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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녀시대 Jul 13. 2020

Do You Work Here?

내가 누군지 알아?

ILLUSTRATION BY ENKHBAYAR MUNKH-ERDENE

https://www.yesmagazine.org/social-justice/2020/01/15/asian-americans-people-of-color/


내 최고 장점은 빠른 복원력이다. 감정 기복도 꽤 잦고 다혈질인 데 비해 대체로 양호한 평정 유지가 가능한 것은 금세 까먹고 정상 궤도를 회복하기 때문. 예민하지만 과민하지는 않다. 심리가 복잡한 듯 또 단순하다. 자기애라면 또 차고 넘친다. 해서 기분 나쁜 말을 들어도 웬만해선 담아 두지 않고 지랄로 치부해서 받아넘기는 편이지만 경우에 따라 뒤끝이 없진 않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 이따금씩 남다른 탄력성으로도 망각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상한 마음이 오래도록 남으면 한참을 곱씹는 경향이 있는데 딱 얼마 전에 겪은 일이 그랬다. 


지난 6월 8일 주지사 베이커가 수립한 2단계 리오픈 플랜에 접어들면서 리테일 쇼핑이 가능해졌고 묵혔던 소비 심리 폭발, 노드스트롬 랙(이하 랙)에서 폭풍 쇼핑을 하던 중이었다. 리오픈 기념으로 한정 기간 추가 세일 40프로를 한다니 그냥 지나칠 재간이 없었다. 마침 반바지와 운동복이 필요하고 해서 매장을 종횡무진하며 그간 참아두었던 소비력을 불사르고 있는데 어떤 중년의 백인 여자가 나를 향해 말을 거는 걸 어렴풋이 이어폰 사이로 캐치, 팟캐스트 듣던 걸 잠시 멈추고 뭔 말을 했나 싶어 익스큐즈미를 했다.


그랬더니 대뜸 한다는 말이 "Do you work here?" ...... 이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혀 한껏 달떴던 기분이 대번에 온데간데없이 아연해져 기분이 몹시 상했다. 나도 모르게 날선 하이톤으로 "당신 지금 미쳤냐"의 뉘앙스가 담긴 NO를 날리자 머쓱해진 여자가 어색해진 기운을 무마하려 어쩌고 저쩌고 했지만 그 뒤로는 아무것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지금 나보고 여기서 일하냐고? 내가 누군지 알아?


이날 운동복 차림이었지만 후줄근한 복장은 (전혀) 아니었고 난 분명 쇼핑 중이었기 때문에 두 손 가득 옷가지를 들고 있었으며 뉴버리 랙의 경우 직원 중 열의 아홉은 흑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체 무슨 근거로 나를 직원으로 오인한 것인지, 내가 어딜 봐서 매장 직원으로 보였다는 것인지 대관절 이해할 수 없어 하루 종일 능멸과 모욕이 뒤엉킨, 형용할 수 없이 더러워진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사실 이렇게 오해를 받는 일쯤이야 왕왕 있었더랬다. 고등학교 시절 하복을 입고 이마트를 구경하는데 어떤 아줌마가 직원이냐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에도 얼척없긴 마찬가지였지만 웃긴 에피소드 중 하나쯤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 이후에도 이따금씩 직원이냐는 소리를 듣는 일이 있었지만 분명 지금과는 다른 맥락이었고 지금 느끼는 분노와는 결이 달랐다. 


당일은 물론 그 이후 며칠간 더 그 모멸적인 말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서 그래서 과연 내가 느끼는 이 능욕의 기분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왜 나는 지극히 별 거 아닐 수 있는 누군가의 사소한 한마디 말실수에 왜 이렇게 분노하고 필요 이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감정의 기저를 오래도록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얼마 간 숙고의 시간 끝에 수면 아래에서 나는 이런 데서 일을 하는 블루칼라가 아니라 사무직을 하는 화이트칼라라는 자의식, 여기에서는 마이너리티에 불과할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이런 취급을 받지 않을 정도의 사회적 지위는 갖췄다는 계급적 정체성, 그리고 시국이 시국인 만큼 타국에 정착하고 싶은 나의 바람이 요원할 수 있다는 불안한 현실감 등등 무의식 아래 숨겨졌던 위선적 욕망과 마주했다.


화이트칼라 집안에서 구별 짓기가 무릇 당연하다고 인식하며 성장했고 고등 교육을 받았지만 낼모레 마흔이 다되도록 모아둔 돈 한 푼 없이 학생 신분인 현실, 그래서 구별 짓기를 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되는 열패감. 돈은 못 벌어도 지식정보를 다루는 지적 노동자라는 어쭙잖은 자의식. 꼭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고 굳이 무리해서 그래야 할 필요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제도권에 자연스럽게 편입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처지를 알게 모르게 연민하는 자기모순. 이역만리 타국에서 부족한 언어 실력 탓에 의사 표현이 서툴어 번번이 바보 취급을 당하고 하대를 받으면서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쌓아둔 울분. 이 모든 게 곪고 곪다 "Do you work here?" 이 한마디에 폭발했음을 깨달았다. 


