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nda Sep 25. 2017

이방인과 생활자 사이

길거리에 소소함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 보아야겠다. 


어느 날 들춰본 일기장에서 만난 2014년의 기록



2014년 10월 어느 날



1. 쪽지 한통을 받다

영국인 친구 아론(Aaron)으로부터 Facebook 쪽지가 한 통 왔다. 세르비아(Serbia)라는 나라에 사는 자신의 친구가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데, 그 친구가 한국에 왔을 때 서울과 제주도를 여행한다고. 그러니 시간이 괜찮다면 서울에서 하루 만나 친구가 되어 주고, 제주도 가면 어떻게 여행하면 좋을지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모르는 이를 만난다는 게 조금 불편하고 어색할 거 같다는 생각이 순간 들기는 했지만 아론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낯선 이방인이 내게 베풀었던 친절이 생각나 선뜻 그렇게 하리라고 대답했다. 물론 아론 친구라는 사실만으로도 신뢰가 갔고, 그에게 졌던 신세를 갚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도 들었다(사실 그 신세라는 건 그저 작은 것들이다. 해외에서 돈이 많지 않던 내게 맛있는 밥을 선뜻 사준다던가, 내가 영국에 갈 때마다 늘 상 나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비우는 것들. 하지만 그 작은 것들이 모이면 큰 배려로 남게 된다. 또한 그 작은 친절을 낯선 이에게 베푸는 일 역시도 쉽지 않은 일이란 것쯤은 잘 알고 있다). 


2. 그녀와의 조우

10월에 어느 날, 드디어 그녀를 만났다. Facebook으로만 얼굴을 확인하고 짧은 대화를 나눴던 아론의 친구, 그녀의 이름은 Marijana 였다. 어디서 만나는 게 좋을까 생각하던 중 종각역이 떠올랐다. 종각 역에서 만나 인사동을 거쳐 삼청동으로 걷는 길이면 관광객에게 딱이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한국에 온 이유는 자신의 친구가 한국인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결혼식 참석하기 위해서 방문했다고 한다. 또한 그 겸해서 2주 정도 서울과 제주도를 여행할 참이란다. 우선, 세르비아라는 나라에서 온 그녀가 신기했고, 둘째로 세르비아라는 나라에 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하는 스토리가 놀라웠으며, 세 번째로 혼자서 처음 한국에 온 그녀가 제주도를 여행한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세르비아는 남동부 유럽의 발칸반도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 근접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게 되었고, 그녀의 친구는 세르비아에서 장기로 여행하던 한국 남자를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졌고, 그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기에 헤어질 수가 없어 그 남자를 따라왔으며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또한 그녀는 여행을 매우 좋아하고 세르비아에서 카우치 서핑(couching surfing)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아, 그녀는 여행을 그리고 여행자들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혼자서, 처음 가보는, 생소한 어느 나라의 작은 섬을, 그것도 무려 게스트 하우스를 이용한 숙박이 불편한 여행은 아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삼청동에 도착했다. 북적북적, 인사동을 건너 삼청동으로 오는 그 길목은 외국인 관광 객반, 나들이 나온 사람들 반으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어쩐지 너무 많은 사람들에 치이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뭔가 길을 안내해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나는 주변도 살피지 않은 채 목적지만을 향해 걸어왔다. 우선 카페를 얼른 들어가서 좀 앉아서 쉬며 더 많은 얘기를 해야겠다 생각을 하던 중 그녀가 한 카페에 들어가 보고 싶다며 카페를 가리켰다.


매우 오래되어 보이는 카페 하나
그녀는 커피숍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삼청동 거리가 아름답다고 했다. 카페가 아기자기해서 너무 예쁘고 커피는 매우 맛있다 연신 칭찬을 해댔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며 한국문화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중국 시골 마을에 가서 영어를 가르쳐 보고 싶다는 그녀의 꿈 등에 관한 것) 그리고 그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그녀의 친구 중에 한 명은 혼자서 세계 여행 중이며, 이를 blog에 기록하고 있고, 때론 인터넷으로 통해 여행 동지를 만나 길바닥에서 노숙을 하기도 한다며..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다는 스토리)에 대한 수다를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카페를 나와 삼청동 주변을 둘러봤다. 길거리 분식집에 펼쳐져 있는 순대며 떡볶이며 튀김을 보고 신기하다고 맛을 꼭 보고 싶다기에 들어가 조금씩 시켜 먹었다. 그녀는 호떡집에서 호떡을 굽는 아저씨에 모습을 사진을 찍었고, 유난히 오래되어 보이고 평범해 보이는 커피숍이 나 식당 들을 콕 집어 특별해 보인다고 했다.

 

철저히 가이드 마인드로 진부한 한국문화 예절이라던가, 삼청동이 갑자기 인기가 있게 된 이유 등을 영혼 없이 늘어뜨리다 순간, ‘아, 그녀는 이곳이 이방에 어떤 곳이구나’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녀가 여행자인걸 알고는 있었지만 내게 익숙한 풍경들 때문에 내가 외국의 어떤 새로운 곳에서 느꼈던 그 철저한 이방인이라는 감정을 헤아리지 못했었다.


3. 이방인과 생활자 간의 다른 시선을 느끼다.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삶에 지칠 때, 사람에 지칠 때,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여행을 떠올리곤 한다. 

이방인과 생활자의 눈은 다르다. 모든 것이 일상인 생활자에 눈에 거리는 그저 내가 늘 걷는 거리 그 자체이지 큰 의미가 없고 많은 사람들에게 치이는 일이 때론 짜증 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방인에게는 의미 없는 그 무언가는 없다. 높게 치솓아 있는 빌딩들도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집 앞 공원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심지어 거리에 수선스러운 사람들과의 치임도 새롭고 흥미롭다. 나도 여행 자였었기에, 그리고 그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했던 그런 여행자였기에 그 색다름을, 그 평범함의 아름다움을 잘 안다.

그저 길을 잘 안내하고 정보를 줘야겠다는 생각에 빠져 이방인의 눈으로 길을 안내하지 못함이, 관찰자의 눈으로 함께 그 길을 걷지 못함이 내심 미안해졌다. 생활자에게는 일상의 소소함을 잘 보기가 이리도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 생활자에서 벗어나, 이방인의 설렘이 우리를 여행으로 이끄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둘.


4. 오늘 그녀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평생 여행만 떠나며 살 수 없는 법인데, 일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연습 먼저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고층빌딩들, 버스, 택시, 거리에 노점상들, 길거리에 음식들..

아무것도 아닌 이 작은 것들이 갑자기 특별해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이 별거 있을까... 이방인의 눈으로 매일매일을 사는 연습. 아니 매일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내가 매일 보던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려놓는 연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