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포트존(comfort zone)은 인체에 가장 쾌적하게 느껴지는 온도 · 습도 · 풍속에 의해 정해지는 어떤 일정한 범위를 말한다. 쾌감대, 쾌적대, 안락지대 등으로 번역해 쓰기도 한다. comfort zone은 직역하면 “편안함을 느끼는 구역”인데, 비유적으로 “(일을) 적당히 함(요령을 피움)”이란 뜻으로 쓰일 수도 있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 수록 이 comfort zone의 영역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나이가 들면서 경험은 당연하게 쌓인다. 걸으며 가도 뛰면서 가도 뜻밖의 상황들을 피해 갈 수 없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 장애물을 잘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고 또 장애물이란 게 온갖 풀들이 무심하게 질서 없이 자란 숲길을 걸어간다고 해도 무조건적으로 마주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걸어가든 뛰어가든 쉬어가든 인생은 예측할 수 없고 때론 녹록지 않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무언가와 마주하게 되고 결국 이는 우리에게 경험이라는 걸 선사하게 된다. 그건 긍정의 경험이 될 수도 있고 부정의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경험이 저절로 쌓이게 된다는 것을.
우리의 삶이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경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닐지. 이 경험이라는 녀석은 여러모로 장점들을 주기도 한다. "많이 경험해 봐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말이다. 실패의 경험의 데이터는 우리가 미래에 같은 상황이 주어졌을 때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지혜를 주기도 하고, 여러 실패와 성공의 경험 데이터의 축적은 우리에게 노하우라는 것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세월이 지나면서 좀 더 여유가 생기고 현명한 결정을 아마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 경험이라는 녀석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것에는 단점도 따라온다. 이 경험의 데이터로 인해서 오히려 경험을 하는 것이 줄어들기도 한다. 여기서의 경험은 새로운 경험이다. 20대 때에는 온통 안 해본 거 투성이다. 모든 게 궁금하다. 물론 시작하기 전에 이 전에 경험의 데이터가 없기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하지 말까 할까의 결정을 수없이 머릿속으로 시물레이션 해본다. 결국 궁금증과 호기심이 이기게 되면 그 어떤 경험을 해보자 결정하게 되고, 그 경험이 적응이 되고 나쁘지 않게 되면 계속 이어가게 되면 또 다른 새로운 경험으로 옮겨가며 똑같은 과정을 반복한다.
그런데 이 경험 데이터가 축적하고 축적되면 긍정의 경험만 끌어올리게 된다. 그때 해봤을 때 실패했던 경험에는 단순 실패의 경험 하나만 기억으로 남는 게 아니고, 그때 실패로 인한 좌절감과 우울감, 한동안 그로 인해 다른 나의 생활에도 영향이 미치게 되었던 복합적인 좋지 않았던 감정까지 올라오게 되어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가 주저주저하게 된다. 뭐 대표적인 예가 어른이 되면서 연애가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사랑에 무작정적으로 잘 안되면 어때하면 뛰어들던 연애는 30대 40대가 되면서 어려워진다. 과거 실패했던 사랑의 기억은 다음 연애에서는 더 잘해보자라는 파이팅으로 이어지지 않고, 좀 더 조심하게 되고 모든 다가오는 연애의 싹을 잘라버리게 된다. 만약에 또 이별을 맞이하면 어쩔까 하는, 혹은 이 조금의 부정적인 기운은 과거 실패의 경험을 토대로, 차라리 시작을 안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으로 간다. 나이가 들 수록 연애가 어려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어쨌든 사실 과거의 실패의 경험은 그때이기에 실패한 것이지 꼭 현재의 나의 적용할 필요가 전혀 없다. 과거는 그랬지만 현재 도전했을 때는 다른 결과와 경험치를 선사하는데도, 왜 우리는 이 부정의 기운을 되새김하게 되는 걸까, 그래서 경험 데이터의 축적은 노하우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노련함이라는 성숙의 말로 자꾸 내가 컴포트 존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과거 선택했을 때 잘된 경험만 다시 시도하게 되고 잘 안된 것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인생에 똑같은 것은 없는데도 말이다. 이는 삶의 제약을 주는 것은 알지만, ‘맞아, 그때 비슷한 것을 했을 때 잘 안 됐어. 시도하지 않는 게 좋겠어’와 같은 결정, 근데 그것이, 아마도 그것이 나의 삶을 지루하게 만들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경험은 진화하는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 나를 컴포트 존에서 꺼내보려고 한다. 일본에 와서 나는 5년간 있으면서 이 컴포트 존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일본어도 잘 못하면서 어떻게 일본에서 그렇게 오래 살아갈 수 있냐며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오랜 시간 어느 한나라에서 살면서 그 나라 말을 못 하는 것은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어찌 되었던 업무에서 일본어를 쓰지 않기에 사실 살아가지긴 한다. 늘 핑계도 그렇다. 업무에서 일본어를 하지 않아서 가능하다고, 살아가지는 게. 근데 결국 나는 컴포트 존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갔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과거의 노하우 데이터를 통해서 실패하지 않는 길로만 요리조리 피해 가며 살아가고 있다.
다행히도 큰탈 없이 살아가졌다. 내 안의 과거의 실패의 경험과 이를 극복했던 경험은 물론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내가 아직도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현재를 살아가는 듯 한 생각이 든다. 내가 모든 삶에 있어서 진취적인 듯 그렇지 않고 늘 안전한 선택만 했던 것은 사실 노하우라는 거창한 터울하에 과거의 트라우마를 마주하지 않고 또 같은 상황이 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우려가 내 마음 한편에 아주 크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40대이다. 왜 이리도 나는 나이에 집착하는 걸까. 그냥 40대는 실패를 하면 안 되는 것 같은 나이라는, 좀 더 성숙하고 미숙하면 안 되어야 한다는 마음 때문에 온통 내 삶은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왔다.
나는 한국에서 일본이라는 나라로, 아무 연고도 없고 말도 모르는 이 나라로 와서 5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살고 있다. 이는 엄청난 도전이다. 맞다. 근데 그 큰 도전이라는 틀 안에서 갇혀 오히려 5년의 내 삶은 안전지대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굴러갔다. 뭔가 삶은 잘 굴러가는데 의미 없이 굴러가는 느낌이 가끔 들 때가 있는데, 아마도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사소한 것부터 두려움을 없애고 새로운 경험을 쌓고자 하고 있다.
혼자 일본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고 적금 들기(놀랍겠지만 나는 혼자서 계좌를 만든 적이 없다. 적금은 모두 한국으로 들었었다).
지인 도움 없이 혼자서 일본에서 집 구하기(이 역시 놀랍겠지만 나는 5년간 이사를 하지 않았다. 첫 집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일단 현재까지 정말로 누구의 도움 없이 진행하고 진행했던 일들이다. 은행 가서 계좌 만드는 게 뭐 대수겠냐 하겠지만 이는 해외에 사는 내게는 정말 큰 도전이다. 심지어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은행 가서 계좌를 만들고 저금통장을 만드는 것이 말이다.
아직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과거의 경험 데이터를 새롭게 바꾸자 하는 노력의 시작에 불과하다. 하나씩 하나씩 조금씩 조금씩 새로운 길들을 개척해 보자. 내가 해보고자 하는 40대의 새로운 성장의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