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어있다. 2,300년 전에 건설되었다는 Trogir는 과거 속으로 빨려 들어가 시간 여행을 하기 딱 좋은 고대 도시이다. 그리스, 로마, 비잔틴, 베네치아, 합스부르크가 의 문화와 양식들이 그대로 시차를 두고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난 며칠간 이곳의 고대 유적이 남아있는 도시들을 주마간산 격으로 곁눈질만 하고 대부분 지나쳐왔다. 그렇지만 이곳은 차분하게 천천히 돌아보면서 가방 속에 몇 가지는 반드시 챙겨가고 싶은 보물 같은 도시이다. 화려하고 웅장해서라기 보다는 낮고 작고 좁고 때론 초라해 보이기 때문이다. 황제나 이 땅을 지배했던 자가 통치나 자기 과시 호신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이곳 소 시민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유적들이기 때문이다. 작지만 400년에 걸쳐서 완성되었다는 성 로렌스 성당, 10세기에 지어졌다는 시계탑 옆에 겨우 자리 잡은 자그마한 성 바바라 교회, 시계탑도 그렇게 높지 않아 고개를 들지 않았는데도 쉽게 눈에 들어왔다. 더군다나 섬 서쪽 끝에 있는 카메를 랭고 요새마저도 침략자 베네치아 인들이 건설하다 본국으로 부족 자재를 가지러 간 사이 이곳 시민들이 총동원되어 단기간에 걸쳐 완성한 후 차지하였다는 일화도 남아있다. 이곳에서 제일 내 마음에 드는 유물은 뭐니 뭐니 해도 좁은 골목길이다. 무장한 말 한 마리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폭에다 바닥은 하나같이 대리석으로 잘 포장하여 놓았다. 몇 백 년을 견디었는지 아니면 수천 년을 버티었는지 바닥이 닳고 닳아 거울처럼 반질반질해져 묘한 광택이 난다. 대낮인데도 약간 어둡고 침침한 골목길의 대리석 바닥에서 반사되어 눈에 들어오는 빛은 시간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는 것 같다.
골목길이 이렇게 좁은 이유가 있었다. 외부에서 침략자가 들어오면 시민들은 일층 출입문 빗장을 단단히 걸고서는 이 삼층으로 올라가 비축해 놓은 각종 무기로 공격 준비를 한다고 한다. 좁은 골목길이라 말 한 마리나 병사들 한 두명만 차례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적들을 쉽게 퇴치할 수 있었다. 만약에 한 집이 무너지면 미리 준비해 둔 사다리로 손쉽게 마주 보는 이웃집으로 건너갈 수도 있었다. 바닷가에 거주하였던 옛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침략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생각해낸 기발한 생존 방식이 이 좁은 골목길 속에 숨겨져 있었다.
왜 우리도 삼면이 바다고 산에 돌도 나무도 많았는데 이런 생존 방식을 고안해내지 못하고 허구한 날 당하기만 했을까? 천년을 두고 왜구로부터 당한 노략질,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하다. 오늘날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우리의 적이 지금도 사방에서 공격을 해오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하고 있는가? 2019, 9,14 Trogir를 떠나 Orebic Or San hotel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