대체 내가 누군 줄 알고 나를 여기서 일하는 사람쯤으로 취급하는 거냐고 분노를 삭였지만 사실 나는 그저 이 땅에서 돈도 없고 가오도 없고 시민권도 없는 일개 동양계 이방인. 쇼핑몰 직원 이상의 스펙은 갖췄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실은 이 땅에서 그마저도 일할 자격을 갖지 못한 외국인. 한국이었다면 변변한 직업도 없이 경력이 단절된 백수. 당장 미래는 물론 노후도 아무 대책이 없어 깜깜하기 그지없는 경제취약층. 


남보다 잘난 건 없어도 못난 건 없다는 자기애로 산다고 자부했지만 실은 특정 계층보다 내가 더 잘났고 우월하다는 근거 없는 자의식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 자의식이 일상에서 계속 균열되면서 인지 부조화에 따른 피해의식이 발달해왔는데, 이 땅에서는 내가 이제껏 고려하지 않았던 인종마저 나를 평가절하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팬데믹 이후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 사례가 급증하고 있었고 이때만 해도 한창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한창 Black Lives Matter 운동이 계속해서 점화되던 때였다. 미국의 인종차별 이슈는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사회 깊숙이 침투한 고질적인 병폐다. 내가 겪는 정체성 혼란은 아시안 아메리칸이 겪는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미국 사회라는 배경적 맥락보다는 내 개인적 역사에 기인할 것이다. 어쨌거나 내 평생 피부에 닿지 않았던 인종 편견과 스테레오타입에 부딪히며 나는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마침 뉴욕타임스에서 미국의 인종차별은 사회 DNA에 프로그래밍된 카스트 제도와 다르지 않다는 논조의 기사가 올라왔다. 아이로니컬한 건 나 역시 각종 미디어를 통해 인종차별적 스테레오타입을 무의식적으로 디폴트로 내재화하며 미국인들과 다를 바 없는 인종차별적 시선을 답습하고 있었다. 몇 달 전 타깃에 갔다가 나도 라틴계로 보이는 여자를 타깃 직원으로 생각하고 다가가서 사이즈 문의를 했더랬다. 돌아보니 그 여자 반응도 내가 랙에서 백인 여자에게 보였던 불쾌감과 다르지 않았다. 

In everyday terms, it is not racism that prompts a white shopper in a clothing store to go up to a random Black or brown person who is also shopping and to ask for a sweater in a different size, or for a white guest at a party to ask a Black or brown person who is also a guest to fetch a drink, as happened to Barack Obama as a state senator, or even perhaps a judge to sentence a subordinate-caste person for an offense for which a dominant-caste person might not even be charged. It is caste or rather the policing of and adherence to the caste system. It’s the autonomic, unconscious, reflexive response to expectations from a thousand imaging inputs and neurological societal downloads that affix people to certain roles based upon what they look like and what they historically have been assigned to or the characteristics and stereotypes by which they have been categorized. No ethnic or racial category is immune to the messaging we all receive about the hierarchy, and thus no one escapes its consequences.


그리고 며칠 전 이민세관단속국 (ICE)이 돌연 ‘학생 및 교환방문자 프로그램(SEVP)’ 규정을 이번 가을학기에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학교에 다니는 외국 유학생의 미국 체류를 불허하도록 개정한다고 공표했다. 사실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보면 크게 놀랍지도 않은 일관된 자국민 보호 정책이지만 이민자 유입으로 국가의 기틀을 다지고 다문화, 다원주의를 표방해온 '선진국'이 이런 모순적 행보를 취한다는 게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번 여름학기 수업 하나를 마지막으로 졸업을 앞두고 있어 실상 최악은 면했다지만 앞으로 OPT며 취업이며 내가 고매하던 장밋빛 빅픽쳐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이쯤 되보니 넘의 나라에서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굳이 있어야 할 이유도 있고 싶지도 않다. 이제는 무리하게 존버도 아니고 최선을 다해보고 아님 짐 싸자라는 주의로 돌아선 지 오래. 나도 엄연히 내 나라가 있고 보호받을 권리가 한 국가의 국민이다. 자국민 보호라는 게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역사 속에서 이제껏 추구해온 신념과 가치를 몽땅 탈각시킨 우매한 악수인지 깨닫지 못하는 이 나라를 향해 나는 또 이렇게 같은 말을 뇌까리고 있다. 내가 누군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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