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뒷골목
탈선(2)
이번엔 자동차로 저질은 무모한 탈선 이야기다.
92년도 동구권 국가들과 정식 수교가 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회사의 출장 여정이 파리, 프랑크푸르트, 밀라노 순으로 잡혀있었다.
파리 일정을 마치고 계획된 스케줄대로 프랑크푸르트에 들어갔다.
독일 지사의 도움으로 3일간 예정했던 프랑크푸르트 일정이 이틀 만에 끝나 버렸다.
둘째 날 지사원들과 저녁을 한 후 호텔로 돌아가 바로 잠들기가 뭐 해서 일층에 있는
스포츠 라운지 바로 내려갔다. 생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내일 뭘 할까 하고 심각하게
궁리를 하고 있는데 곁에 앉아 있던 간간이 눈길을 주던 또래 정도의 멋쟁이 중년 신사가
말을 걸어왔다.
'아노, 니혼진 데스까?'
'나니' '간꼬구 진 데스'
고개를 돌려 자세히 쳐다보니 일본 사람은 분명히 아니었다.
말문이 트인 후 신상을 들어보니 자기는 체코에서 왔으며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공부를
였고 체코슬로바키아 외교관으로 일본 동경에 있는 체코 대사관에서 3년간 근무를 하였다고 했다.
사회주의 정부가 붕괴될 때 외교관직을 그만두었으며 지금은 일본 및 대만의 전자 제품을
수입하여 체코 시장에 파는 비지네스 맨이라고 자기소개를 거창하게 하였다.
상대방이 비지네스 맨인 줄 알고서는 자꾸만 비지네스 얘기를 하려고 하기에 화제를 돌려
보려고 체코에 대한 관심사를 나타 내 보이기 시작했다.
프라하의 봄, 프라하는 동구의 작은 파리, 조국을 버린 드보르자크, 끝까지 나라를 지킨
스메타나 등 체코에 대해 알고 있던 토막 지식을 잇는 대로 펼쳐 내 보였다.
이 친구도 자신이 일본에서 근무할 때 한국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고 주 말에 잠깐 짬을 내어
서울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많은 부분을 궁금해하며 여러 가지를 물어왔다.
한마디로 두 사람의 코드가 상당히 비슷한 것 같았으며 일치하는 부분도 괘나 많은 것 같았다.
이 순간 또다시 나의 역마살 끼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프라하를 한 번 가보고 싶은데, '라고 말문을 흐리면서 내놓았더니
'미스터 Kim! 당신이 원하다면 내일 당장 갈 수 있어'
자기는 자기 차로 여기 왔는데 내일 프라하로 돌아가는데 같이 가자고 즉석 제안을 하였다.
'비자도 없는데,,,,,'
독일과 체코 국경 Check Point(검문소)에 가면 옛 친구들이 많이 근무하기 때문에 70 USD만
내면 바로 임시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Really?'
이렇게 이어진 대화는 다음날 새벽 5시에 주차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까지 한 후에 겨우
헤어질 수 있었다.
방에 올라와 다시 생각해 보니 네가 너무 성급한 판단을 한 것 같았다.
당시 체코는 민주화 직후로 사회 전체가 전반적으로 불안하였으며 나의 출장 일정마저도
너무나 타이트하였다.
하루는 비울 수 있지만 3일째 되는 날은 밀라노에 반드시 들어가야만 했다.
그렇지만 사나이끼리 한 약속이라 새벽에 호텔 Check out을 하고 주차장에 내려가니 이 친구는
자동차 뒷 트렁크를 열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 고물차를 타고 8시간이나 가야 된단 말인가?'
내심으론 외교관 출신에다 비지네스 맨으로 벤츠나 BMW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중형 차는 몰고
온 줄 알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차는 60년도 우리나라에서 택시로 이용했던 '브리사'와 꼭 같았다.
금방 문짝이 떨어질 것 같은 완전 딸딸이였다.
그렇지만 'GO ahead!'
새벽 공기를 가르고 딸딸이는 시내를 벗어나 금방 아우토반에 올라섰다.
