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서 가장 분주했던 40, 50대, 그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출근하여
오전만 근무를 하였다. 88 올림픽 전 후 시기이다.
지치거나 사람의 만남이 무서워질 때면 시도 때도 없이 양수리를 거처
양평의 오지 서종면 명달리로 달려갔다.
양수리에서부터는 비 포장도로였다.
특히 문호리를 지나고 나면 일반 승용차로 들어가기가 아주 힘든 위험한
길이였다.
산속에 나무가 좋아서 산이 좋아서 초막을 치고 살고 있던 친구를 찾아
가곤 했었다. 그곳에 달려가는 자체가 힐링이고 친구와 만남은 비어버린
내 영혼을 재 충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른 새벽 양수리 두물머리를 지날 때면 북한강 쪽에 피어오르던 물안개,
산이 좋아 나무가 좋아 산에만 머물었던 친구는 이태전 물안개처럼 산에서
먼저 하늘로 피어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내 머릿속의 물안개는
떠남이다.
그리고 그리움이다
설사 다시 만날 기약이 없더라도........................
2014,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