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의 유년 시절은 6.25 전쟁 직후라 다 같이 힘들고 배가 고팠다. 시골에서는 춘궁기가 가까워지는 그믐달에서 정월달로 들어서게 되면 하루에 세 끼를 제대로 챙겨 먹는 집이 드물 정도로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간식은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들의 먼 희망일 뿐이었다.
음력 설날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사라졌던 우리들 희망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약 보름 전부터 집집마다 강정용 고두밥을 쪄서 햇 빛에 말린다. 짧은 겨울 햇살이라 아침에 늘어놓고서는 이른 오후에 다시 거둬 들어야 한다.
이 일은 모두 우리들의 몫이다. 그 사이마저 배고픔을 참지 못해 매일 조금씩 집어 먹기 때문에 일주일 정도
지나고 나면 이 고두밥은 반 정도로 줄어든다. 한편으로는 한낮에 때를 지어 십리 길이나 되는 먼 산으로 나무를 하려 나간다. 서너 번은 다녀와야 한다. 보통은 짚으로 난방도 하고 취사도 하지만 강정용 조청을 밤새 고우려면 마른 장작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적당한 크기의 모래를 구하러 냇가에 나가야 한다. 두 됫박 정도를 체에 거른 후 깨끗한 물에 여러 번 씻어 놓는다. 작년에 사용한 모래가 있으면 다시 씻어 햇빛에 말리기만 하면 된다. 설 하루 전날을 우리 세대는 작은설 또는 애기설이라고 불렀다. 애기 설날은 떡을 만들거나 전등을 부치지만 강정은 조금 미리 준비해 놓는다. 부엌에 있는 작은 솥을 들어내고 솥뚜껑만을 뒤집어 아궁이에 건다. 여기에 준비한 모래를 넣고 들기름을 두른 후 한참 열을 가하면 모래가
상당한 온도로 달아오른다. 준비한 마른 고두밥을 한 줌씩 넣고 저어주면 이 고두밥이 적당한 크기로
부풀어 오른다. 원래 밥알 크기의 두 배 정도로 보기 좋을 만큼 노릇노릇하게 부풀어 오른다. 전 날 밤새도록 감주를 다려서 만들어 놓은 조청을 적당히 넣고 버무려 준다. 이때 볶은 검은콩이나 땅콩을 함께 넣어주면 훨씬 고급 강정이 된다. 둥근 밥상 위에 펼쳐 놓고 다듬잇 방망이로 평평하게 만든 다음 얼마간 굳히기를 한다. 어느 정도 조청이 굳은 다음 식칼로 가로 세로 적당한 크기로 잘라 주면
우리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정이 드디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유년 시절에 자란 마을은 구멍가게마저도 없었다. 이렇게 설날에 만들어진 강정은 정월 대보름 날까지 우리들의 여린 마음을
달래주던 귀한 간식은 물론 훌륭한 군것질 거리가 되어 주었다.
설날에는 또래들끼리 모여 마을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다닌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큰 절을 하고 나면 집집마다 우리들 앞에 간단한 음식상을 내놓는다. 하루 종일 여러 집을 돌기 때문에 내어 놓은 음식은 제대로 먹고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강정만은 그 자리에서 먹는 대신 각자의 호주머니 속에 적당히 집어넣고
나올 수가 있었다. 이렇게 모아 놓은 강정을 몰래 숨겨 놓고서는 여러 날 동안 조금씩 두고두고 꺼내어 먹었다. 간식거리가 전혀 없었던 당시에는 설날에 어렵게 만들어졌고 또 우리 스스로가 노력하여
모아 놓은 이 강정이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연중 최고 최장의 간식거리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오늘은 설날이다. 손주들은 할머니가 밤새 마련한 정성스러운 음식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세뱃돈,,,,,,, 세배를 하자마자 손을 내밀며 받아 챙긴 봉투를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 끄집어내어 보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