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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Nov 18. 2024

도쿄에서 이사하기

드디어 마음에 드는 집을 구했다.


이 집을 구하기까지도 사실 쉽지는 않았다. 한정된 예산에서 원하는 조건 10개 중 5개는 버리고 포기할 수 없는 5개를 추려야 했고, 이 5개 조건을 만족하는 집을 찾기 시작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고 길었다. 이 길고 더운 여름, 나는 해외에서 이사를 처음으로 해보고자 하는, 길고 지겨운 이번 여름만큼이나, 길고 지겨운 이사와의 전쟁을 하게 되었다.


한 군데 두 군데 집을 보고 오는 날이면 마음이 심란했다. 이건 마음 드는데 저건 마음에 들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집을 보고 돌아온 날이면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내가 견딜 수 있는 부분인가를 몇 번을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았고 봤던 집들 모습을 곰곰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며 만약 그곳에 내가 살게 되면 어떨까 하는 시물레이션을 계속해보았다. 그러다 보면 내 마음이 그리 썩 유쾌하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고, 그럼 그건 내가 원하는 집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참고로 성장의 일환으로 스스로에게 결심한 것 중 하나는,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진짜로 원하는 걸 하자인데 월셋집, 그래 이 월셋집, 평수도 그리 넓지 않은 이 월세집으로 이사가 어찌 보면 내가 결심하고 내 성장이라고 일컫는 프로젝트의 첫 단계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결정이며 이런 결정에 한해서는 내가 꼭 원하는 것으로 결정하자"


앞서 경험한 것처럼 원하는 집으로 이사를 하자에서 그냥 1개월 이내에 이사를 해버리자로 원하는 것은 잊고 결과만 쫒게 되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집을 구할 때 제일 중요하게 여긴 건 수납공간이 많은 곳과 해가 잘 드는 환한 곳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두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집을 찾았고, 물론 예상보다 월세를 한 달에 더 내야 한다는 변동 사항이 있기는 했지만, 이런저런 면에서 내가 원하는 집을 찾게 되었다. 얼마간 살게 될까? 도쿄로 처음으로 이사 온 후에 나는 한 곳에서 5년이 넘는 시간을 살았다. 나는 한번 마음에 들면 쉽게 뭐든 잘 바꾸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집도 동네도 그런가 보다. 얼마나 이곳에서 살게 될까? 어찌 되었던 드디어 길고 긴 이 지루한 집 찾기가 끝났다.


이사 확정 후

집을 찾는 것은 이사의 첫 단추일뿐이란 걸 왜 깨닫지 못했을까. 이사 자체도 쉽지 않은데 특히 해외에서 이사를 하는 일은 여간 힘들일이 아니다.


사실 이사를 하면서 정말 크게 힘들었던 건 바로 "결정"이었다. "결정하는 일"


이 모든 게 나의 숨통을 죄여 왔다. 집은 어느 집이든 "이 집으로 이사할게요"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한 예산에서 최대한 효율적인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결정이 힘들었다. 여러 변수를 생각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후회는 남게 될 것이란 걸 안다. 그래도 그래도 여전히 잘한 결정일까에 대한 수많은 스스로에 질의의 과정은 누군가가 좀 나 대신 결정해 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까지 들게 했다.


일본은 보통 부동산이 있고 관리회사가 있다. 집주인은 100% 관리회사에게 집과 관련한 일들을 맡기고 나는 계약을 관리회사와 하게 되는 것이다. 집 계약을 하고 싶은 경우 부동산에서 나와 관리회사 간의 계약을 연결해 준다. 집 결정을 한 후 바로 다음날 관리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가스와 전기 그리고 인터넷에 관한 것들에 대해 내게 문의하기 위해서 전화했단다. 관리회사에서 연결되어 있는 가스와 전기 그리고 인터넷 회사를 이용하겠냐고 물어왔다. 사실 물어왔다기보다는 거기로 계약을 하라는 반강제성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알겠다 하고 결정 뒤에 바로 전기/가스/인터넷 회사가 나에게 차례라 전화가 왔다.


일본에서 핸드폰을 한번 개통하려고 하면 귀에서 피가 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핸드폰 개통하기 전에 매뉴얼에 나와있는 것들을 줄줄이 말로 이야기하고 그에 대해서 동의를 하는지 구두로 답변을 받는다. 그것이 매뉴얼에 나와있는 직원들이 행해야 하는 일이며 동시에 나는 다 말했고 네가 동의했으니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내가 책임지는 것은 없다와 같은 책임전가이기도 한단다.


