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시나리오를 준비하자
내가 나에 대해서 좀 더 알아가고자 한다고 생각하고 난 후, 내가 느끼는 감정 중 우울감, 좌절감, 결핍 등에 대한 부정적이 감정에 대해서 조금 더 직면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나는 자칭 긍정주의자다. 어쩜 강박일 수도 모르겠다. 부정적인 기운을 내비치는 것에 대해 극도로 두려워하기도 하고 주변 누군가의 부정적인 기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늘 누군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하고 내가 속해 있는 그 그룹에 늘 밝은 기운이기를 바란다. 왜 그런 성격이 형성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부정의 기운을 느끼는 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혼자 있을 때 아무도 나의 부정의 기운을 눈치채지 못할 때는 당연히 우울한 마음도, 슬픔의 감정도 모조리 쏟아낸다. 그런 나의 성격에는 당연히 장단점이 존재한다.
내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어떤 일을 기획할 때 내가 계획한 것에 대한 긍정적인 상황만 본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이런 걸 하려고 해" 했을 때 "잘될 거야"라고 무한 지원의 말들을 해주는 동시에 이건 내게도 속한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계획할 때 내가 계획한 대로 잘될 거라는 생각만 한다. 흔히 말하는 초를 치는 느낌을 가지기 싫기 때문이다. 예전에 친구 중에 한 명이 자기는 뭐든 계획할 때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생각한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 말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생각하지. 여기서 나의 최악의 단점이 나타난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친구들은 늘 플랜 비를 계획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고자 하는 계획을 했을 때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기에 그것이 안되었을 때의 플랜비도 함께 계획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계획한 대로 무조건 될 거라는 무한 긍정의 생각 때문에 그것이 안된다는,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에, 내 계획에는 플랜비가 없다. 그것을 깨닫는데 이렇게도 오랜 시간이 걸리다니.
최근에 일본에 살면서 일본 영주권을 따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 보았다. 영주권을 따보고자 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었다. 나중에 내가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일본 영주권이 있으면 언제든지 일본에서도 살 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냥 뭔가 내가 살고자 하는 공간의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고, 또한 집을 구매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그런데 집을 구하고자 하려니 당연히 대출이 필요했고 영주권이 있을 때 대출이 용이하고 영주권이 없을 때 대출을 받았을 때 보다 훨씬 저렴한 이자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영주권을 얻기 위한 자격 요건을 조사하고 자격 요건이 된다고 생각해서 영주권을 대행해 주는 업체와 연락을 하면서부터 나는 영주권을 따고, 집을 사고 하는 것들에 대한 기한을 정하고 그 기한 내에 이 두 가지를 이루리라는 계획을 세웠다. 뭔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그냥 무조건 내가 생각한 대로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자료를 준비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료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영주권을 따기 위한 기간은 내 예상보다 상당히 길어졌으며 영주권을 사실 언제 따도 상관은 없었지만 여기서 영주권을 따면 내가 집을 구매해 봐야지 하는 이 계획이 모든 게 망가져 버리게 되었다. 사실 집을 구매해 보고자 결심한 순간 나는 내 인생에 내 집을 구매한다는 큰 기대감을 갖고, 그 계획하에 어쩜 영주권에 대한 생각을 더 크게 가졌던 거 같다. 모든 게 확인하면 할수록 틀어지고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어쩜 영주권을 따기 위해서 2-3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과정에서 모든 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확인해 주는 대행회사가 원망스럽고 암튼 그랬다.
나는 좋은 말로 무한 긍정의 사람이고 나쁜 말로는 너무 현실적인 감각이 없는 인간으로 내 생각대로, 뜻대로 되지 않았을 상황에 들이닥쳤을 때 이를 통제할 감정의 그릇이 너무나도 작았다. 사실 집도 안 사면 그만이고 영주권도 따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냥 내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 화가 나고 이 화는 결국 “나는 정말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왜 내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거야” 하는 극단의 자기 비하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래. 올해는 나를 성장하는 한 해가 돼 보고자 약속한 나이기에, 이 부정적인 감정의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나를 똑바로 직면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어쩜 이제까지 긍정적인 나라는 내가 정한 나의 모습에 도취해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왔을 때 이를 한 번도 내다보고 왜 이런 감정이 올라왔는지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결국 긍정의 나는, 계획대로만 될 거라고 생각하고, 플랜비 없이 진행하는 일들에서, 계획대로 무언가가 되지 않았을 때, 앞서 말했듯이 플랜비가 없기에, 이런 상황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간 수많은 날들을 생각해 보았다. 계획대로 일들이 처리되지 않았을 때 부정의 기운이 올라오고 이를 내다보지 않고 포기해 버리고 쉽게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들만 보지 않았을까. 어쩜 내가 이제까지 무언가 도달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플랜비가 있었다면 뜻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마도 유연하게 대처했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화가 나는 감정을 누르고 다른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하는 방안으로 마음을 돌렸다. 정말로 이런 부정의 감정에 나를 직면하고 피하지 않고 돌아보는 연습은 부끄럽지만 처음 해보는 일인 거 같다.
나를 알아가보고자 하는 연습의 시작. 40대에도 나를 성장시키지 위한 첫 발걸음이 아닌가. 최악의 시나리오도 늘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