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船(1)
여행은 일상사를 벗어난 일탈이라 때론 脫線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인이나 단체 外遊 중에 脫線을 하는 유별난 버릇이 내게 있다.
이 중에는 脫線만이 아니라 아예 脫船을 한 경우도 있다.
아른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슬아슬했던 脫船의 경험 두 가지를 더듬어 보자.
(1)
88 하계 올림픽을 무사히 치른 후 국가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국민들의 자긍심도
많이 올라갔다.
함께 경제적 여유도 생기면서 레저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다.
이를 간파했던지 89년 초 정부의 관련 부처는 선진국 레저산업시찰단을 모집하여
국내 관련 업체 CEO나 임원들에게 견문을 넓혀주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맡고 있던 직책이 당시 레저 스포츠부 부장이라 2차 일본 산업시찰단에 운 좋게
합류할 수 있었다.
나리타 공항에서 시작된 일본의 주요 관련 레저산업 시찰은 꼬박 일주일이 걸렸고
일본의 관동지방 주요 레저 시설을 돌아본 후 다시 동경으로 돌아왔다.
남은 일정은 동경 디즈니랜드와 동경 타워 방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은 귀국행.
다음 날 방문 예정지는 이미 가 본 곳이라 기대가 사라져 버리자 갑자기 일탈의
객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일본에 출장 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현해탄을 배를 타고 한 번 건너
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었다.
"기회는 올 때 잡아라! "
" 지금이 기회다."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지만 호텔 전화 교환원을 통해 현해탄을 건널 배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부산 - 시모노세키 노선은 매일,
부산 - 오사카 항로는 격일제로 운행되고 있었다.
짧은 일본어로 어렵사리 얻은 정보는 다음 날 오후 1시에 오사카 항에서 출항하는
부산행 배가 있다는 것이었다.
함께 방을 사용했던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음 날 이른 새벽 짐을 챙겨 무작정
동경 역으로 나갔다.
신칸센 히카리 열차를 타고 오사카 동부 역에 오전 열 시경 내린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물어 물어 택시를 타고 부산행 배가 출항하는 오사카 항으로 찾아갔다.
임시 항로였는지 정식 여객터미널 내에 있지 않고 멀리 떨어진 화물선 부두 내에
부산행 터미널이 위치하고 있었다.
많은 시간과 택시비를 낭비하고 찾아갔지만 그날 여객터미널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아! 불사, 오늘은 배편이 없단다.
전날 밤 12시 전후로 통화를 했기 때문에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것이었다.
그날 부산행은 시모노세키에서 5시 30분에 출항하는 배편뿐이었다.
정오가 지나고 있었으므로 시모노세키까지 가려면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시간과 많은 돈을 낭비한 후라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택시를 타고 다시 오사카 역으로 돌아갔다.
열차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최소한 오후 5시까지는 시모노세키 역에 도착
해야만 하는데 이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열차는 없었다.
대신 시모노세키 역에는 정차하지 않고 통과한 후 간몬 해협을 건너 규슈에 위치한
고쿠라(小倉)까지 가는 히카리(급행)가 있었다.
고쿠라 역 도착은 4시 50분, 고쿠라 역에서 시모노세키항까지는 택시로 약 40분
걸린다니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서둘러 가진 현금을 털어 열차표를 샀다.
지금은 쓴웃음과 함께 짜릿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당시 느꼈던 조마조마 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열차는 예정 시각에 정확히 고쿠라 역에 도착하였다.
거리가 제법 있는 승강장을 뛰다시피 빠져나와 역전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바로 올라탔다. 뒷머리가 하얀 기사한테 서툰 일본어로 전후 사정을 이야기한 후
시간 내에 시모노세키항까지 도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소 데이(急)를 반복해서 말했다.
택시 기사가 상황을 파악했던지 왈
'손님 오늘 당신은 행운아요'
'왜요'
'오늘은 휴일(5/1일 노동절)이라 평소보다 10분 이상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여객 터미널에 들어가니 티켓 판매 마감을 위해 창구를 정리하고 있었다.
서둘러서 여권과 함께 현금 대신 가지고 있던 엔화 여행자 수표를 내놓으니
여행자 수표는 받지 않는다고 했다.
신용 카드를 주니까 이것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음은 달러, 이놈도 무용지물이다.
도대체 국제 여객선 터미널에서 이게 무슨 경우냐고 항의를 해 봤지만 허공에
대고 소리 지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생글생글 웃으면서 고개만 내 졌던 카운터 여 직원은 창구를 닫으려고
일어서고 있었다.
오사카를 거쳐오면서 택시비 등을 현금으로 지불했기 때문에 엔화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窮側通'
해외여행 중 비상시 또는 라이프 머니로 사용하기 위해 지갑 속에 깊숙이
넣어둔 비상금이 생각났다.
뒤져보니 오래전에 넣어둔 50불과 만 엔이 들어 있었다.
거짓말같이 몇 백 엔 차이로 표를 구매할 수가 있었다.
표를 구한 다음 서둘러 출국 수속을 마친 후 뛰어가니 내려졌던 브리지가 다시
올라가고 있었다.
늦게 승선하는 나를 위해 내렸던 브리지를 다시 올리는 중이었다.
브리지를 건너 배에 승선을 하니 제복 입은 승무원이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내 보인다.
"붕"
'출항이다.'
지난날 아버지가 돈 벌어서 잘 살아 보겠다며 두 번이나 건넜다던 관부 연락선 이 길을,
칠흑 같은 밤바다에 연인과 함께 몸을 날린 윤 심덕의 혼이 서려있는 이 길을,
나는 드디어 이 밤에 그 길을 따라서 건너간다.
돌아와 정산을 해보니 당시 한 달 급여의 거의 절반 이상이 이 脫船으로 날아가 버렸다.
정말 정신 나간 짓을 했네....
"광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돈도 명예도 ,,,,뿌리쳐라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윤 심덕 할미 때문에 남이 잘하지 못하는 脫線을 겁 없이 따라 하면서
나는 누구보다 먼저 현해탄 이 길을 남몰래 건너보았다.
2015,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