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장기간 쌓인 여독 때문인지 새벽잠에서 몸을 뻘떡 일으키기가 무척 힘들다.
주일날이라 딱히 정해진 일정도 없다. 오랜만에 늦잠을 잔 후 아침을 간단히 먹고 근처에
있는 Luxembourg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이런 것이 바로 개인 여행의 묘미인 것 같다.
사전에 계획된 일정에 전혀 얽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가고 싶으면 어디던지 갈 수가 있고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볼 수가 있고
먹고 싶으면 무엇이든지 먹을 수가 있고
자고 싶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잘 수가 있다.
우산을 받쳐 들고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2 주 전에 보았던 마로니에 꽃은 이미 떨어져
흔적만 남아있고 그 대신 Iris, Forget me not, Magalet 등이 비를 맞으면서 우리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그런데 산책로와 비슷한 높이로 조성해 놓은 화단 주변에 야외용 의자들이 제멋대로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 이 의자들은 도대체 무슨 용도야?"
" 어젯밤에 이곳에 행사가 있었나? "
이 공원은 옛날 또 다른 하나의 궁전이 자리 잡았던 자리다.
그래서인지 전혀 손상이 되지 않은 옛 궁정 건물 모습과 주변 조경이 훌륭하게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이곳은 이곳 시민들 즉 파리잔들이 즐겨 찾는 장소라고 한다.
산책로 공간과 화단 그리고 잔디밭의 경계가 아주 나지막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별로 부담감 없이 마음대로 들락거려도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KEEP OUT",
"들어가지 마시오",
"잔디를 보호합시다."
"꽃을 꺽지 맙시다.'" 등
어떠한 주의나 경고 팻말도 보이지 않았다.
비록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없었고 사람들이 들어가서 훼손해
놓은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왜 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저렇게 자유 분망 하게 놓여 있는 의자 때문이었다.
누구나 마음이 가는 의자에 자유롭게 앉아 자연과 하나가 될 수가 있게 해 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공원을 찾은 일반인들이 무리해서 굳이 들어갈 필요가 전혀 없다.
시민들의 마음과 Needs를 읽어주는 문화 선진국의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실제로 살아서 존재하는 것처럼 그 현장의 모습이 바로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공원을 돌아 나오면서 곳곳에 세워놓은 동상들을 바라보니 머리 위에 보일 듯 말 듯
바늘 같은 침들이 여러 개 꽂혀있었다.
이것이 바로 말없는 "KEEP OUT" 이였다.
공원 하늘의 주인인 비둘기들에게 조형물 위에 앉지 말라는 그리고 오물을 남기지 말라는
확실한 경고 표시였다.
비가 내리는 Luxembourg 공원 안을 한 바퀴 돌아보고 나오면서 선진국의 앞서가는
공원 관리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뜻있는 산책길이었다.
2016년 5월 22일
조카가 살고 있는 파리의 어느 다락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