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백과 순백
누가 뭐래도 지금 나의 처지는 화려한 백수, 줄여서 '화백'이다.
또 다른 별칭은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지공파'이다.
그러면 화백의 반대는 뭘까?
'순백?' 글쎄.....
은퇴 후 매달 일정한 수입이 없이 그동안 비축한 재산으로 살아가거나
아니면 남의 신세를 지고 살아가는 우리 같은 세대를 '화백'이라고 한다.
인생을 사계에 비교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구분하기도 한다.
노년기 즉 추억만 먹고사는 겨울 세대를 살고 있는 '화백'과는 달리 부모에
의존해 배우고 성장을 한 후에도 독립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해 여름을
살아가고 있는 순수한 백수가 많이 눈에 띈다.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순백'이라고 부르면 어떨까?.
가뭄과 더위에 지쳐 있는 요즈음 추어탕이 준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다.
추어탕을 직접 요리하여 먹을 때나 때론 추어탕 집 앞을 지나치려면 '순백'
이전 시절 최초로 거금을 손에 지게 한 추어 즉 미꾸라지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러니 나는 순백 이전 시절에도 거금을 손에 쥐는 사업(?)을
배우면서 자랐다.
열 살, 초등학교 4학년 여름에 있었던 일로 기억한다.
뒷집에 나와 동갑내기 윤수가 산골 마을에서 살다 평야 지대인 우리
마을로 이사를 왔다.
나이는 동갑이었지만 학교는 두 학년이나 아래였다.
윤수네는 형도 누나도 동생도 여럿 있는 대 가족이었다.
형편이 어려웠던지 윤수는 학교만 갔다 오면 거의 매일 형과 함께 싸릿대로
만든 삼각형 미꾸리 뜰채를 들고 배수로에 들어가서 미꾸라지를 잡았다.
나는 농수로나 배수로에서 소를 먹이다가 윤수와 자주 만나게 되었고
미꾸라지 잡는 방법을 곁에서 유심히 바라보면서 마음속으로 요령을
익혀 두었다.
우리 집에는 미꾸라지를 잡는 전용 뜰채가 없었다.
그렇다고 어린 나이인 내가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도 없었다.
궁리 끝에 대안으로 생각해 낸 건 뒷 광에 걸려있는 떡 쌀용 대로 만든
커다란 소쿠리였다.
어느 날부터 인가 엄마 몰래 이 소쿠리를 꺼내 들고 나도 윤수처럼 미꾸라지
사냥에 나서기 시작했다.
수초 뒤에다 가만히 대 소쿠리를 세워 놓고 약 1m 전방에서 힘차게 도랑 바닥을
발로 밟으면서 소쿠리 쪽으로 진탕 물을 몰아간다.
그러고 나서 소쿠리를 들어 흔들면 진탕 물이 빠져나가고 바구니 속에 들어간
미꾸라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르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해 떨어질 때까지 이 고된 작업이 계속된다.
양동이 속에는 미꾸라지가 점점 차오르고,,,,,,,
다른 집에는 이렇게 잡은 미꾸라지를 모아 두었다가 일정량이 되면 추어탕을
해 먹거나 정기적으로 수거하러 오는 사람에게 무게를 달아 팔았다.
그렇지만 우리 집은 조금 달랐다.
어머니께서 미꾸라지 잡이 자체도 못하게 하셨지만 만약 떡 쌀 소쿠리로 이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결과가 내게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집 뒤꼍에 있는 장독대 중 빈 오지항아리에 몰래 감춰 두었다.
살아있는 미꾸라지는 오지항아리에 담아 두어야 오래 살고 더 오래 살리기 위해서
풋고추 몇 개를 함께 넣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른 들 몰래 잡은 미꾸라지를 모우는 일이 얼마나 되었을까?
하루는 윤수네 집에 자전거로 미꾸라지를 수거해 가는 사람이 왔다.
윤수네가 잡은 미꾸라지 계량이 끝났을 때쯤,
"우리 집에도 미꾸라지가 있는데요"
왠지 창피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붙었다.
"그래, 얼른 가지고 와봐"
"부잣집 아들도 미꾸라지를 잡아서 파나? "
별꼴이란 듯 수군대는 소리를 뒷 전에 들으면서 나는 얼른 집으로 달려갔다.
그날 받은 돈은 그 당시 배신(운동화) 두 켤레 정도 살 수 있는 큰돈이었다.
지금 가치로 따져보면 약 5만 원 정도 될까?......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니 내 생애 내가 처음으로 땀 흘러 번 정말 값어치 있고 귀중한 돈이었다.
이후에도 몇 번 더 하기는 하였지만 재미가 시들해지면서 자연스레 접어 버렸다..
어린 백수 '순백' 이전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돈맛을 일찍 알고 자랐는데,,.
그렇다면 지금쯤은 재벌 소리를 듣고 살아가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너무 일찍 돈맛을 알아서 돈 버는 일에 일찌감치 싫증을 느껴버렸나?
아무튼 낭비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화백' 신세가 제일 행복하다.
오로지 가족들과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다.
2015년 6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