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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Jan 10. 2019

나는 오늘도 그럭저럭 잘 버텨내고 있습니다.

나는 쿨하지 않다.


가끔 지질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나라는 사람은 타인의 작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왜곡해서 생각하지는 않는 편인 것 같다. 아마도 내 앞날에 대한 생각이 많다 보니 늘 스스로 두발로 걸어가는 것  조차 힘겨워하는 게 나라는 사람 인 듯하다. 이런 나는 다른 사람과의 마찰이 일면 늘 안절부절이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충돌이 생겼다. 


정신없이 바쁘게 일상은 돌아가고 있다. 업무적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처럼 늘어가고 있었다. 근무 시간 동안은 컴퓨터 안과 나만의 세계만 존재한다. 즉, 컴퓨터 안에서 내게 말을 거는 사람과의 관계만 있다. 다른 것들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사실 업무 이외에도 처리해야 할 일들이 참 많았다.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일들이다. 회사에서는 이런  것들을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당연히 지원해 줘야 하는 업무의 연장으로 배려해 줬다. 일본으로 집주소를 이전하는 일이며, 은행 계좌를 트는 일등을 인사팀에서 담당해 주었다. 충돌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인사팀 담당자가 몇 번 내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내가 제때제때 응답을 해 주지 못한 게 모든 문제의 근원지가 되었다.


한 번은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고 통장과 카드를 집으로 배달을 해주었는데 내가 집에 부재중일 때 택배 아저씨가 왔다 갔다. 일본은 그럴 경우 다시 시간을 지정할 수가 있었다. 웹사이트에 들어가 언제쯤 방문하면 좋겠는지 정한다. 온통 일본어로 된 웹사이트라 인사팀 담당자에게 부탁하여 방문 일정을 잡아 놓았다. 저녁 7시쯤 방문시간을 지정했다. 그런데 내가 그날 그 시간에 아주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중에야 생각났는데 물론 다시 일정을 잡으면 되는 일이라 사실 정말로 큰 일도 아니었고, 또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굉장히 뿔이 난 인사팀 담당자가 왜 미리 연락을 자기에게 안 해주냐며 핀잔을 해댔다. 오늘 못 받으면 못 받는다고 자기에게 미리 알려줬어야 한다고 했다. 우체국에서 집에 사람이 없다며 자기에게 전화가 왔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화가 났단다. 지난번에도 자기 이메일에 답을 안 해서 서운했다고 했다. 너무나 강경한 태도로 다그치는 바람에 미안하고,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항상 도움 줘서 고맙다고, 내 행동을 오해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순간 무언가 서러움이 폭발했다. 택배 하나를 받지 못해서 누군가에게 이런 소소한 것까지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별거 아닌 일로 이렇게 핀잔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모든 게 서러움으로 변조되었다.


일본 사람들은 매뉴얼을 지키고, 작은 약속을 깨거나 규율을 어기는 일을 굉장히 싫어한다고 한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나와 융통성 있게 행동하는 게 좋다는 한국 사람들과는 조금 달랐다. 생각보다 작은 것에 민감하다는 걸 느꼈다. 회사에 누군가가 매일 10분씩 지각하는 걸 지켜보고는 누구 씨는 매일 10분씩 지각한다며 인사팀에 메일을 쓴다는 말을 듣고 적잖게 놀랐었다.


하루 종일 괜스레 우울해졌다. 그런 날은 또 바쁘기까지 했다. 바쁘다 보면 사사롭고 서러운 감정이 사라질 줄 알았지만 오히려 더 커졌다. 서러운데 바쁘니 그 감정은 배가 되었다. 괜스레 가족도 그리워졌다. 모든 관계가 불편해졌고, 사람들을 대하기가 더 껄끄러워졌다. 지난 어떤 때는 너무 다들 친절하다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댔던 나였다.


'사람이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참 복잡 미묘한 거구나' 생각하니 더 씁쓸해졌다.


모두 다르다. 저마다의 기준이 존재한다. 내게도 나만의 기준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게는 그저 그런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큰 일이며, 상처가 될 수 있다. 내게도 그런 나만의 룰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잘잘못 떠나, 내가 너무 모든 걸 좋게 쉽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살아가는 게 대체 잘 살아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나는 늘 잘 잊어버리곤 한다. 한 가지에 집중하다 보면 다른 것들을 자주 놓치는 게 나이다. 또 늘 선의로 받아들이자 하며 살아가는 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나를  굉장히 긍정적이어서 좋다는 누군가도 있었고, 때론 누군가의 작고 예민한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해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곤 했다.


겨우 하루를 버티며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찰나에 한국인 동료가 내게 함께 밥이나 먹으며 가볍게 술이나 한잔 하자고 권했다. 오늘 같은 날은 그게 좋겠다 생각이 스쳤다. 서로서로 다 이방 생활이니 한국 직원들끼리는 동지애 같은 게 존재했다. 퇴근 후 꼬치를 잔뜩 시켜 놓고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 있던 일들에 대해서도 풀어놨다. 누군 이렇고 누군 저렇고 하며 한참을 떠들 댔다. 한바탕 소란스럽게 농담 주고받았다. 업무를 끝내고 동료들과 회포를 풀 수 있다는 이 자체가 뜬금없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왁자지껄 이런 자리를 가질 수 있는 있음이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새로운 전쟁터에 같이 도착한 동지였다. 동지애를 한 움큼 받았다. 함께 그 사람이 그건 잘못한 거라고, 비록 그저 나를 달래기 위한 뻔한 말인 거 알면서도, 내편에 서서 괜찮다 해주는 그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하루 종일 서럽고 우울한 마음은 어느샌가 사라졌다. 모든 게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니구나. 이렇게 평범한 하루가 또 끝나가는구나, 하며 말이다. 나도 이렇게 조끔씩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웃고 떠들다 보니 우울함은 점점 옅어졌다.

내일은 또 어떤 작은 충돌과 감사함이 나를 기다릴까.


2018년 12월 어느 날, 나는 오늘도 잘 버텨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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