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야 어쨌든 간에 상경 후 3개월 만에 하숙집 가정부, 당시는 식모, 눈에 나 주인 할머니로부터 강제 퇴거 명령을 받은 적이 있다. 젊은 날 전력 중 가정 화려(?)한 전력 중 하나이다.
60년대는 웬만큼 사는 집에서는 식모를 두고 가사를 돌보게 하였다. 이들 대부분은 당시 도회지보다 생활이 어려웠던 시골 출신들이었다. 충청도 출신 식모가 많아서인지 드라마에 나오는 식모들 마다 충청도 말을 하였다. 충청 도민들의 집단 항의로 바로 시정이 되기는 하였지만 웃지 못할 우리들의 서글픈 과거 사이다.
아내는 3개월째 이곳 싱가포르 딸네 집에 내려와 가정부 노릇을 하고 있다. 3년 차 이 집 가정부가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킨 바람에 우리가 서둘러 내려오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는 외국인 가정부 고용이 합법화되어 있다.
고용 절차가 조금 까다롭기는 하지마는... 이곳의 가정부들은 대부분 필리핀 출신이다. 근자에 버마 출신도 제법 있기는 하지만 아직 그 수가 필리핀 출신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왜 이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아니 고향 땅에서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이렇게 먼 나라에 까지 찾아와서 힘들고 서러움 받는 Maid 일을 하고 있을까?
이유는 난 하나, "가난"이다.
우리도 가난했었다. 한 때는 세계 최고의 빈민국이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행히 훌륭한 정치 지도자를 만날 수 있었고 이에 더해 미래를 바라볼 줄 아는 경영인과 지식인도 있었다.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노력한 덕분에 기적적으로 오늘과 같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될 수가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삶이 힘들고 어려울 때 대부분 남자들이 외지로 나갔다. 전쟁터로 열사의 사막 나라로 때론 광부로 원양선원으로 목숨을 걸고 나갔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남들보다 빠른 성장을 이루어 냈나? 글세?????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3일 앞둔 마지막 일요일이다. 아침 일찍 아내와 함께 이곳 최대 번화가인 Orchard 거리로 볼 일이 있어서 나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한 쇼핑센터 앞은 몰려던 사람으로 인산인해로 이루고 있었다. 지나가기 조차 힘이 들었다. 귀에 익은 따갈로거어, 필리핀 토속어, 가 여기저기서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이들은 대부분은 필리핀 사람들이었다. 쇼핑센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마도 대부분이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필리핀 가정부들 같았다. 여기서는 합법적으로 가정부도 한 주에 하루는 쉴 수가 있다. 때문에 주말에 휴가를 이용해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보낼 선물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몰려나와 있는 것이다. 끼리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과거 우리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출신 이런 식으로 출신지끼리 모여 앉아있는 것 같았다. 지나치면서 바라본 이네들의 모습은 신기하기보다는 매우 측은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안타깝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며칠 전 딸네 집 가정부를 새로 채용하기 위해 인터뷰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자기는 대학에서 Computer Science를 전공하였다고 했다. 영어도 유창하고 발음도 정확했다. 비록 나이는 30대 중반이었지만 우리나라 같으면 어느 곳에 내어 놓아도 손색없는 인재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Maid에게 전공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유창한 외국어가 무슨 보탬이 될 수가 있겠는가? 한 달에 USD 500불, 이것마저도 치열한 경쟁 후에 차지할 수 있는 특권 고소득 직업이다. 앞으로 자기를 Maid라 하지 말고 그냥 Helper로 불러 달라고 하였다.
40년 전 마닐라 지사에 근무할 때 사무실 현지 여직원이 자기는 홍콩으로 가는 가정부 모집에 응시했다고 나한테 자랑삼아 얘기를 하였다. 하도 의아해서 홍콩에 가면 한 달 가정부 수입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300불이라고 하였다. 당시 그녀의 봉급은 100불에 불과했으니 말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가정부가 꼭 천한 직업이라서 기 보다는 돈 앞에는 직업의 종류도 존엄성도 가치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
한 개인이 상대적으로 똑똑하고 또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는 있겠지만 이웃과 더불어 잘 살 수는 없다. 더 나아가 사회 공동체 국가 공동체가 함께 부강해지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이런 측은한 모습을 지켜보니 같은 민족, 같은 동족이라는 단어가 더욱 의미 깊게 오늘 내게 다가왔다.
아! 정말 우리나라 내 조국 대한민국이 잘 살아야 되겠구나.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가 되어야겠구나.
이곳 싱가포르에서 주말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각 나라 식모들을 모습들을 지켜보며 느낀 나의 절실한 심정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왠지 불안감이 더 짙게 느껴진다. 갈수록 높아만 가는 주변 강대국의 패권 다툼도 그렇고
최근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치가 않다.
이런 와중에 자기들끼리 이전투구만 하는 우리나라의 정치꾼들의 몰골이란? 정말 한심하고 답답하다.
왜? 오늘은 자꾸만 지난날 우리들의 언니 누나들이 객지로 식모살이 나가서 어럽게 모아 두었던 돈으로 장만해 보내주던 설 날 선물, 이것을 애타게 기다리는 우리들의 모습이 자꾸만 그려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