그러나 아무리 밟아도 이 녀석은 100km를 넘어서질 못 했다.
차에 대한 불안과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대가 아침 햇살 속에 묘하게 교차하기 시작했다.
길을 잘못 들어 1시간을 지체한 후 뉘른베르크를 그쳐 정오 경 체코 국경 검문소에 도착했다.
70불을 내어 놓으니 한 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여권에 기분 좋게 도장을 '꽝' 찍어주었다.
국경을 넘어서자 완전히 상태가 바뀌어 버린 도로 위를 조심스레 달려 오후 3시가 지나서야
겨우 프라하 시내에 들어설 수가 있었다.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것이다.
늦은 것은 고사하고 프라하까지 무사히 온 자체만으로도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먼저 항공사에 들러 다음 날 밀라노행 비행기를 알아보니 오전 10시 편뿐이었다.
호텔에 짐을 푼 시간은 오후 4시, 아침 7시에 공항으로 나가야 한다니 프라하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정확히 16시간뿐이었다.
하루 만에 절친이 되어버린 Mr. "카우프*"가 먼저 제안을 해왔다.
오늘은 자기 나라에 왔으니 자기가 호스트가 되어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하였다.
'Okay, accept!'
그럼 자정 이후에는 내가 손님으로써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으니 안내만 하라고 하였다.
신사협정을 맺은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스메타나가 생전에 작곡을 한 방에 들어가 음악도
들어보고 화랑이 즐비한 골목에 들어가 몇 백 불 거금을 내고 제법 이름 있다는 작가의 그림도
두어 점 구매하고 재래시장과 이름 있는 구시가지는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였다.
당시 프라하 뒷골목에는 개방이 되기 전이라 관광객은 거의 없었고 중세 모자이크 돌 포장길 위로
마차가 다니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야 그 유명한 케를 다리를 건너 프라하 성 밑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여기에는 조그마하지마는 백 년 이상 된 카페나 레스토랑이 여러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구라파에서 온 젊은 관광객을 위해 이곳에는 밤늦게(2시)까지 문을 여는 레스토랑이 괘나
많이 있었다.
우리는 오래된 벽에 드보르자크의 친필 사인이 그려져 있는 레스토랑, 운 좋게 전망이 제일 좋은
테이블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사실 더 이상 움직일 힘도 없었다.
여기서 '프라하의 아침'을 풀코스로 주문하고 동시에 와인잔은 꺾기 시작했다.
취기에 기분이 올라가자 중 중고등학교 시절에 자주 불렀던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중 그리운
고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꿈속에 그러라 그리운 고향,,,,,,,,"을 우리말로 가볍게 불렀더니 내가 무척이나 음악에 대해
유식한 줄 알고 이 친구가 기겁을 하며 앙코르를 외쳤다.
'친구야" "오늘 밤은 무식이 유식을 이기는 거야"
2차, 3차를 거쳐 4시를 훨씬 넘긴 시각에 겨우 호텔에 돌아올 수 있었다.
잠깐 눈을 붙이는 둥 마는 둥 비몽사몽간에 다시 짐을 챙겨 10시 발 밀라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프라하 공항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 나갔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비행기에 탑승한 후 비행기가 이륙하는 줄도 모르고 깊은 잠에 떨어져 버렸다.
'쿵' 하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비행기는 벌써 밀라노 공항 램프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나는 수교 전, 개방 전 프라하를 남보다 한 발 먼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눈
속에 개방 전 프라하의 모습을 소중히 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프라하에서 구입한 그림 한 폭을 안방 침대 위에 걸어 놓고 자주 올려다본다.
짜릿했던 그때의 순간들을 회상하며 지나간 추억들을 더듬어보는 것이 요즈음 나의 또 다른 큰
즐거움이다.
p.s 이 년 후 이 친구가 서울에 왔을 때 프라하에서 받은 후의를 단단히 갚아 주었다.
그리고 약 13년 후 아내와 후배 부부와 같이 이곳을 다시 방문하여 옛 추억을 다시
더듬어 보았다.
2015년 7월 22일 무더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