전기/가스/인터넷 회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을 전화로 와서 내게 설명하고 언제 설치할지를 물어보는데 정말 글로는 단 두 줄짜리 이야기지만 너무나도 괴로웠다. 능숙하지 않은 일본어이기에 잔뜩 긴장해서 혹시나 놓치는 것이 있을까 예민상태인 데다가 30분 동안 매뉴얼을 설명해 주는데 중요한 부분을 혹시 내가 이해 못 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사람이 참으로 생존 본능은 있나 보다. 30분 동안이나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로 내게 말을 전하는데 그중에 언제 집을 방문하면 되냐, 언제 인터넷 기기를 보내주면 되냐 와 같은 제일 중요한 문장은 알아들었고 문제없이 모두 설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사 업체를 고르는 일도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 이사업체가 얼마나 악명 높은지 여러 친구들로부터 익히 들은 터라 마음에 준비는 하고 있었다. 여러 이사회사들이 등록된 이사 사이트가 있는데 그곳에 내 이사 정보를 등록하자마자 이사 업체로부터 1시간 이내에 정말 거짓말 안 보태고 30통이 넘는 전화가 왔다. 1분마다 울려대는 전화에 어떤 전화도 받지 못했다. 3-4군데 가격 비교를 꼭 해보고 이사 업체를 정하라는 충고를 준 친구에 말이 생각나 몇 군데를 비교해서 겨우 이사 업체를 정했다. 처음 견적을 보러 온 어떤 이사 업체는 90만 원(9만 엔) 정도를 불렀다. 세상에나. 포장이사도 아니고 짐도 내가 다 싸고 트럭한대면 끝나는 아주 소규모의 짐이었는데. 90만 원 부르자마자 나가시라고 했다. 만약 다른 업체를 비교 안 해봤으면 원래 일본은 이리도 이사가 비싼가 속을 수도 있었다. 이사 당일날도 화나는 일이 당연히 있었다. 원래 이사 업체에 말한 짐보다 한두 개 짐이 더 생겼다. 그 짐이라 해봐야 깜빡하고 말하지 않는 이불과 베개 그리고 아주 작은 박스 하나였다. 트럭한대 부르고 거기에 들어가면 짐이 그 정도 늘어나는 일은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사 가격을 책정할 때, 이불 하나, 베개 2개 박스 하나하나를 세어가며 가격을 계산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뭐 계산법이 그런다던데 어찌하리라.. 그냥 해달라고 화내봤자 통하지 않는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이 오랜 일본 생황을 통해서 습득한 것이다. 화는 났지만 그냥 포기했다.


일본에서 처음 이사해 보면서 서러운 거, 답답한 거, 이야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겠다. 한 번은 집에 앉았는데 서러움에 눈물이 펑펑 났다. 이렇게도 나약한 존재라니. 정말 이렇게 서럽게 울어본 적 최근에 있었나 싶다. 이사하면서 몸이 힘들었고, 진짜 몸이 힘들었고, 또 다 내가 결정하고, 또 그 결정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모든 게 돈으로 직결되는 것 같아, 그것도 서러웠다. '그냥 좀 해주세요.' 하고 외치고 싶었다. 한국이 참 살기 편한 곳이란 걸,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뼈저리게 느꼈다. 이렇게 서러운 마음이 든 게 언제였던가 기억도 안 난다. 집에 앉아서 몇 분을 그렇게 서럽게 울었다. 원망하고 책망할 상대조차 없는 해외살이의 서러움이었다. 주변에 가족이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더 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모든 정리가 끝이 났다. 이사를 하기 전 역시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외에서 혼자 이사하려니 너무 서럽고 힘들다고.


“그래도 끝이 있는 힘듦이잖아. 너 요즘 힘들다고 혼술하고 그러는 건 아니지? 맞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엄마친구가 있는데, 딸이 30살이야. 근데 자폐증이 있대. 혼술 이야기 하니 생각났다. 엄마 친구가 매일매일 술을 마시는 거야. 그래서 건강이 안 좋아져서 왜 그리도 혼자 술을 마시느냐 했더니 딸때문이더라더라. 어렸을 때는 그래도 통제가 되었는데 20살이 넘고 그러니 힘도 자기보다 더 세져서 통제가 안된대. 요즘에는 또 무슨 채팅 같은 데서 모르는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하고 만나기도 한다고 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술을 왜 마시냐. 술을 안 마시면 잠이 안 온대. 내 아이를 사랑하지만 아이가 언제 좋아질지 좋아지기는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아이를 보살피려고 하디 보니 오죽 힘들겠니. 끝이 없는 힘듦 속에서 돌보려니 술을 안 마시면 잠이 안 온다더라고. 이사 힘들지. 해외에서 이사도 엄마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 거 알겠는데, 이사는 이제 다 하고 정리하면 끝이잖아. 그 과정을 즐겨봐. 끝이 있잖아”


누군가의 아픔을 통해서 내 힘듦이 별거 아니구나를 느끼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엄마의 말이 위로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뭐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긴 했다. 이사. 맞다. 혼자여서 사실 힘들고 지쳤다. 더욱이 해외에서 이고 지며 이사를 하자니 더 서러운 감정이 올라왔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뭐, 누가 등 떠밀려 한 것도 아니고, 내가 하고자 해서 한 건데, 감정이란 건 어쩔 때 누군가에게 털어버리고 소리로 뱉어버린 후에 참 내가 느낀 그 감정이 소리로 말로 공기에 내뱉는 순간 별게 아니게 되는 마법이 되기도 한다. 끝이 있다. 그게 뭐 힘든 거라고.


나의 가을의 시작.

여전히 찌는 듯한 더위로 겨울이 오는 건지 여름이 다시 오는 건지 모르지만 이번 나의 가을은 일본에서 첫 이사로 모든 게 점쳐진다. 이사라는 작은 이벤트를 통해서 여러 감정을 마주했다. 혼자서 정말로 혼자서 잘해보자 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그 순간 도움을 요청했을 때 오히려 왜 진작 요청하지 않았느냐며 꾸중을 들으며 가슴이 따뜻해진 순간도 있었고, 모든 걸 스스로 다 결정하고 움직이다 보니 혼자임에 좌절하는 순간도 겪었다. 뭐 나열하자면 수도 없이 많다.  


뭐 그리고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엄마 말처럼 끝이 있는 힘듬인데 말이다. 나는 이 공간에서 어떠한 다시 나로 채워 나갈까. 이제는 다시 시작이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나와 삶의 시작!


힘듬의 끝에는 설렘이 시작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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