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by 김 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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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처음으로 미국에 발을 디딘 날은 1981년 어느 초가을 날이었다.

현지에 도착한 그날이 조카 새롬이가 태어난 날이라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조카의 출산 소식을 듣자마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첫 기착지인 L.A에서 서둘러 회사일을 마무리 지었다.

당초 일정은 L.A에서 직항으로 New York으로 바로 가게 되어있었다.

주말을 이용하여 테네시 주에 있는 Knosibile 경유로 비행 일정을 변경하였다.

새로 태어난 조카를 축하하려 간다고 핑계를 내 세우긴 했지만 사실은 나의 역마살 끼가

발동한 것이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 본사에서 해외 출장자의 일정과 동향을 시간 단위로도 실시간

파악이 가능하다. 당시 본사와의 교신은 전화와 TLX가 유일한 통신 수단이었다.

그리고 보면 통신이 불편했던 우리 같은 '국제시장' 세대가 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잔뜩 기대와 긴장을 하고 도착한 미국은 L.A 공항을 나서자마자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옛날 환송 View Deck이 옥상에 있었던 김포공항보다는 규모가 크고 복잡은

했지만 딱히 눈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주차장이 들어선 중앙 광장은 야자수 몇 그루에 헌 신문지만 날아다니고

초점을 잃은 할 일없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그늘 밑에서 놀거나 졸고 있었다.

미국에 대한 첫인상은 이렇게 서부에서 실망으로 시작되었다.


실망으로 시작한 미국은 도둑질한 시간으로 찾아간 동부에서 감탄과 부러움으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Atlanta를 경유하여 Knosivile 공항에 내리니 손아래 동서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며칠 전 태어난 첫아기 새롬이를 병원에서 방금 퇴원시켜놓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내가 이곳을 방문한 첫 가족이라며 반가워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동서에게는

덜 미안했지만 갓난아기와 몸조리 중인 처제에게는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공항을 빠져나가 집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거리가 있었다.

나뭇잎 끝에 살짝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계절이라 날씨도 좋았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가을 하늘과 우거진 푸른 숲 그 속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그림 같은 하얀 집들, 미시시피 지류를 따라 눈앞에 펼쳐지는 이곳의 풍경은 벌려진

나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

초등학교 시절 미국에서 보내준 구호품 속에 들어있었던 크리스마스 카드 속에

그려져 있던 집들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형님, 뭘 그렇게 열심히 보세요?"

"응,,, 카드"

"네? 카드라니요? Las Vegas 다녀오셨어요?"

나는 강물 속에 거꾸로 비추어진 카드 속 집 안으로 몰래 들어갔다가 그만 들켜

버리고 말았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뒤진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습관적으로 우리와 상대 비교를

많이 하게 된다. 반대로 우리보다 부유한 나라나 문화유산이 풍부한 선진국을

여행할 때는 기가 죽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중진국을 벗어나 바야흐로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이젠 비교가 아니라 느낌이다.

새로운 사물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깨달음이고 배움이다.


오랫동안 충격에 남아있었던 그곳을 이번에 아내와 함께 다시 방문을 하고 돌아왔다.

그것도 한 달이라는 여유를 가지고, 회사 출장 기간을 단 한 시간도 도둑질하지 않고,

백 퍼센트 내 시간만 사용하면서,,,,,,,

9월 18일 출국하여 10월 21일 돌아왔으니 33일간의 긴 여정이었다.

L.A - San Diego - Las Vegas - Raleigh - Atlanta.

서부에서 시작하여 동부로 건너간 먼 여정이었다.

카드 속 집에 실제로 살고 있는 친 형제 친 조카들을 열심히 만나고 돌아왔다.

20가구 넘게 살고 있는데 실제로 방문한 집은 겨우 다섯 집에 불과하다.

이제 미국은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고향보다 더 가까운 이웃이 되어있다.

우리들의 피붙이가 열심히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집 앞마당은 아닐지라도 조금만 힘들어 찾아가면 언제나 들어가서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공설운동장이 되어있다.



2015년 10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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