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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 Ko Jan 07. 2021

내가 만난 이상향, 치앙마이

내 친구, 캑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책방에서 시작하고 마무리하며 책방에 오는 손님들을 매일 만나는 행운,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다. 셰익스피어 책방에서 숙식하며 일하는 스탭이 된 것처럼 훗날 책방 주인이 된 나의 모습 또한 종종 그려봤다. 뭔가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미래였다.

한 달 간의 치앙마이 전시로 서점 3층 게스트 하우스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서점에서 보냈다. 어쩌다 자연스럽게 서점 직원과 절친한 친구가 되었고 그의 이름은 캑이다. 전시장에 손님이 없을 때의 틈을 타 계산대에 있던 캑과 매일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 얘기부터 서로 좋아하는 취향의 책 그리고 그동안의 인생 이야기까지.

캑은 인디음악을 좋아해 수집하는 게 취미였다. 그래서 늘 그의 플레이리스트가 책방의 배경음악이 되었는데 나도 그 친구 덕분에 태국인들이 얼마나 인디음악을 좋아하는지 알게 될 정도였다. 가끔은 내가 모르는 한국의 옛날 노래들이나 인디뮤직도 알고 있어서 놀라기도 했다.

캑과 같은 태국 친구들을 따라 인디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었는데 우리나라의 인디 음악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 신선했다. 태국어라 가사는 알 수 없었지만 친구들에게 내용을 물어보면 시처럼 서정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내용이었다. 그런 가사와 멜로디를 부르는 인디 그룹이 무대에 많이 나왔다. 마치 우리나라 70, 80년대를 가수들과 같은 모습으로 긴 머리와 펑퍼짐한 나팔바지를 입고 말이다. 그런 그들을 환영하는 함성소리에 젊은 친구들이 많다는 게 내겐 너무 신기한 일이었다. 나도 모르게 어느덧 치앙마이 사람들과 동화되어 내게도 좋아하는 인디그룹이 생길 만큼 낭만적인 노래와 공연이었다.




캑은 그저 책이 좋아 책방에서 일하게 됐다고 했다. 10년 이상을 일한 그는 책방 주인과 거의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전시장에 손님이 없거나 밥 먹을 때가 되면 심심해서 캑이 있는 1층 카운터에 내려가서 일하는 걸 구경하고 했었는데 손님들이 찾는 책마다 서가의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는 게 너무 신기했다. 심지어 책방 주인인 내 친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서스펜스, 미스터리, 범죄소설을 읽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거의 매일 불면증으로 인해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 없는 깊은 다크서클이 그가 좋아하는 책들의 새드엔딩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책방 휴무 없이 일주일에 딱 한번 쉰다는 캑은 무언가 하고픈 욕구조차 희미해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런 그가 왠지 안타까워 “왜 그런 장르의 소설만 읽는 거야?”라고 물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게 느껴진다고 했다. 책을 좋아해서 책방에서 일하게 됐지만 여행조차 갈 수 없어서 힘들다고. 근데 만약 또 여행을 갈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그냥 집에서 쉬면서 밀린 빨래를 하는 게 더 좋다는 그의 말에 그저 껄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그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 하루들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가끔 시계를 보다 책방 마감 시간 때가 되면, 그가 계산기를 두드리며 틀린 정산을 여러 번 확인하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웃곤 한다.


“보고 싶다, 내 친구 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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