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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Nov 05. 2017

마음

가을 하늘이 예쁜 건 별탈 없는 내 마음의 여유에서 오는 건 아닐까


< 2017년 9월 가을 어느 날>

오랜만에 예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기로 했다. 나까지 해서 모두 셋. 딱 한 살 터울씩이다. C양이 제일 언니이고, 나는 그녀보다 한 살이 어리며, K양이 제일 막내로 나보다 한 살 동생이다. 이렇게 우리 셋은 남자들 많고 야근도 참 많았던 치열한 프로젝트 현장에서 여자 사람이고 비슷한 또래라는 이유만으로도 친해질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었고 서로를 끈끈하게 결속시키게 해 주었다.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있어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내는 ~대리님, ~ 씨 하는 사이에서 언니, 동생 하며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오랜만에 그녀들과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9월, 하늘이 유난히 푸르르고 맑았다. 여자 셋이서 보는 모임이라 어디를 가면 좋을까 생각하다 석촌호수에서 보는 걸 제안했다. 장소를 제안했으니 그날 일정은 내가 짜 보기로 했다. 마침 석촌 호수 근처에 갔던 이탈리안 식당 같은 찜닭집이며 자주 가는 카페를 같이 가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던 참이었다.  


집 밖을 나왔는데 더위가 조금 남아 있었지만 답답한 없이 날씨가 참 청량하니 좋았다. 하늘을 보니 저절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게 되었다.


오후 1:00. 그녀들을 만났다. 여전한 모습이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간의 있었던 일들을 풀어내며 한시도 쉼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아무리 봐도 하늘이 너무 예뻐 대화 도중 말을 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한동안은 미세먼지 탓에, 또 한동안은 폭염 탓에 그런 하늘을 마주 하기가 힘들었었기에 요즘 가을 하늘을 볼 때마다 이리도 감사한 마음 드는지 모르겠다.


"하늘 좀 봐 바바. 너무 예쁘지 않아요?... 저 구름 좀 봐. 정말 특이하게 생겼다." 


근데 어쩐지 친구들 눈에는 별 감흥이 없는 듯했다. 혼자 그렇게 호들갑을 떨다 뻘쭘해져 다시 수다 삼매경에 끼어들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회사 이야기, 시댁 이야기, 연애 이야기, 연예인 이야기, 주변에 일어나는 사람들 이야기 등에 대해서 끊임없는 수다가 이어졌다.


<친구 K양>

결혼한 지 1년이 되어 간다. 남편도 착하고 잘해 주지만 시댁에 문제가 많단다. 시누이, 즉 남편의 여동생은 결혼 업체를 통해 남자를 만나 3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남편의 직업은 회계사이고 결혼식은 하와이에서 치렀단다. 누가 봐도 완벽한 커플인 느낌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결혼 전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남편은 잘해주다가 한 번씩 와이프를 때리기도 했고 심지어 방에 감금을 하기도 했단다. 정말 막장 드라마나 사랑과 전쟁에나 나올뻔한 스토리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결혼 6개월 만에 이혼소송에 들어갔고 지금은 길고 긴 싸움이 시작 되었다고. 자식들  모두 결혼시켜 이제 모든 숙제는 끝났다 하고 시부모님들은 서울 집을 팔고 섬으로 내려가 살고 계시다 딸의 소식에 한걸음 다시 서울로 오셨단다. 머물 집이 없어 결국 K양 집에서 머물고 있다고 한다. 시누이 또한 그녀의 신혼집에 머물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중이란다. 전쟁 같은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오면 다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단다. 하루도 마음 놓고 있을 틈이 없다고 한다. 주말이면 시누이와 함께 변호사를 만나고 다니느라 본의 아니게 매우 바빴다는 그녀. 모든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으로 인해 '아.. 내가 결혼은 왜 했나. 이게 신혼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친구 C양>

그녀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고 있다. 원래 유아교육과를 나왔다가 사무직으로 들어가 일을 했는데 2년 전 몸이 너무 약해져 일을 그만 두었다. 영어도 꽤 하던 그녀였기에 전공을 살려 영어유치원에 잠시 취직을 했는데 그 또한 쉽지 않았고 몸 상태가 또 안 좋아져 다시 일을 그만둔 상태라고 한다.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잘 안 잡힌다고... 심각한 건 아니지만 예민한 성격 탓에 공황 장애가 잠시 왔었고 요즘도 약을 복용하고 있단다. 사춘기 마냥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며 요즘 이것저것 시도해 보고 있지만 참 모든 게 쉽지 않다는 그녀.. 지난번 봤을 때보다는 약간 살이 빠져 있는 느낌이었다.


하늘을 보며 예쁘다고 감탄하고 카페 들어가 호들갑 떨며 인증샷을 남기는 일도 어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 인지도 모르겠다. 여유가 없는 마음에서 청명한 하늘은 오히려 나를 더 슬프게 만들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도 가끔은 한없이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마음이 더 슬플 날도 있기 때문이다.


<2016. 2월... 뉴욕 여행, 휘트니 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뉴욕의 브루클린 브릿지가 그려진 작품을 보고 있다. 언뜻 보기엔 그저 뉴욕의 명소를 그린 평범한 그림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미술관 한 편에 그룹 지어 사람들이 열심히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도 슬쩍 그 틈에 껴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이 그림이 유명해진 이유를 알려준다. 바로 그림의 상/하단과 중앙부에 나타나는 대조 때문이란다. 그림의 기법이 중간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안 화법이고 상/하단은 미래주의[Futurism]로 대비를 이룬다. 물론 그림 화법 자체의 특이함도 있지만 다른 상반성도 눈에 띈다. 상단과 하단에는 번쩍번쩍 뉴욕 도시의 화려함이 보인다. 그러나 이 그림을 자세히 보다 보면 그림의 중앙에는 왠지 모르게 도시의 어둠과 쓸함이 묻어 있다.

<Joseph Stella(1877-1946, The Brooklyn Bridge: Variation on and Old Theme>

아마 작가는 우리 모두 같은 광경, 같은 물건을 보더라도 내가 가진 마음 가짐에 따라서 다르게 느끼고 인식하는 것을 그림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뉴욕 도시의 네온사인이 누군가에게는 활기참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삶의 퍽퍽함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같은 하늘도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아마 내 마음에 있을 수 있겠다. 모든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것들은 그걸 바라보는 마음 상태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예쁘다고 자꾸 쳐다보게 되는 것도 아마 요즘 별 탈 없이 지내는 내 마음의 편안함에서 오는 건 아닐까.


한 없이 아름다운 노을이 누군가에게는 슬퍼 보이는 것 처럼 말이다.

"나는 노을 지는 게 너무 싫은 거 있지? 싫어, 노을 지면 너무 슬퍼. 꼭 울어야 될 거 같아. 난 노을 질 때 굉장히 슬퍼, 아무튼. 혼자 있을 때는 운 적도 많아. 노을 지는 거 보면서. 그만, 그만 울어 버렸네. 아니 너무, 너무 아름다워서 슬프다고. 이제 꼴깍 넘어가지? 저러다가. 내가 나이가 들어서 석양이 싫은 건가?"

- 윤식당 중, 윤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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