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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녀시대 Jul 03. 2020

비건은 이제 나의 '뉴 노말'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  아무튼 그냥 읽어 


나는 남들에게 신세를 지거나 피해를 끼치는 걸 극도로 꺼리는 부담 결벽증이 있고 어떤 식으로든 튀는 행동을 삼가는 편이다. 이건 가정 교육을 통해 길러진 습성인지 전형적인 한국 조직 문화에 길들여져 근 10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며 습득된 기형적 처세술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 두 경우의 합작품 같다. 덕분에 어디 가서 크게 욕먹는 일은 별로 없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까지 작동하는 편이라 이게 그렇게 바람직한 삶의 자세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회사 생활을 플래시백했을 때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몇몇 장면들과 생생한 느낌이 있는데 이를테면 직장 상사가 호재가 생겨 큰 맘먹고 음료수나 간식을 쏜다고 했을 때다. 이럴 때 메뉴를 취합해야 하는 부하 직원 입장에선 그냥 가타부타 군말없이 시원하게(?) 메뉴 통일을 해주는 게 속편하다. 


회식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헷갈릴 일 없게 그냥 주는 대로 먹는 센스(?) 없이 꼭 구체적으로 옵션을 붙여 메뉴를 주문하는 사람이 있다. 말단에 있을 때는 이런 잡일 하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업무 수행을 방해한다는 생각에 밉상이고, 중간 관리자 위치에 있을 때는 또 쓸데없이 유난 떤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아니꼬았다. (물론 내색은 절대 하지 않는다)


대략 같은 맥락에서 나는 비건이 대체로 마뜩찮았다. (그렇다 과거형이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비건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메뉴 선정이 까다로워진다. 난 대체로 육식을 즐기고 다이어트 때문에라도 몇 년째 육류/유제품 중심의 키토 지향 식단을 고수하고 있어 채식은 어딘가 모르게 김이 빠진다. 


함께 모여 식사를 즐기는 '특별한' 자리에서 고기가 빠진다는 것은 왠지 큰 미식의 즐거움을 강탈당한 기분이라 비건 한 두명 때문에 고기 비율이 줄어드는 건 무조건 노땡큐다. 며칠 전만해도 호스트 부부와 룸메와 함께 보스턴 커먼으로 피크닉을 갔는데 비건인 룸메 때문에 고기류를 가져가지 못하는 게 내심 못마땅했다.


비건이라는 화두가 내 생활 속에 부상한 건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학교 때부터 비건 선언을 한 친구들이 주변에 심심찮게 있었고 비건 관련 영화며 책이며 관련 리소스는 편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내 의식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개인의 선택이므로 존중은 하되 속마음 한켠으론 그저 까탈스러운 삶의 한 방식쯤으로 호도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의식 혁명이 오늘 바로 지금! 돌연 찾아왔다. 방금 김한민의 <아무튼, 비건>을 한자리에서 다 읽고 비건에 대해 진지하게 재고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2018년에 처음 출간됐을 때부터 알았지만 읽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카프카의 도끼 비유는 너무 과다 소비돼서 감흥조차 없지만 정말 도끼로 명치를 가격당한 듯이 갑자기 세상이 무릇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한갓지게 책이나 읽을 때가 아닌데 딴짓 고수답게 할거 안하고 의식의 흐름에 휩쓸려 리디셀렉트에 잠시 정박. 무료 체험 1개월을 끊고 타이틀을 살펴보다 순수 호기심에 펼친 책이 이렇게 큰 울림을 주다니! 덕분에 오늘 할일은 다 접고 오늘은 비건에 집중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로 했다. 


원래부터 김한민 작가를 좋아했고, 할 일이 산적한 지금 정신을 딴 데 팔 수 있는 유흥거리가 필요했고, 의무적으로 읽는 영어 텍스트에 질려 한글 책이 보고 문득 읽고 싶었고, 이 모든 삼박자가 고루 맞아 내 의식을 사정없이 헤쳐놓았다. 


"당신도 연결되었나요?" 아니 지금처럼 이 카피가 적확하게 와닿던 때가 또 있었던가.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로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건 이제 지나가던 개도 아는 사실 또는 진실. 비건은 개인의 선택과 신념을 초월해서 나와 연결된 지구상 생명체 모두를 지속가능하게 상생할 의식적인 결단이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부터 비건으로 전향할 생각도, 그렇게 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작가가 의도한 대로 서서히 비건으로 삶의 방향을 바꿀 작정이며, 고기를 좋아하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없어서 못먹는다" "기승전 고기성애자다"라는 등의 무신경한 농을 치는 답변은 하지 않을 것만큼은 명확하다. 무엇보다 더 이상 비건의 존재를 졸렬하고 삐딱한 시선으로 재단하거나 폄하하지 않는, 조금은 열린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이 나에게 선사한 가장 큰 깨우침이다. 


완벽한 비건을 실천하는 소수보다 불완전한 비건의 비율을 높이는 게 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팬데믹은 나의 사소하디 사소한 행동이 촘촘히 연결된 이 거대한 인류 생태계를 삼켜버릴 파괴력을 지녔음을 상기한다. 역으로 찰나일지언정 수돗물을 아끼고 전기를 아끼고 매일의 식단에서 고기를 배제하는 등 일상을 채우는 모든 작은 습관이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기에 비건의 함의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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