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어버이날이 될 때마다 나는 카네이션을 받기만 했지 한 번도 남에게 주어 보지를 못했다.
심지어 나의 부모님에게도,,,,,,,
철들자마자 일찍 부모님 곁을 즉 고향을 멀리 떠났기 때문이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부모님 뵈오려 먼 길을 내려가기가 힘들다는 핑계로 안부 전화를
넣거나 간단한 선물로 보내는 것으로 어영부영 어버이날을 흘려보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은 오래전 먼 길을 모두 떠나버리시고,,,,,
이제 세상사를 버리고 뒤돌아 앉은 지 십여 년 매년 자녀들의 인사를 받기만 했다.
금년에 딸네 식구들이 보내준 색다른 꽃바구니를 받고 보니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잘못했던 지난날 들의 일들이 되살아나 가슴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왜 오늘, 하필이면 함께 빠져 죽자고 한 밤중에 나를 큰 강(낙동강)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시던 엄마 얼굴이 자꾸만 떠오를까?
사연 인즉은 이렇다.
소싯적 우리 집은 교회와 한 울타리 안에 있었다.
아버님은 당시 7-80명 모이는 작은 시골 교회 재정 일을 담당하고 계셨다.
주일날 교회에 들어온 헌금을 모두 집으로 가져오셔서 안방에 소형 금고 대용으로
쓰시던 M-1 탄피 통어 회계 장부와 함께 넣어 두셨다.
교회 용이나 목사님 용으로 필요할 때마다 얼마씩 꺼내서 사용하시는 일을 나는
눈여겨 지켜보았다.
우리 마을은 50여 호 되었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교인들이 대부분이라 채산이 맞지
않아서인지 마을에는 가게가 없었다.
필수품이나 군것질을 하려면 오리 정도 떨어져 있는 장터 마을로 가야만 했다.
초등학교 2, 3학년 때쯤 어느 봄날, 자제하지 못한 나는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탄피 통 속에 있던 교회 헌금을 어른들 눈을 피해 모래 훔쳐낸 것이다.
남은 눈을 피해 약간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가게가 있는 장터 마을로 달려 내려갔다.
훔친 돈을 지불하고 내 손에 받아 든 건 진해 콩, 콩 과자 한 봉지였다.
누룽지를 땅콩만 하게 만들어 튀긴 후 표면에 설탕물을 바른 촌스러운 옛 먹거리이다.
그냥 다 먹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린 마음에 아껴 먹는답시고 반만 먹고 반을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들어갔다.
잘 시간이 되어 이불을 뒤집어써고 몰래 입속에 녹여가면서 먹고 있는데 누나가
"너 뭐 먹어"
하면서 갑자기 이불을 겉어 재쳤다.
8년 차나 차이가 나는 누나의 거친 심문에 모든 실상을 다 틀어 놓고 말았다.
금방 엄마에게 자초지종이 전달되었고 출처가 교회 헌금이라는 사실을 아신
어머니는 동생을 등에 업은 채로 겁에 질린 나를 500m 남직 떨어진 큰 강인 낙동강
강가로 끌다시피 나를 데리고 나갔다.
설마 하였는데 옷을 입은 채로 나를 끌고서는 그냥 강물로 들어가시는 것이었다.
하나님 물건을 도둑질하는 너하고는 같이 살 수 없다고 하시면서,,,,,,
물길이 허리를 넘어서자 겁에 잔뜩 질린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요"
"엄마, 살려 주세요"
엄마 등에 업힌 동생도 놀라서 큰 울음을 울어 재키고,,,,
엄마도 우시고 인가와 멀리 떨어진 캄캄한 강가는 한동안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나쁜 버릇을 고치게 하려는 어머니의 기막힌 드라마였다.
'천국에 계신 어머니'
'저 그 이후로 어머니와 약속 지켰어요'
어버이날이 되니 어머니 살아생전에 어머니 가슴에 꽃 한 송이 제대로 달아주지
못한 일이 자꾸만 저 가슴을 아프게 하며 당신 얼굴이 떠오릅니다.
' 미안하고 죄송스럽고 후회스럽습니다.'
'엄마, 남은 날들도 어머니와 그날 밤 강물에서 한 약속 지키면서 살게요.'
2015년 5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