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겠지
너에게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였다. 너의 엄마에게도 첫걸음을 뗄 때가 있었다거나 세 살 때가 있었다거나 열두 살 혹은 스무 살이 있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너는 처음부터 엄마를 엄마로만 여겼다.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인간으로. 엄마가 너의 외삼촌을 두고 오빠! 부르며 달려가는 그 순간의 엄마를 보기 전까지는..
"엄마를 부탁해" 중 - 신경숙 지음
오늘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내가 이틀만 전화를 안 해도 엄마는 내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안절부절 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엄마와 이틀에 한번 꼴로 전화를 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다들 놀란다. 어쩜 그리 통화를 많이 하냐며.. 별다른 대화를 나누는 건 아니다. ‘나는 지금 퇴근한다. 오늘은 꽤 피곤한 하루였다. 지금은 친구를 만나러 간다. 오늘은 주말이라 청소를 했다'와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이다. 엄마는 내게 '요즘 살이 쪄서 고민이다. 오늘은 근처 공원에 가서 1시간을 걸었다. 아빠와 사소한 말다툼을 했다. 저녁밥은 김치찌개를 해 먹었다'와 같은 소소한 그녀의 하루를 이야기해준다.
'아무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는 내 목소리만 들어도 안심이 된다는 엄마이다. 그렇다고 엄마는 내게 선뜻 먼저 전화를 하시진 못하겠다고 했다. 혹시라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데 방해될까 걱정이 되어 내게 전화를 걸 땐 2-3번 고민을 한다는 엄마.
한 번은 엄마가 예전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다. 아빠는 공무원이셨다. 30년도 훨씬 전 그 옛날 공무원 월급은 한 달에 고작 30만원 가량이라고 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엄마, 아빠 그리고 큰 오빠가 3살 적 일이다. 아빠는 월급날 동료분들과 재미로 고스톱을 치셨는데 그날 월급을 모두 잃으셨다고 했다. 아빠는 늘 성실하신 분이다. 우리에게 단 한 번도 큰소리를 내신적 없다. 본인에게는 늘 아끼시지만 우리에게는 베푸는 게 익숙한 사람이 우리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월급을 통째로 하룻밤 유혹에 잃으신 것이다. 그 잃은 돈을 다시 복구하느냐고 처음으로 외박이란 걸 하셨다고 한다. 30만 원 중 그래도 15만 원은 겨우 되찾으신 채 집으로 돌아오신 아빠. 새벽 1시.. 엄마는 그 모든 상황이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덩그러니 집에 남겨진 3살짜리 오빠와 엄마.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오빠의 작은 실수에 엄마는 크게 혼을 내며 오빠의 엉덩이를 수도 없이 때렸다고 한다. 엄마는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신다. 그때 자신의 행동이 용서가 안된다 하셨다. 늘 그 생각만 하면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렸을 적 우리 삼 남매 중 엄마는 유독 큰오빠의 일이면 두 발 뻗고 나셨다. 일명 치맛바람이라 부를 정도로 큰오빠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을 만나고, 오빠 담임 선생님께 과일을 선물하시기도 했다. 작은오빠와 나는 엄마가 우리와 큰오빠를 차별한다며 농담 반 진심 반 섞인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십수 년이 지난 후 엄마는 말했다. 그때 이유 없이 오빠에게 했던 체벌이 마음에 늘 짐으로 남아 있었다고. 그래서 그렇게 어렸을 때 큰오빠의 일이면 발 벋고 나셨다고 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마 오빠는 3살 기억이 없을 것이다. 자신이 엄마에게 엉덩이를 몇 대 세게 얻어맞았단 사실을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다.
엄마는 그런 분이셨다. 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줘도 주지 못한 것만 기억하시는 분이 셨다. 엄마의 그 미안함은 무엇도 지워주지 못할 것이다.
난 슬플 일이 생기며 늘 제주도를 찾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의 품을 찾는다는 말이 맞겠다. 갑자기 불쑥 제주도를 찾을 때면 엄마는 어리둥절 해 하신다. 뜬금없이 왜 왔느냐며. 나는 그저 휴가가 생겨 왔다고 대답한다. 사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끊는다. 엄마의 '잘 왔다'하며 나를 앉아 주시는 그 품이 그 어떤 백 마디 말보다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몸으로 기억한다. 내가 어렸을 적 한밤중에 엄마는 꼬박꼬박 내 방을 살피곤 했다. 자다가 발로 걷어 찬 이불을 내 목 끝까지 덮어 주시고, 내 볼에 뽀뽀를 하고 가시곤 했다. 곤히 잠든 상태였지만 그 느낌을 기억한다. 이불을 덮어주던 엄마의 손길과 입맞춤을.. 모든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아침잠이 많던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엄마가 깨우면 5분만! 10분 만! 을 습관적으로 외쳤다. 그래서 엄마는 내가 만약 7시에 일어나야 한다면 6시 반에 벌써 7시 넘었다며 나를 깨우곤 했다. 30분 일찍 나를 깨우러 왔다 잠에 취해 못 일어나는 내가 안쓰러우셨는지 내 옆에서 나를 꼭 껴안고 10분 정도 그렇게 있다가 나를 깨우고 다시 내 아침밥을 만들러 주방으로 가시곤 했다.
내 몸은 엄마의 그 품을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어떤 말도 하진 않지만 '모두 괜찮아질 거다. 세상에 아무도 네 편이 없어도 엄마만큼은 너 편이다'라는 걸 잊지 말라고 다독이는 듯한 엄마의 품. 그래서 극도로 참을 수 없는 힘듦이 내게 찾아올 때마다 나는 제주도를 가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중에 나를 나보다 더 걱정해주는 사람이란 사실을 나는 안다.
엄마와 난 늘 만나면 투탁 거린다. 동시에 외로울 때면 가장 보고픈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엄마가 답답할 때도 많다. 안절부절 걱정을 달고 사는 엄마에게 화를 낸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많은 것을 누리고 사시지 못했기 때문에 10을 줘도 3밖에 누리지 못하는 엄마가 촌스럽다며 짜증이 나기도 했다.
엄마도 엄마 이기전에 엄마가 되기 전에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겠지. 나는 그것을 헤아리지 못했다. 엄마는 늘 내게 사랑을 퍼주는 사람이고, 나를 위해 희생해주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라고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다 안아줄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도 누군가의 품이 그리운 딸이었겠지. 엄마도 한없이 엄마의 고민과 괴로움을 말없이 안아줄 엄마가 필요할지도 모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는 못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쩜 하나씩 받아왔던 사랑의 무게를 조금씩 덜어주고 엄마에게 엄마 같은 존재가 되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겠지.
문득 오늘 그렇게 엄마가 그리운 밤, 나도 엄마의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에게 엄마의 무게를 말하지 않아도 덜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