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表象

입학식(2)

by 김 경덕

입학식(2)

4,19가 일어난 해에 중학교에 입학을 한 우리는 격랑기에 속하는 세대다.

당시에는 상급 학교에 진학하려면 모두 입학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부산에 인접한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마쳤지만 인근에 소재한 중학교에

응시를 하지 않았다. 대신 부산에 소재한 중학교에 응시를 하여 상당히 높은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을 하게 되었다.

당시 부산에 있는 고여를 졸업한 누님의 적극적인 권유와 도움으로 힘든

과정을 거쳐 입학시험을 그나마 치를 수가 있었다.

아버님은 외지에 나가서 공부를 하게 되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시험을 치르는 것 자체는 막지 않으셨다.

허구한 날 공부는 안 하고 엉뚱한 짓만 하고 다녔던 개구쟁이 아들이 설마

대 도시 일류 중학교에 합격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미리 예측하고 계셨던 것

같았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가 그때부터 시작이 되었다.

나이도 어리고 철부지라 혼자 객지에 보낼 수 없다는 뜻을 아주 완강하게

내 세우기 시작하셨다.

사실은 도시로 나가게 되면 기숙비와 교통비 등 과외로

들어가야 할 돈이 많아지기 때문에 더 많이 반대를 하셨던 것이다.

어머니와 누나는 내 편이었고 아버지는 반대편에 서서 며칠간을 된다

안된다는 격론이 계속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교회 담임 목사님의 적극적인 중재로 겨우 합격한

중학교에 입학할 수가 있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입학식 날이 다가왔다.

당연히 입학식 전 날 버스나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하룻밤 자고 입학식에

참가하는 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먼 김해 땅에서 낙동강을 건너고 지금의 만덕 고개를 걸어서 넘어서

입학식에 참석하신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입학식 당일 새벽에 출발하여,,,

이 역시 절약을 몸소 실천하시는 아버님의 비용 절감 방편이셨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아버님의 발상은 정말 독특하고 기발하셨다.

지도로 가름해보니 지금 일산에서 북한산을 넘어 수유리로 가는 거리와

거의 비슷하였다.

덤으로 큰 강을 하나 더 건너는 것을 제외하고..

입학식 당일 아버지의 뒤를 따라 말씀이 없으신 어머님과 함께 새벽 세시에

집을 나셨다.

집에서 구포역까지 약 7km 1시간 30분이 걸렸다.

구포에서 해발 600m 정도 되는 만덕 고개까지는 오르막길이다.

당시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동래와 구포를 내왕하였기 때문에

밤에는 산적들이 빈번히 출몰하는 위험한 고개로 소문이 나 있는 곳이었다.

이 길을 그것도 어두운 새벽길을 3시간 정도를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고개 마루턱에 다다르니 날은 완전히 밝았고 고개 아래 반대편 저 멀리 해운대

동백 섬이 아스라이 눈 속에 들어왔다.

그 뒤 동해 바다 위로 서서히 용트림하며 솟아오르던 그날의 붉은 해,

지금도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때 가슴속에 새겨진 이해가 객지에서 서러움과 외로움을 많이도 달래

주었다.

마루턱에서 한숨을 돌린 후 조급한 마음에 나중에 학교에서 부모님을

만나기로 약속하고 고갯길을 서둘러 혼자서 뛰어서 내려갔다.

입학식 날 지각을 한다는 것은 당시 13살짜리 내 머릿속에는 어떤

이유로던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땀범벅이 된 나는 9시 입학식 시작 전에 무사히 학교에 도착하여

불 호랑이 곽** 교장 선생님의 근엄한 훈시를 들을 수 있었다.

불평과 원망은 한마디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아버지의 구두쇠(?) 정신과

실천 요령을 직접 체험하면서 중학교 입학식에 참가한 이 날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뜻깊은 날이다.

비록 땀으로 얼룩진 고통의 6시간이었지만 나의 타향살이 첫날이 백두대간

지류의 마지막 허리인 금정산 만덕 고개를 이렇게 넘어면서 시작되었다.


2016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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