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조금 다른 한해를 만들어보고자 했다.
가만히 지난 3-4년을 돌아봤을 때 작년이 재작년이었는지, 재작년이 작년이었는지, 3년 전 있었던 일들이 어느 해에 있었던 일들이었는지 모든 게 뒤죽박죽 도통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일본으로 오면서 1년간 폭풍 같은 해를 보냈고 코로나를 보내면서 재택이 시작되었고 그러는 시간들이 흐르면서 도쿄의 모든 것들이 익숙해지고 회사의 업무도 익숙해지고 일상이 점점 안정적으로 변했다. 물론 안정이란 말은 좋지만 그것이 내게 또 불안을 주었다. 별 특별한 일들이 없이 지나가는 하루하루가 이어지다 보면 '내가 잘 살아가는 걸까' 하는 의문이 동반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심리학자가 아니기에 그 이유를 물은다면 모르겠다. 왜 인간은 그런 건지. 잔잔한 물결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이 이어지는 몇 년을 경험하니 다시 불안의 마음이 엄습했다.
내가 잘 살아가는 걸까? 이대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그래, 뭐 내면적으로는 한 해 한 해 성숙해졌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냥 눈에 보이는 어떠한 성과를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올해 세운 목표가 영주권 따기와 집을 구하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이건 누가 봐도 크게 눈에 보이는, 내가 5년을 넘게 일본에 살면서 얻게 되는 성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올해 이루지 못해도 이 두 개는 내가 꼭 얻으리라는 뭔가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기에 이에 대해서 집착을 하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영주권을 따기 위해서는 일정선의 자격요건이 있다. 스스로 그 자격요건에 충분히 적합하다고 생각했기에 변명을 하자면 이거에 대한 장애요소가 발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안일했고 여전히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 매해 일본 정부의 이민자들에 대한 법이 바뀌니 이를 진행하는데 조금이라도 신청 조건에 삐끗한 요소들이 있으면 영주권 대행해 주는 회사들은 진행해주지 않았다. 서류 검사가 더욱 빡빡해진다고 했다. 영주권이 안되면 그에 이어지는 집을 사는데 당연히 제약조건으로 뒤따라 온다.
생각대로 일이 진행이 안된 상태에서 6월이 맞이 하니 마음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고 결국 자기 비하에 우울까지 왔다. 영주권을 못 따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계획했던 일들이 마음대로 안 되는 돼서 오는 실망감이 너무 컸다. 그 계획, 올해는 뭔가 다른 한해를 만들어 보고자 한 마음, 그것이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계획의 마음이 '나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내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아'라는 자기 비하로 결국 이어지는 결말을 맞이하게 되다니.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 보니 참으로다가 어리석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세웠던 계획이란 건 사실 그리 구체적이지도 않았고, 이를 조금 더 신중하게 조사하고 생각해 봤다면 외부 요인에 의해서 안될 수도 있구나 하는 고려를 해볼 수도 있었고, 그런 고려를 했다면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리도 지금처럼 절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사실 그 계획이란 걸 마음먹고, 꼭 올해는 이뤄야지 하는 마음에 주변에서 “자격 요건이 안 되는 거 같아” “조금 더 알아봐”라는 조언을 했을 때 원천 차단했던 거 같다. 내 머릿속 계획을 망가트리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영주권을 따고 집을 사려고 해"라고 이야기를 했을 때를 돌려 생각해 보면 말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을 거 같고, 만약 내가 정말 일본에 앞으로 5년을 더 살게 될 경우 그때 가서 다시 영주권이란 걸 신청해 볼 수도 있고, 집을 구매하는 게 사실 최종 희망이었는데 그것은 또 다른 방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천천히 생각하고 알아봐야지. 그리고 이번에는 100% 장담 대신, 안될 경우에 대한 플랜비를 세우는 연습을 해야지. 플랜비를 세우자 다짐했던 마음은 이리도 쉽게도 무너지고 말았다.
올해는 조금 다른 한해를 만들어보고자 했던 그 마음과 그 실천에 있어서 왜 나는 내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계획은 세우지 못했던 걸까. 눈에 보이는 성과만이 성과고 그것이 다른 한해를 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매일매일 내가 스스로 계획을 짜고 컨트롤할 수 있는 외부 요인이 절대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나 스스로에 의해서 성취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다. 그리고 이것들이 모이면 다른 한해를 만들 것이다.
예를 들면,
-. 이렇게 글을 쓰면 내 마음을 정비하는 것. 이건 외부 요인이 들어갈 수가 없다.
-. 매일 10분씩 언어 공부를 하는 건. 10분이다. 10분. 이것 또한 외부요인이 개입되기 어려운 계획이다
-. 일주일에 3번 이상 운동을 하는 것.
-. 따뜻한 물을 계속 마시는 것.
-. 타인에 대한 안좋은 이야기 하지 말기.
외부 요소가 없이 오로지 나의 의지와 통제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계획들이다. 이러한 계획들은 세우지 않은 채 아니 세웠다 하더라도 이를 실천하고 성취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계획들에 집착하고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나를 자책하는 건, 나의 아주 나쁜 습관이 아닌가.
오늘부터이다. 통제할 수 없는 계획은 조금 더 멀리 시간을 두고 플랜비를 세워가며 계획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매일매일 성취하는 하루를 만들어가 보자.
그것이 또 나의 40대를 성장시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