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파리에서의 좌충우돌을 뒤로하고 취리히를 경유하여 로마로 날아갔다.
8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이라 상세한 여행 관련 정보가 국내에서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더군다나 서둘러 일정을 변경하여 들어온 터라 머릿속에는 이곳 역사나 문화 유적에 대한
고상한 정보는 거의 들어 있질 않았다.
이태리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시 정열과 관능미의 상징인 '소피아 로렌'의 얼굴,
특히 '도적'이란 영화에서 풀어헤쳐진 풍만한 앞가슴에 묻어 있던 진흙 덩어리만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을 뿐이었다.
정오 경 수속을 마치고 입국장에 들어서니 택시, 호텔, 관광 등 각종 호객꾼들의 수다로
뭐가 뭔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모두 다 사기꾼들처럼 느껴지면서 도대체 믿음이 가질 않아 결국은 공항 로비 끝에 자리
잡고 있던 'TOURIST INFORMATION CENTER'를 찾아갔다.
정말 친절하게도 2박 3일 일정에 맞게끔 원하는 위치와 가격대의 호텔, 공항까지의 왕복
교통편, 가장 효율적인 2일간 일정까지 상세하게 안내도 해주고 예약까지도 해 주었다.
이다음부터 자유여행을 할 때마다 이러한 안내 센터를 이용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바티칸 근처에 자리 잡은 호텔에 여장을 푼 후에 첫날 저녁은 로마 밤거리를 걸어서
산책하며 구경하기로 하였다.
돌아갈 길을 익히기 위해 도로의 간판 면을 자세히 읽으면서 걸어 나갔다.
'SENTO UNICO' 란 도로명 밑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똑같은 도로 간판이 나타났다.
"여보, 잘 기억해, 여기가 'SENTO UNICO' 거리야 "
어두워지기 전 우리들은 작은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옛날 건물들이라 규모가 작아 백화점이 구름다리를 통해 길 건너 있는 다른 건물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한참을 돌다 밖으로 나오니 주위는 벌써 깜깜해져 있었다.
방향을 분간하기가 어려웠지만 금방 'SENTO UNICO'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여유 만만하게 삼십 분 이상을 화살표 방향으로 따라 계속 잰걸음으로 내려갔지만
기대하던 호텔은 나오지 않았다.
드디어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급할 땐 택시,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호텔 Leaflet 보여 줬더니 우리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내려와 호텔로부터는 무려 5km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SENTO.... '는 뭐냐?
다음날 안 사실인데 'SENTO UNICO'는 영어로 'ONE WAY'였다.
Smart man + Smart woman = 'Romance'
Dumb man + Dumb woman = 'Accident'라는 공식 중
우리는 불행하게도 후자에 속해 있었다.
택시비 때문에 저녁에 먹기로 한 피자 한판과 Pasta 두 접시가 빗속에 사라져 버렸다.
다음 날은 마침 주일이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바티칸 성당으로 올라갔다.
그 해의 첫 야외 미사가 광장에서 집전되기 때문에 벌써부터 많은 인파가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굳이 미사에 참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인파 뒤를 비집고
힘들게 성당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성단 입구에 있는 그 유명한 미켈란 제로의 '피에타 상'을 한참 감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파가 입구로부터 밀물처럼 밀어닥쳤다
예정된 야외 미사가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인하여 실내 미사로 변경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밀려 들어가다 보니 교황이 집전할 미사단 앞 30m 앞에까지 우리도 모르게
다가서게 되었다.
비록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교황이 직접 집전하는 미사를 그것도 교황의
표정까지 읽어 가면서 한 시간 가량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다.
마지막 성례 예식 때 색동저고리를 입고 세례를 받던 돌이 갓 지난듯한 한국 어린이
지금은 30대 중반은 되었을 것이다.
그 귀한 축복을 받고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궁금하다.
이틀째 날은 일일 투어 버스로 나폴리 봄베이 소렌 토로를 다녀왔다.
실망한 나폴리, 가장 인상 깊게 눈에 남은 것은 골목마다 높은 창가 위 허공에서
펄럭거렸던 빨랫감들뿐, 세계 3대 미항의 명성은 어디 가고 가는 곳마다 쓰레기
더미 천지였다.
지금은 어떨까?
멸망한 봄베이, 대형 목욕탕이 있는 유곽으로 들어가는 대리석 포장길에
깊게 파인 마차 바퀴 자국,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차를 타고 이 골목을
들락거렸을까?
마치 나도 그때 그 마차를 타고 유곽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소렌 토로는 역시나 노랫말처럼 꿈과 희망의 아름다운 명소였다.
시간 여유만 있으면 카프리 섬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다음으로 기약하기로 했다.
단체 TOUR 이였지만 점심은 각자가 해결하게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바다가 잘 내려다보이는 그럴듯한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다.
웨이트는 동양에서 온 우리 부부를 위해 전망 좋은 테이블로 안내를 해
주었다.
모르면 물어봐라, 그것도 솔직하게,,,,,
"우린 이태리 음식 잘 모릅니다"
"한 사람 당 약 30불 정도 하는 코스를 추천해 주세요"
뭐 이런 식이다. 조금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듯했다.
그 당시 30불을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거의 6,70불 정도 될 것이다.
몇 가지 추가 질문을 한 웨이트는 와인도 한 병 추가할 수 있다며 신바람이 난 듯
콧노래를 부르며 사라졌다.
완전히 격식을 갖춘 Sea food course였다.
그때야 비로써 정식 이태리 요리는 프랑스 요리처럼 3 Way가 아니고
5 Way 이란 것을 알았다.
불어오는 지중해 미풍을 맞으며 코 끝으로는 이태리를 와인을 음미하고
입으로는 맛있는 해산물을 한참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배가 볼록 나온
두 중늙은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한 사람은 기타를 메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산타 루치아',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 귀에 익은 노래들을
주옥같이 늘어놓기 시작하였다.
정말 귀 막히게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일본 사람인 줄 알고 일본 말로 노래를 청해보라고 권했다.
몇 곡을 더 시킨 후 테이블 위에 TIP을 올려놓았다.
객기는 피우면 안 되는데,,,,,
한국 사람의 자존심을 지킨답시고 또 과용을 하고 말았다.
그날 점심 한 끼로 하루의 예산을 모두 날려 버린 것이었다.
여보? 우리 스위스 가서 이틀만 더 금식하자!"
2016년 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