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by 김 경덕

1월 1일


80년대 말로 기억이 된다.

소속된 회사가 88 서울 올림픽에 스포츠 의류 부분 공식 스폰서로 참여하였다.

회사는 50여 억 원을 서울 올림픽에 공식 스폰서 대가로 투자를 하였다.

해당 부서장으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올림픽에 투자한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영업 전략 수립에 한숨조차 돌릴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쁜 시기였다.


당시는 신정에 연휴가 3일이나 주어졌다.

가는 해 마지막 날 오전 10시에 종무식을 마치고 나면 바로 귀가하여 신정 연휴에 들어간다.

직원들 모두가 "하면 된다"라는 자부심을 갖고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던 시절이라 특별한

방법의 사기진작 수단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였다.

종무식 전 날 내일 종무식이 끝난 후 야간 등산을 가고 싶은 부서 직원들은 오후 2시까지

성내역에 산행 준비를 하여 집합하라고 조용히 전갈을 띄워 놓았다.

첫해 이 야간 등산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4명, 우리는 서둘러 성내역을 출발하여 직접

차를 몰고 오대산으로 향했다.

진부 I.C를 빠져나와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로 계속 올라가니 녹지 않고 쌓여있는 눈 때문에

얼어붙은 빙판길이 만만치가 않았다.

5시경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채비를 끝내고 산행을 시작하려니 벌써 골짜기에 어둠이

밀려 올라가고 있었다.

적멸보궁을 돌아 저무는 한 해를 보려고 1시간 50여 분만에 서둘러 비로봉에 오르니

"와"

가는 해의 마지막 노을이 저 멀리 서쪽 자락 치악산 근처의 하늘을 붉게 물 드리고 있었다.

"다 같이 묵념"

각자의 마음에 담기는 감사의 대상을 찾아 감사 기도를 드렸다.

오대산 정상의 날씨는 그렇게 차지는 않고 견딜 만은 했다.

비록 몸은 고달팠고 얼굴은 불어오는 서북풍을 맞아 시렸지만 산 정상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빛바랜 저녁노을은 또 다른 의미로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정상에는 보내는 지난해에 대한 감사와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각오와 희망을 불러 넣어

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어둠이 완전히 정상 주위를 덮은 후 동해안 불빛을 바라보며 우리들은 서둘러 하산을 했다.

다음 목적지는 나 같은 꾼들이 기대하는 최고의 하이라이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원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시계는 어느덧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심조심 눈 길을 더듬듯이 운전하여 진고개를 넘어 찾아간 곳은 주문진과 경포대 사이에

위치한 조그마한 포구 사천항이었다.

당시에는 사천항은 지금처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우리들이 기분 좋게 망년회를 열고 덤으로 하룻밤 숙박을 부탁하려면 조금 규모가 있는 집을

찾아가는 것이 요령이다.

그래서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당시 사천항의 유일한 2층인 제일 높고 큰 집으로

우리들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11시를 넘어서서 인지 한 테이블에만 지역 손으로 보이는 몇 명이 앉아서 마지막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추위에 꽁꽁 언 얼굴을 하고 들어서니 40대 중반 주인장이 우리를 조금은 경계하는 표정을

지으며 맞이했다.

"사장님, 우리는 간첩이 아니고요, 금방 오대산 야간 등산을 하고 내려온 사람들입니다"

"아, 네"

농담 섞인 한마디를 던졌더니 그제야 주인이 긴장을 놓은 듯했다.

제철 생선회를 푸짐하게 주문한 후 주인장의 기분을 슬슬 띄워 주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도 새해 첫날 동해 해돋이 구경이 유행이라 동해안 일대에는 숙소를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이 들었다.

일행들 모두가 침낭을 배낭 속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붕이 있고 찬 바람만 막아주는

곳이라면 우리들은 어디서나 취침이 가능했다.

집이 좋다는 둥, 잡지에 소개를 해주어야겠다는 둥 한참 허풍을 떤 후 우리가 가지고 온

''로열'자 가 붙은 고급 양주 한 병을 내놓고 먼저 주인 양해를 구했다.

소주에 이어 양주를 한 순배 돌린 후 주인을 불러 한 잔을 권했다.

주인이 이 술을 조심스레 받아 마신 직 후 새해 카운트를 시작하는 소리가 T.V에서 들려왔다.

"땡" 새해가 시작되었다.

"모두 다 잔 들고, 다시 한번 치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참 기분이 고조되였는데 안주가 부족했다.

"사장님, 이 집에서 제일 비싼 안주가 뭐예요?"

"전복 회지요"

"전복 한 접시 추가"

그 당시만 해도 양식 전복은 없고 자연산만 있을 때이다.

주인은 얼른 일어나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큰 접시에 전복을 가득 썰어왔다.

"사장님, 4만 원짜리 한 접시가 이렇게 많아요?"

주인 사장님의 설명은 잠깐 길어졌다.

여기가 자기 고향인데 외지에 나가 직장 생활을 하다 작년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단다.

무리하게 빚을 내어 이 집을 지었는데 빚 갚을 걱정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단다.

새 해 첫날 첫 손님이 그것도 나 같이 잘 생긴(?) 남자가 제일 비싼 음식을 주문하면 그 해 장사가

운수 대통한다는 속설이 어느 지방마다 있을 때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연이 있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하던 이 자리에서 오늘 밤을 지낼 궁리만 하고 있었다.

어제저녁 늦게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우리가 들어 닫쳤고 자정을 알리는" 땡" 소리가 나자마자

제일 비싼 전복해를 주문했기 때문에 자기는 기분이 너무 좋아 두 접시 분량을 썰어 왔다고 했다.


"사장님 브라보"


잠시 후 사장님이 어려운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들이 마신 빈 양주병에 자주 눈을 주던 주인장은 조심스레 빈 병을 자기에게 줄 수

없겠느냐고 간청을 해 왔다.

"사장님, 저희들도 청이 하나 있는데요?"

"뭡니까? 저가 할 수만 있다면 들어 들이지요"

"저희들 오늘 밤 여기 이 방에서 좀 재워 주세요"

"주무시는 건 괜찮은데 이불이 없어서,,,,,,,,,,"

이렇게 해서 우리들의 따뜻한 숙소는 단 번에 공짜로 해결이 되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이곳 사장님이 특별히 끓어주신 해장국으로 시원하게 속풀이를 하고 우리는

동해의 떠오르는 첫 아침 해를 바라보며 새해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 해 시작된 연말 야간 산행이 매년 되풀이해서 계속되었다.

지난 몇 년은 나의 송구영신 예배 참가로 인하여 이 산행이 잠시 중단되었다.

지난날 함께 야간에 오대산이나 노인봉을 오르내리며 새해 첫날 에는 동해의 일출을 바라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던 옛 직장 전우들, 지금은 각자의 길로 헤어진 지가 벌써 이십 수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년 말이 다가오면 언제나 옛 동료들과 함께 가고 싶은 마음에 몸이 근질거린다.

금년에는 야간 산행은 포기하고 정월 초 하룻 날 옛 동료들과 부부 동반으로 동해 대신 서해의

교동도에 가서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그동안 쌓인 회포를 풀고 돌아왔다.


2016년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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