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후에 나도 엄마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고향인 제주에 그 해 대규모 주공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제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 가족 역시 그 무리 중에 하나였다. 참 신기한 게 그때, 이사 가던 그날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비록 겨우 4살밖에 안되던 때였는데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그곳에 살았다. 나의 모든 유년 시절이 거기에 있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큰 단지에서 도대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한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 집 위층도 있었고, 앞 동에 5층도 있었고, 옆 동에 3층도 있었다. 그렇게 구성된 엄마의 모임은 우리 집까지 해서 총 6 가족들 이었다. 여름이며 바다로 가을이면 산으로 함께 어울리며 자랐다. 내 생일이면 엄마는 동네 언니 오빠들 모두 불러서 생일파티를 크게 열어 주시곤 했다.
아직도 7살 생일 파티를 기억한다. 엄마는 한가득 음식을 만들었고, 언니, 오빠들은 선물로 연필과 공책 그리고 인형을 사들고 우리 집에 모두 놀러 왔었다.
정말 응답하라 1988이었다.
함께 어울리고 즐겼던,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정말 와 닿았던,
친척보다 더 가까웠던 그런 사이.
모두 그렇게 흩어져 서로의 소식을 모르고 살았지만 엄마들은 여전히 그 모임을 유지하고 계셨다. 자식들을 시집 장가보내고(물론 다 시집 장가를 간 건 아니지만) 이제는 누구의 엄마란 수식어보다는 누구의 할머니로 불리는 것이 익숙한 나이가 되셨다. 그만큼 시간은 참 많이도 흘렀다.
가끔 함께 여행을 같이 가신다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여행을 다니시긴 시작한 것은 아마 작년부터가 아닌 가 싶다. 진짜 여행을 다니시기 시작하신 듯하다.
항상 패키지로 다니시던 엄마들은 해외로 갈 것도 없이 엄마들끼리 돈을 모아 국내 여행을 시작하셨다. 직접 비행기며 기차 티켓을 끊고 호텔을 예약하며 그들만의 진짜 여행을 시작하셨다.
<2016년 12월>
엄마가 춘천으로 여행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서울은 오신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춘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오신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엄마의 방문에 너무 기뻐 엄마와 엄마 친구들이 함께 묵기로 한 종로의 한 호텔로 찾아갔다. 거의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동네 이모들을 보지를 못했었다. 10여 녀 만에 재회가 이루어졌다. 어린 시절 짝꿍처럼 항상 함께 어울렸던 한 살 터울의 동네 언니도 엄마들을 보기 위해 호텔로 왔다. 다들 주름이 조금 느시긴 했지만 모두 예전 모습 그대로 셨다. 오랜만엔 만난 언니의 얼굴에서도 내가 기억하는 그 소녀를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내가 어린아이 같으신지, 나를 보며 껴안고 볼을 쓰담 듣으며 "와주서 고맙다" 라는 말을 반복 하셨다. 그리고 함께 청계천을 걷기 시작했다.
촛불집회가 한참인 광화문과 종로의 거리는 부산스러운 느낌이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있는 곳도 있고, 여기저기서 함성이 들리기도 했다. 집회가 열려 거리 전체가 차량이 통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평소와는 매우 다른 거리의 모습이 엄마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 저 훌쩍 커버린 내 모습을 신기해하며 어디로 걷는지 모른 채 걷고 있었다. 엄마들에게는 어디를 걷고 있는지 보다는 그저 옛 추억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이들과 아울러 걷고 있음을 행복해하시고 계셨다.
춘천 가서 닭갈비 대신 배가 고파 소고기를 먹었다고 까르르, 서울로 오는 청춘열차가 너무 좋았다고, 춘천에서 무엇을 했느냐는 물음에는 가방 메고 걷는 것이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특별히 무엇을 하진 않아도 그냥 함께 이야기하며 있는 것이 좋고 즐거웠다는 엄마들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함께 호텔 앞 치킨집에서 치킨과 맥주를 먹었다. 맥주를 마시면 얼굴이 빨개져 술을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엄마는 이 집 맥주가 왜 이리 시원하고 맛있냐며 두 잔을 비웠다. 사실 내가 느끼기에 이 집 맥주는 특별할게 하나도 없는데도 말이다. 내가 너무 잘 커줘서 좋다는 말 반, 내일 제주로 돌아가기 전 어디를 둘러보는 게 좋은지 의논 반, 엄마들의 짧지만 소중한 여행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저녁 너무 늦었다며 걱정하는 엄마들의 만류에 나는 그렇게 6분의 소중한 여행 마지막 사진을 찍어드리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끔 유럽여행을 하는 친구가 여행 중 카페에서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볼 적이면 나도 모르게 ' 아, 나도 여행 가고 싶다'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그만큼 여행에서 주는 장소의 특별함은 참으로 크다.
하지만 그저 평범한 치킨 집에서 기차 타기 전 소고기가 정말 맛있었다며 웃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여행은 평범한 장소도 특별한 공간으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딸들은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하는 이야기를 종종한다고 한다.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30년 후에는 엄마처럼 여행하고 싶다고,
30년 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여행을 꿈꿔본다. 그 보다 더 성공한 삶이 있을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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