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체른
그 당시(1983년)에는 비행 Schedule을 짜는 요령이 전혀 없다시피 했다.
편도 구간 요금은 왕복 구간 요금과 거의 비슷하다고만 단순히 알고 있을 뿐이었다.
본의 아니게 2주간 유럽 여행 중 2번이나 스위스를 경유만 했었다.
마지막 여정으로 스위스를 자세히 보기 위해 로마에서 취리히 공항으로
아침 일찍 날아갔다.
여기도 마찬가지 예약된 숙소나 계획한 일정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는 영화 'Sound of Music'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영화에 나오는 '도레미 송' 등 많은 노래를 가끔 '줄리 앤드루스'와 제법 비슷하게 따라
부르곤 했다. 그래서 그동안 여행 중 실수를 만회도 할 겸, 아내의 기분도 조금 맞춰줄 겸
이 영화의 주 무대였던 루체른시를 제일 먼저 방문하기로 작정을 하고 있었다.
취리히 역에서 1시간 정도 기차로 달려 루체른 역에 내리니 또다시 갈 길이 막막했다.
마침 역 대합실에는 모니터에 호텔 외관과 위치 요금 등을 자세히 보여주는 호텔 직통
전화가 여러 대 놓여 있었다.
유명한 'Kapell" 다리 근처 강가에 위치한 'Alpes(?) Hotel'을 바로 예약할 수가 있었다.
아마 4월 초 여행 비수기라 가장 좋은 위치에 있는 호텔을 쉽게 예약할 수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걸어서 루이스 강 위에 목조로 건설해 놓은 감옥 겸용 'Kapell' 다리를 여유 있게 구경하면서
건너니 예약한 호텔이 바로 나타났다.
안내를 받아 5층 객실로 올라가니 제일 먼저 창가에 놓인 파란 사과 두 알이 눈에 들어왔다.
"하루 사과 한 개만 먹으면 평생 의사를 멀리한다"라는
문구를 곁에 놓인 카드에 누군가가 직접 펜으로 정성스레 써 놓았다.
작은 배려에 큰 감동,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눈을 드니
루체른 호수에서 반사되어 창가로 들어오는 따뜻한 오후의 햇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알프스의 에메랄드빛 하늘,
저 멀리 머리에 흰 눈을 쓰고 하늘과 맞닿아 널어서 있는 알프스의 연봉들,
거기다가 침실의 침구는 방금 다름 잘한 것처럼 깔끔하고 눈이 부시도록 희고 깨끗했다.
여행에 지친 아니 俗世에 지쳐있는 육신과 영혼이 충분히 쉴 수 있는 眞世가 바로 여기인 듯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보! 꼭, 우리 신혼여행 다시 온 것 같아,,"
"뭐가?, 똑같은 사람인데,,,,"
욕심을 조금 내어 서둘러서 이웃 동네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는 바그너가 살았던
집을 찾아갔다. 생전에 이곳에 머물며 작곡을 했던 집이라고 해서 마을버스를 이용하여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루체른 역에 내리니 햇빛이 기울어서 인지 제법 으스스 한 추위가 느껴졌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생각이 나서 역사 내에 있는 CAFE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래된 역사라 천장이 높고 넓이가 200평 정도나 되는 규모가 큰 CAFE였다.
처음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실내가 하도 조용해서 손님들이 없는 줄 알았다.
눈이 차츰 어두움에 익숙해진 후 자세히 보니 대부분 좌석에는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나이가 지긋하신 이곳의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었다.
4월 초 겨우내 쌓인 눈이 녹고 날이 풀리자 인근 각처에 사시는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서로의 안부도 묻고 겨우내 쌓인 회포를 풀기 위해 이렇게 나오셔서 담소를 나누고
계신 것이었다.
곁에 있는 사람마저 들릴 듯 말 듯 아주 조용하고도 낮은 목소리로,,,,,
겨우 빈자리를 차지하고서 커피 한 잔을 청해 마시면서 이 광경을 그대로 부산역으로
옮겨놓아 보았다.
주위의 어느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하는 데도 민망함에 그만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 선진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사실이 정말 실감 나게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다음날은 티틀리스 정상에 올랐다가 마음에 차지 않아 3일 차는 조금 무리한 일정으로
물어 물어 융프라우까지 기차를 타고 찾아갔다.
여기까지 와서 4,166m의 알프스 최고봉에 꼭 도장을 찍고 돌아가겠다는 마음으로
찾아갔지만 역시 무리였다.
4월 초 스키 시즌 막바지라 일반 스키어들이 스키를 메고 하나둘 궤도열차를 타기 시작했다.
대부분 직장에 나가지 않는 이곳의 가정주부 들이었다.
궤도 열차 한편에는 스키를 세워둘 충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갔을까? 벌써 표고가 3000m를 넘어서고 있었다.
자신의 스키 타는 능력에 따라 적당한 역에서 하차하면 거기가 바로 출발점이 된다.
그렇게 해서 한나절 내내 자기가 사는 마을까지 스키를 타고 원하는 코스로 내려간다고 했다.
짧은 슬로프에 리프트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만 보아온 터라 정말 꿈만 같은 자연
스키장의 현실이 내 눈앞에서 바로 전개되고 있었다.
구경에 넋을 놓고 따라만 올라가다가 그만 고산 추위에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다.
웬만한 추위는 견딜 줄 아는데 이놈의 고산 추위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사우디 더위에 익숙해져 있던 몸이라 더더욱 힘이 들었다.
할 수 없이 중간역에 내려 파카를 한 벌 사서 입었는데 품질도 별로 좋지 않은 허술한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좋지 않은 추억은 빨리 잊어버리는 게 상책이라 딱 하루만 입고 현지에서 페기
처분하여 버리고 말았다.
스위스의 마지막 밤을 그리고 다사다난했던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을 조용히 마무리 짓고
싶어서 다시 취리히로 올라갔다.
취리히 호숫가에 숙소를 정하고 나니 이제야 겨우 정신이 돌아오며 사우디에 버리고(?) 온
아이들과 그동안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한국 음식이 간절히 생각이 났다.
전차로 30분 이상 걸려 찾아간 한국 식당은 조금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주인 부부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당시에는 동포들끼리는 이국에서 만나기만 해도 반갑던 시절이었다.
오랜만에 긴장 없이 소주잔을 서로 맞부딪치면서 우여곡절이 많기도 했던
우리 부부의 해외 첫나들이를 무난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참 많은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기도 했다.
2016년 2월 1일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