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집안의 최고령 어른은 일본에 살고 계시는 숙모님이시다. 아들 없는 타지마가의 장녀이시고 1919년생 이시니까 올해 95 수이시다. 삼촌 살아생전에는 동경 출장이 잦아서 갈 때마다 쉽게 찾아 뵈올 수가 있었다. 이번은 삼촌이 돌아가신 후 근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찾아뵙는 길이다. 35여 년 전 처음으로 삼촌집을 찾아갔을 때 미리 목욕탕 물의 데워놓고 탕 앞에서 파자마를 양손에 받쳐 들고 무릎을 꿇은 채로 나를 기다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우리말로는 소통이 불가능했지만 시집 식구를 처음으로 만나본 후부터는 남편의 가계와 시 가족에 대한 관심을 보이며 여러 가지를 물어보셨다. 두어 번 한국을 직접 다녀 가시기도 하셨다. 마지막 다녀 가실 때는 난봉꾼(?) 기질의 삼촌과 그동안 힘들게 살아오신 자신의 삶을 20여 장의 종이에 자세히 기록하여 놓았다가 나한테 넘겨주고 가셨다. 가끔 일본 사촌을 통해서 숙모님의 근황은 듣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인사를 해야 될 것 같아 이번에는 아들까지 대동하고 찾아갔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지독한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셨기 때문이다. '저는 한국에서 온 김상입니다.'라고 일본말로 첫인사를 드렸더니 '간꼬구와 관계 나이데스' '와 다시와 니혼진 데스'라는 대답만 두 번이나 반복하셨다. 묘한 여운을 안고 문밖에서 돌아서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정신이 돌아오실 때는 가끔 한국의 '김상'을 찾으신단다. 어머니 국적으로 귀화하여 완전히 일본 사람이 되어버린 사촌과의 만남만 가슴에 안고 씁쓸하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2014,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