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입학
만 6살이 채 되기도 전에 정확하게 5년 9개월 되던 달에 초등학교에, 당시는 국민학교, 입학을 하였다.
6.25 전쟁이 막바지에 다다랐던 1953년 3월 하순, 그 해 7월에 휴전, 마을에서 이장일을 맡고 계신 아버지를 따라서 십 리 길을 걸어 처음으로 초등학교에 갔었다.
나보다 2살 많은 동네 친구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예비소집이 있는 날 아버지께서 면사무소에 마을 일을 보러 가시면서 친구를 함께 다리고 가셨는데 그때 나도 같이 따라나선 것이다.
아버지는 우리를 학교에 남겨 두고서는 면사무소에 볼 일을 보러 가셨다.
선생님은 키가 제일 작은 나를 맨 앞에 세우시고는 예행 연습을 시켰다.
"앞으로 나란히"
"차려"
"열중쉬어"부터
가르쳐 주시면서 일주일 후 입학식 날 학교에 올 때는
오른쪽 앞가슴에 코 수건을 달고 오는 것부터 준비 사항을 하나하나를 나를 모델 삼아 설명해 주셨다.
일주일 후 입학식 날이, 당시는 4월 입학, 다가왔다.
나는 선생님께서 꼭 오라고 하셨다며 학교에 무조건 가야 한다고 우겼고, 어머니는 등하굣길이 너무 멀어 아직은 갈 수 없다고 말리시고, 헛 바람이 잔뜩 들어버린 나는 꼭 가야만 한다고 밥을 먹지 않고 떼를 쓰며 기싸움을
이틀이나 지속하였다.
등하굣길은 농로를 따라 크고 작은 수로를 건너면서 한 시간 이상 걸어가야만 하는 조금은 위험하고도 먼 길이었다.
결국 입학식 날은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버지 손에 이끌려 다시 학교에 올라갔다.
일 학년 첫 담임 선생님은 차 문태 선생으로 지금도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가 저를 선생님 앞에 다리고 가서 하루 늦게 온 사연을 자초지종 설명을 하자 선생님도 내가 너무 작게 보여서인지 고개를 가우 뚱하시면서 수긍하는 눈치를 조금 보이셨다.
이를 눈치챈 나는 얼른 선생님에게
"선생님, 저 글 읽을 줄 압니다"
당시에는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깨친 어린애들이 거의 없었다.
"그래"
전쟁 중이라 교과서가 없었고 등사기로 임시로 만든 책을 내어 놓으며
한 번 읽어 보라고 하셨다.
"붕, 붕 탱크가 나갑니다"
"공산군을 물리치는 탱크가 나갑니다"
교회 어린이 학교에서 한글 찬송 차트를 보고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나도 모르게 한글을 깨친 덕분에 쉽게 읽을 수가 있었다.
결국 내 소원대로 그날부터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철없던 나의 고집 덕분에 초등학교에 조기 입학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전쟁 중이라 급우들은 정상적인 초등학교 입학 나이보다 대부분 한 두 살 심지어는 세 살 네 살 까지 많았다.
반에서 키가 제일 작았던 나는 연이은 사고와 병치레로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 나의 파란만장한 초등 학교생활이 그날부터 시작이 되었다.
201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