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들어온 손주들과 함께 우리 집에서 격리 생활을 시작한 지가 벌써 한 주가 지났다. 점점 쌓여가던 스트레스가 한계점에 도달할 즈음 한 젊은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건 친구는 풋 향기가 풀풀 나는 대한민국의 건장한 육군 상병이다. 최전방 휴전선 G.P에 근무하다 일여 년 만에 첫 휴가를 받아 나왔단다. 귀대 전 인사차 전화를 건 것이다. 다니는 교회에서 이 친구가 다섯 살 전후쯤 되었을 때 처음으로 만났다. 멀리서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어느 때인가부터 드문드문 우리끼리만 개별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청년의 성장 과정을 어느 정도까지는 곁에서 지켜볼 수가 있었다. 주변의 어려운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 꼬마는 건강하게 잘 성장하였고 삼 년 전에 대학생이 되었다. 작년에 학업을 잠시 중단하고 입대를 한 후 지금은 최 전방에서 병역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전화를 받지 마자 빨리 만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다음날로 바로 점심 약속을 했다. 입대 직전 우리 부부가 해외에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그만 헤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빨리 만나보고 싶었다. 지금은 청정지역인 서부 휴전선 GP에서 수색대원으로 근무를 하고 있단다. 일과 중 틈틈이 몸을 단련시켜서인지 입대 전보다 훨씬 균형 잡힌 몸매의 22살 건장한 청년으로 변해 있었다. 가까이서 바라보니 싱싱하고 건장한 젊은이의 활력이 마구 솟아져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곁에 앉아 이야기만 하는데도 건강하고 신선한 에너지가 마구 전달되어 오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두어 시간 동안 쌓인 회포를 풀고 일어서기에는 너무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최근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팬텀 싱어 3"이라는 프로를 빠지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았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끼와 재능에 대해 원 없는 찬사를 보내면서 또 다른 희망의 끈을 잡을 수가 있었다.
일전 코로나 19 방역 일선 현장에서 방호복을 갈아입고 있던 간호사들의 땀에 흠푹 젖은 얼굴, 반창고를 붙인 상처 난 얼굴을 화면을 통해 지켜보며 감동의 눈물까지 흘렸다.
이들 모두가 이 나라의 다음 세대를 이끌고 갈 예비 주역들이다.
오늘도 꿋꿋이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 우리의 젊은 친구나, 멋진 화음으로 최상의 4 중창 만들어 내는 젊은 친구들이나 ,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밤낮 고군분투하는 젊은 의료인들 모두가 이 시대에 우리가 보유한 최고의 보배요 희망이다.
여기 아무 할 일도 없이 등을 돌리고 앉아 젊은이들을 향해 철없다고 손가락질이나 하고앉아 있는 한 꼰대 노인의 모습이 크게 눈에 들어왔다. 바로 나이다. 그럴 때마다 따로 메모해 놓은 소설의 한 구절을 반복해서 읽으며 흩어지는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다.
"나무는 줄기에서
늙은 나이테는 중심 쪽에자리를 잡고
젊은 나이테는 껍질 쪽에 들어서는데
중심부의 나이테는 말라서 무기질화 되어
아무런 하는 일 없이 무위의세월을 보내는 것 같지만
그 굳어버린 단단함으로 인하여 나무라는 생명체가
땅 위에 바로 서서 살아가며 성장을 할 수있게끔
버팀목 역할을 하여준다." -김 훈의 '젊은 날의 숲'에서-
군인 친구와 헤어지며 거기도 상하 간의 갈등 때문에 힘들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돌아서며 한 마디 남겼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무슨 일이든 생각하고 마음먹기 따라
쓰라린 경험이 될 수도 있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다.
남은 기간 부디 아름다운 추억만 많이 만들고 와라"
어른으로써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 말 뿐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엄청 초라하게느껴졌다.