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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Nov 11. 2018

도쿄 적응기

너에 흠을 보았다.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2018년 10월 가을. 도쿄날씨 오늘도 맑음. 사실 너무 좋음. 미세먼지 없음. 초가을 날씨로 걷기 좋은 날.. ! 


일본에 와서 내가 제일 걱정했던 건 바로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한동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에 익숙해졌고, 치열한 삶과는 아주 동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제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우선적으로 들었다. '첫날부터 지각하면 어쩌지, 시간 약속 안 지키는 이미지는 안 좋을 텐데' 하며 '일찍 자자, 일찍 자자'하는 부담감은 오히려 밤잠을 더 설치게 했다. 오전 6시부터 7시까지 10분 단위로 핸드폰 알람을 맞춰 놓은 덕에 다행히 아침에 눈이 뜨여졌다. 그렇게 회사로 출근하는 직장인의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 못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감도 일주일 만에 사라지고 주중에는 아무리 졸려도 아침 7시만 되면 자동으로 눈이 떠졌다.

지하철로 걸어가는 길목에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면 신기할 때도 있다. 내가 일본에서 일본 직장인들에 뒤섞여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다니.. 한 번도 생각 못해본 그림이기 때문이다.


또 어떤 날은 팟캐스트 들으며 걷다 보면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서울인지 도쿄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양복 입고 발걸음 재촉하는 사람들.

어딘가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도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 끝까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들.

꾸벅꾸벅 조는 사람들.

 특정 역에서 우르르 내리고 다시 우르르 타는 사람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말소리를 듣지 않은 채 그런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자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러다가도 '아 내가 도쿄 구나' 하는 걸 일깨워 주는 찰나가 존재한다.


여기서 이렇게 살게 될지는 꿈에도 모르고 도쿄로 두 번 정도 여행을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뭐 여행객이기 때문에 시부야며, 신주쿠며, 하라주쿠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곳만 정신없이 돌아다녔었다. 그래서 여행자였을 때는 전혀 눈치를 못 챘다. 생활자로서 깨달은 사실은 일본 사람들은 정말 정말 질서를 잘 지킨다는 것이다. 나는 일본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다. 일본 정부가 우리 역사와 피해자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며 엄청나게 분노한다. 솔직히 털어놓으면 일본과의 스포츠 경기가 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겨야 한다고 결의를 다지고, 일본이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라가지 말았으면 하며 일본과 상대하는 나라들를 은근히 응원하는 지극히 한국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질서 정연한 이들에 모습을 보고 있자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어쩔 땐 너무 완벽한 매너에 짜증 나다가도 본받야겠다하며 스스로를 각성하기도 한다.

아침, 그 바쁜 출근시간에 우측통행과 좌측통행 법칙을 깨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나라와 왼쪽/오른쪽 보행이 틀려 가끔 혼자 거리의 무법자처럼 반대로 걷기도 한다. 뭐 그렇다고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도 없다.


출근 시간은 이곳 지하철 안도 지옥이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지' 하며 생각이 들다가 그 붐비는 지하철에서 누구 하나 빠짐없이 내리는 사람의 진로를 방해 하지 않기 위해 옆으로 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다 내리면 그제야 타기 시작한다. 지하철 안에서 가방을 뒤로 맨 사람도 볼 수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속으로 놀라는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회사에서도 엘리베이터를 탈 적이면 마치 엘리베이터 안에 엘리베이터 안 질서를 정리해주는 나만 안 보이는 투명 안내원이 존재하는 느낌이다. 먼저 탄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가 쪽으로 모두 먼저 서 있고 그곳이 다 차며 맨 뒤로 가 서 있는다. 먼저 엘리베이터 탄 사람들은 오픈 버튼을 꾹 눌러 있는다. 문만 조금 열어 줘도 고맙다고 고개 숙여 인사한다. 그 정도로 고마워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다. 회사 건물 안 사람들의 발걸음은 늘 조심조심이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일정한 거리를 항상 유지한다. 그 일정한 거리가 깨지면 서로 부딛히지 않아도 미안하다고 한다.


파괴자마냥 우/좌측통행 다 무시하고 가운데로 막 가로질러 뛰고 싶은 심정이 든다. 엘리베이터를 탈 적 가운데 문 앞에 떡 하니 서버리고 싶다. 지하철에서는 먼저 내리는 사람 신경 안 쓰고 얼른 먼저 타 비어 있는 자리에 염치없이 엉덩이 비집고 앉아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마치 하얀 도화지를 보면 마구 더럽혀 버리고 싶은 욕구와 같다. 너무나 예의 바르고 착해 화 한번 안내는 누군가를 보면서 저 사람이 소리 지르는 거 한번 보고 싶은 그런 못된 심리랄까.

나름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항상 질서는 매너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규칙과 차례를 지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불량 학생이 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나만 안 보이는 거리에 질서 안내원이 있는게 분명하다  


사실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내면에 잠재된 애국심이란 게 생겼는지 우리에게는 사실 아주 조금 부족한 그런 면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참 부러웠다. 질투심이 마구 치솓았나 보다.


사람이 어느 정도 흠이 있어야 조금 사람 냄새가 나고 뭔가 안심이 되는데 도쿄는 너무나 착한  모범생 느낌이다.. 특히 도쿄의 아침은 말이다.


주변 일본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도쿄 사람들이 좀 과할 정도로 그런 예의라던가 질서에 예민하다고 한다. 다른 지방만 가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사실 매일 긴장이 조금 된다. 혹시나 예의와 질서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게 우측통행/좌측통행,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를 들으며 또 하루를 끝내고 퇴근길에 올랐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만원 지하철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내가 탄 칸이 꽉 차 있었다. 한 뭉큼의 사람들이 내리며 또 그만큼의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무법의 아저씨가 등장했다. 발 디딜 틈 없는 그 속에서 있는 힘껏 사람들을 밀면서 탑승하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서울에서 그런 아저씨를 봤다면 속으로 엄청 욕했을 것이다. 아저씨가 뒤로 무지막지하게 미는 덕에 아마 서 있던 사람들 중 반은 뒤로 밀려났을 것이다.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등으로 밀어 대는 아저씨를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분명 나는 짜증이 나야 정상인데 미소가 지어졌다. 속으로 "예!!!" 하며 소리를 질렀다. 사람인 이상 삐뚤삐뚤해질 필요가 있다. 자 없이는 일직선을 완벽하게 긋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 사람은 정이 없다. 그래도 다행이다.


어쩐지 너무 완벽한 사람을 만나면 긴장하게 된다. 괜시리 쫄보가 된다. 함께 고급 식당 가서 밥이라도 먹을 기회가 생기면 온몸이 뻣뻣해진다. 고급 식당에는 뭐 그리 수저며 포크며 이리저리 많이도 주는지.. 은근슬쩍 곁눈질로 다른 사람들은 어떡해 먹나 쳐다보기도 한다. 그렇게 맘 졸이며 식사를 이어가다 그 완벽해 보이는 지인이 먹던 음식을 흘려 새하얀 옷에 음식이 묻어 있는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온다. 흠을 발견한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동질감을 느끼고 '아 저 사람도 허당끼가 있네' 하며 그때부터 나의 긴장감도 스르르 사라진다. 완벽한 누군가보다는 살짝 덜렁 거리는 누군가가 나는 더 끌린다. 왠지 모르게 정이 간다.


지하철 그 아저씨의 무례함이 나를 웃게 했다. 처음으로 무례함이 나를 웃게 한 날이었다.


너의 아주 작은 흠을
발견한 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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