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oxville
6.25 직후 어려웠던 시절이다.
제법 오랜 기간 동안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미국에서 보내준 구제품 보따리가 가난한
시골교회에까지 배포돼 왔다.
종교기관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에 비교적 중간에 손을 타지 않은 원형 그대로였다.
단단하게 포장된 이 보따리가 도착하는 날이면 슬하에 자식이 없었던 박 목사님은
조용히 나를 불렀다.
해체와 선별 작업에 나를 동참시켜서 나의 궁금증을 매년 시원하게 풀어 주시곤 했다.
작업이 끝난 후 나에게 돌아오는 선물은 그 속에 들어있었던 크리스마스 카드였다.
이 카드 속에 담겨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화려한 주택은 언젠가는 내가 가보고 싶고
또 살아보고 싶었던 또 다른 나의 어린 시절 꿈이었다.
미국에 첫 발을 디딘 해가 1982년 9월이다.
L.A에 처음 도착해 보니 눈앞에 보이는 이 나라의 실체는 그동안 내가 그려왔던
상상의 미국과는 너무나 괴리가 깊었다.
며칠간 회사일을 처리한 후 주말을 이용하여 테네시 주에 있는 Knoxville로
날아갔다.
동갑내기 막내 손 아래 동서가 그곳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잔뜩 긴장을 하고 L.A에서 다섯 시간을 날아가 그곳 공항에 내렸다.
공항을 나서는 순간 실망했던 L.A 전경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달리는 차 창가에 바라보이는 이곳 풍광은 어릴 적 카드 속에서 익혀
보아두었던 바로 그 그림이었다.
한 장이 아닌 영화 속 장면처럼 계속 나타났다 사리지고 또다시 나타났다 사라지고 하였다.
36년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오늘 똑같은 길을 따라서 다시 이곳에 왔다.
철없던 유년시절에 꿈꾸었던 크리스마스 카드 속으로 현실이 되어 다시
들어온 것이다.
이제는 이곳도 많이 변했을 것이고 나도 많이 변하게 초노의 노인이
되어있다.
아름다운 기억은 추억이고 힘들었거나 쓰라린 기억은 경험이라고 했던가?
아름다운 추억만 남기고 돌아가리라.
오늘은 인근 Nashivil , 주말은 Smoky mountains으로 들어간다.
안타깝게도 지난날 나를 구석구석까지 안내해 주었던 동서는 오래전
하늘나라로 떠나버리고 지금은 없다.
그 자식들과 함께 지난날 아버지의 흔적과 추억을 더듬어 보기 위해서 이곳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본의 아니게 그 중심에 내가 서 있게 되었다.
그래서 조카들과 함께 지난날의 기억을 하나씩 더듬어 나가고 있다.
2018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