”


“응 일단 알겠어. 내가 어떻게든 잡아볼게.”


거의 울뻔한 나는 부모님의 조언으로 마음을 다 잡아야 했다. 이게 뭐라고 지네 앞에 선 내 모습은 마치 코끼리를 만난 것처럼 잔뜩 겁이 났다. 침착하게 일단 신발을 신고 목장갑을 꼈다. 그리고는 의자를 천천히 밀어 지네 쪽으로 다가간 다음, 부엌 쪽에 걸려있던 집게를 꺼내 들었다.

‘흐엉, 어떡해. 나 잘할 수 있을까? 한 번에 잡아야 하는데... 경은아, 침착해. 할 수 있어.’


서서히 다가가 집게로 한 번에 착! 잡았다.

혹여나 놓칠까 꽉 잡으니 살려고 발버둥 치는 지네 모습이 꽤나 불쌍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나도 살아야 하는데. 잽싸게 변기에 버려 물을 두 번이나 내렸다. 혹시나 다시 올라올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처음으로 지네를 잡은 내가 기특했다. 부모님께 다시 전화해서 안심까지 시켰다. 날파리 하나도 못 잡는 내가 지네라니.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뭐든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는 말이 맞나 보다.


그 후로 나는 습관이 하나 생겼다.

밤에 주로 나타나는 지네인데도 나는 낮에도

어김없이 발을 쳐다보게 됐다. 혹여나 지네 발자국 소리가 들릴까 이래저래 쳐다보게 됐고, 자기 전에는 꼭 이부자리를 들쳐서 지네가 없는지 확인을 한다.

거기다 방문까지 꼭 닫고 말이다.


지네 비슷한 것만 봐도 깜짝 놀라니, 적응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이제 겨우 초반인데 장마 때는 어쩌려나 걱정이 앞선다.

고양이를 키워야 하나, 약을 사서 쳐야 하나, 이래저래 생각이 많다. 어쩌다 이리도 겁쟁이가 됐는지.


기도했다.

‘부디 지네가 집으로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놀라게 나타나지는 않게 해 주세요. 잘 때 와서 저를 물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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