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속 시절시절이 있었다.
1.
10년짜리 여권이 재갱신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인터넷으로 재갱신 신청을 하고 영사관에서 새로운 여권이 발급되었다고 해서 받으러 갔다 왔다.
2.
새 여권을 받고 기존 여권은 쓸 수 없게끔 처리를 하고 두 개의 여권을 손에 쥐고 영사관을 나오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3.
지난 10년, 참으로다가 많은 일들이 있었고 동시에 그 10년이 참 빠르게도 지나갔다. 3-4년 전에 있었던 일들인 줄 생각하다가 그때가 언제였나 가만 다시 생각해 보면 7년 전인지 8년 전인지 까마득하게 옛날일이기도 했다. 시간이 그렇게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빠르게도 흘러간다. 10년간 나는 여권에 찍힌 도장만큼이나 여러 나라를 여행했고 여러 추억들이 있었다. 내 10년 묵은 여권은 나를, 내가 누군지를 보여주는 내 발자취이다.
4.
작년에는 2주간 태국 여행을 했다. 태국에서의 2주 여행동안은 방콕부터 북쪽에 있는 치앙마이 그리고 남쪽에 있는 푸껫까지 여러 도시를 탐험했던 새로운 경험을 했다. 처음해 보는 여행이었다. 이곳저곳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섬을 오가고 시골 마을을 체험하고, 역시나 그 속에서 만났던 새로운 인연들과 그들과의 나눈 대화는 나를, 내 세계관을 넓혀주었다. 여행은 여행은 역시나 우연한 만난 사람들로부터 최종 완성이 된다. 꼭 그게 누군가의 인연이 되었든 단순히 현지인들의 생활을 바라보던, 혹은 다른 여행객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말이다.
6년 전에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나는 거주지를 옮겼다. 그러면서 생각지 못하게 지난 6년간 한국과 일본을 정말이지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하네다와 김포공항, 나리타와 인천공항을 무수히도 왔다 갔다 했더랬다. 그만큼 여권에 찍힌 도장이 무수하다. 내가 해외를 이동하는지도 모르게 말이다. 2년간 경험해 보자 했던 나의 일본 생활은 나를 이곳에서 6년이나 정착하게 했다. 도쿄는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오랜 산 해외 도시가 되었다. 여전히 나는 도쿄를 모른다. 그런데 살아가진다. 어쩜 적정선의 거리를 유지해 가면서 사는 것이 가장 삶을 계속 이끌어가는 지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도쿄의 거리는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깝지만 멀다.
7년 전 나는 발리여행을 했다. 발리도 한 2주 정도 여행했는데 내가 진짜로 혼자서 진지하게 했던 첫 혼자 여행이었다. 여행하며 요가를 배웠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우연히 요가원에서 만났던 독일 친구 덕에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이 되었고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여전히 발리를 좋아한다. 또 언제든 가고 싶은 그런 도시가 바로 발리이다.
8년 전 나는 중국 베이징에서 2달간 머물렀다. 출장 때문이었다. 베이징에서 동료와 참 많이도 싸웠고 또 서로 의지도 참 많이 했다. 베이징은 그다지 내가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이기도 하다. 또 그해는 우리 가족에게 큰 시련이 있었던 해기이도 하다. 베이징 출장이 끝나고 2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날, 가족 구성원 중에 누군가를 잃었던 날이기 때문이다. 베이징 출장의 기억과 중국 단기 비자의 도장은 출장의 기억보다 그 슬픔의 기억으로 나를 인도한다. 아직도 그날, 신이 거짓말은 하고 있다는 생각을, 끌어오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바로 중국 출장에서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들었던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여권을 채 가방에서 내 방 서랍에 다시 집어넣지는 못한 채.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9년 전 처음으로 영국으로 갔던 출장도 있었다. 그때도 2달간 머물렀다. 직장인으로 런던 워털루 역에서 기차를 타고 고객사 사무실로 가며 보던 그 템즈강을 잊지 못한다. 힘들었지만 템즈강을 보며 힘을 냈다.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한국에서는 매일 야근이었는데 출장 동안은 또 야근 없이 칼퇴할 수 있다는 행복감도 있었다. 동시에 혼자서 출장 와 한국과 영국 사이에 일들을 조율하자니 스트레스도 함께 밀려왔었다. 서러움은 내 주특기인가. 그때도 서러움이 있었다. 런던은 런던은 늘 내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도시로 남게 해 준다.
아참, 8년 전 가족을 잃고, 우리 가족은 우리끼리 단단해지기 위해 함께 여행을 참 많이도 다녔다. 10년간 여권 속, 나는 홍콩을 갔었고 부산으로 여행을 갔었기도 했고 전라도 여행을 하기도 했다. 부산과 전라도 여행에 왜 여권이 필요했냐. 가족들과 여행을 하기 위해 나는 도쿄에서 부산으로 전라도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내 여권 속에 찍힌 도장은 없지만 가족들이 내가 살고 있는 도쿄로 참으로다가 여러 번 오기도 했다. 함께하는 도쿄는 내게 사는 도쿄가 아니고 여행하는 여행지 도쿄가 되었다.
그 외에도 여권 속 여러 도시 여행 도장들이 찍혀있다. 여행을 통해서 나의 10년간의 추억과 성장의 한편이 함께 했다. 나는 그렇게 10년을 달려왔다.
10년이 끝났고 나는 새로운 10년의 시작을 받았다. 기분이 묘했다.
내 시절시절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초록색 종이 속. 여권 속 나는 행복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다. 그렇게 뜀박질하기도 하고,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나를 보기도 하며 걸어왔다.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보았을 때 그 짜릿함을 이 초록여권과 함께 하기도 했다.
참, 새 여권이 이리도 나를 감성적으로 하게 될 줄이야.
앞으로 10년 나는 이 새 여권 속 어떤 성장과 추억들, 물론 시련도 있겠지, 나는 어떤 도장으로 내 인생을 채워갈까. 다시금 성장으로 이 여권을 채워 나가고 싶다.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계속 궁금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