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 즉 선악과의 후예들이다. 그래서일까? 선과 악을 구별하는 탁월한 능력을 모두 다 필요 이상으로 지니고 있다.
내편 네 편, 아군과 적군, 좋은 것과 나쁜 것, 흑과 백, 그리고 좌와 우 심지어 부자와 가난한 자, 잘 생긴 것과 못 생긴 것, 동과 서, 남과 북 등으로 구분하여 놓고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편 가르기를 하며 살아간다. 특히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행위가 교회 밖 일반 사회에서 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믿음 , 회개, 그리고 반성과 뉘우침이라는 신앙인의 명제는 이미 사라진 지가 오래되었다. 대신 누구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자기반성보다는 오히려 누구에게 상처를 받았다는 하소연만 파리떼처럼 교회 안 밖으로 무수히 날아다닌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처음 된 자요, 나중 된 자다." "가장 높은 자요, 또한 가장 낮은 자다"라고 여러 가지 형태로 말씀하셨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선악과 이전의 인간으로 돌아가라는 권고요 충고의 말씀이다.
붉은 안경을 쓴 좌파의 눈에는 모든 세상이 붉게만 보일 것이다. 노란 안경을 쓴 우파의 눈에는 모든 세상이 노랗게만 보일 갓이고.....
자신이 쓰고 있는 안경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이나 생각하는 느낌만을 표현할 때 우리는 종종 많은 우를 범하게 된다. 내가 스스로 친 울타리를 넘어서 우리는 먼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좌는 우를 품을 수 있고 우는 좌를 품을 수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품을 때 비로써 양보가 일어나고 덤으로 변화도 생긴다. 사회는 좌와 우가 시대에 따라 적당한 비율로 공존해야만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중도의 눈 중도의 가슴으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는 자세를 키우는 훈련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가 바로 지금 이 시기이다. 사회가 국가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각계각층에서 중도의 자세로 세상의 중심을 잡아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난국임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선험적인 지식이나 경험 때론 생각이나 이념까지도 모두 다 내려놓고 중도의 자리에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고목의 심재와도 같은 그러한 어른이 필요하다. 이런 사람만이 쪼개진 선악과를 이런 혼탁한 시대에 봉합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